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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소추안 오류 인정한 국회가 대통령 탄핵하는가

도깨비-1 2017. 2. 2. 11:59

[특별 기고] 소추안 오류 인정한 국회가 대통령 탄핵하는가

복거일 소설가 |
2017/01/26 03:05

탄핵은 입법부가 공무원에 대해 제기하는 형사소송이다.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한다는 헌법 규정에서 이 점이 분명해진다. 탄핵이 많이 나온 미국에서 헌법은 탄핵 대상을 '반역죄, 수뢰죄, 또는 다른 중죄들이나 경죄들'이라고 명시했다. 탄핵 제도의 원조인 영국에선 모든 사람의 모든 범죄를 다루고 형벌에도 제약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은 일반 형사 재판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형사소송 절차를 엄격히 따르지 않고 민사소송 절차도 준용한다고 선언했다. 이런 결정은 사리에 어긋난다. 탄핵은 형사소송이며 형사소송 절차를 엄격히 따라야 한다. 헌법재판소법도 민사소송 법령을 준용하되 "탄핵 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했다.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형사소송에선 국가가 권력으로 피고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하려 시도한다. 자연히, 형사소송의 피고인에겐 민사소송의 피고보다 훨씬 너른 권리가 허용된다. 탄핵 심판의 성격과 준용 절차에 관한 헌재의 비논리적이고 규정에 어긋난 견해는 여러 문제를 낳았다.

먼저, 관련자들에 대한 특검 조사와 형사 재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법의 권고대로 심판 절차를 정지하는 대신 오히려 가속했다. 자연히, 탄핵 심판이 일반 형사 재판처럼 사실 확인에 치중하게 되었고, 피고인의 자기변호 기회도 줄어들었다. 헌재가 심리 시한을 자의적으로 정한 것도 공정한 재판을 지향하는 태도가 아니다. 단심(單審)이므로, 피고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고려해서, 법정 기한을 다 쓰며 심리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헌재는 탄핵 인용으로 기우는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에 서둘러 심리를 끝내서 탄핵 인용에 필요한 재판관 수를 확보하려 시도한다는 의심을 자초했다.

다음, 너무 부실하고 산만한 소추안 내용에 대해 소추자가 아닌 피고인에게 소명 책임을 지웠다. '세월호 7시간' 소명에서 이런 태도가 두드러졌다. 소추안에 '헌법의 생명권 보장 조항 위배'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이 붙어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살피면 그것은 탄핵소추 요건이 될 수 없다. 박 대통령에 관한 악의적 소문들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헌재로선 소추자에게 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헌재는 거꾸로 피고인에게 당일 행적을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고, 박 대통령이 그런 요구에 응해서 더욱 자세히 밝히자, 그것도 부족하다면서 더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완벽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정한 재판을 떠받치는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으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고인이 죄가 없다고 간주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서 '입증 책임은 소추자에게 있다'는 원칙이 나왔다. 헌재는 이 근본적 원칙을 어겼다.

셋째,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가 거듭 채택되었다. 이런 처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인에게 주심 재판관은 "그건 형사 재판에서 다뤄보라"고 말했다 한다. 그가 불법적 증거 수집을 막아야 한다는 법관의 기본 임무를 져버렸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행위가 ①불법이라고 미리 판단하며 ②따라서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 판단하고 ③따라서 박 대통령이 물러난 뒤 형사 재판을 받으리라고 예단했음이 드러난다.

이런 사항은 모두 중대한 절차적 오류여서, 하나만으로도 무효 심리를 구성할 수 있다. 중대한 오류가 겹친 터라, 이번 탄핵 심판은 명백히 무효 심리를 구성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제 헌재는 이번 심리가 무효 심리임을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절차적 오류를 바로잡아 새로 심리해야 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무효 심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헌재 재판관은 탄핵 대상이다. 절차적 오류가 모두 헌재의 결정에서 나왔으므로, 재판관들은 모두 탄핵 대상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번 탄핵 심판이 무효 심리임이 명백해도, 헌재가 자인할 가능성은 작고, 국회가 재판관들을 탄핵할 가능성은 더욱 작다. 그래서 무효 심리 선언과 재판관들의 탄핵은 이론 영역에 머물렀다. 지난 1월 19일 이런 사정이 문득 바뀌었다.

이날 헌재 재판정에서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은 새로운 소추 의결서를 헌재에 제출하겠다고 진술했다. "구체적 범죄 사실에 대한 유무죄는 형사 재판에서 가려야 할 사안인데도 탄핵 소추안에 포함된 것은 국회가 탄핵 심판을 잘못 이해한 것"이며 "우리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추자인 국회가 스스로 소추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밝힌 것이다. 탄핵소추위원장의 그런 법정 진술에 따라 이번 탄핵 재판은 무효 재판이 되었다.

원래 국회는 검찰의 공소장을 근거로 탄핵을 의결했다. 국회 자신이 설치한 특검과 국정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기소한 것이다. 한껏 늘려도 도덕적 책임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시위대의 위세에 눌려 굳이 소추안에 넣고서, 항목이 너무 많으면 적당히 추려서 심리하라고 헌재를 다그쳤다. 그렇게 야단법석을 부리고서, 이제 와서 탄핵 소추안이 잘못되었다고 밝힌 것이다.

당연히, 헌재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기각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이론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게다가 소추자인 국회의 잘못에 따른 기술적 재판 무효이므로, 헌재의 판결에 대한 시민들의 불복이 나올 리 없다. 만일 국회가 여전히 탄핵을 바란다면, 좀 더 차분한 환경에서 새로 밝혀진 증거로 다시 심판하면 된다.

아울러, 탄핵 소추의 기각은 희망적 가능성을 열 것이다. 대통령직에 복귀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도덕적 권위를 잃어서 나라를 통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선선히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현직 대통령이 부실한 소추안에 바탕을 둔 탄핵으로 직위를 잃고 형사 재판을 받을 가능성을 피할 것이다. 대통령의 자발적 사임으로 탄핵 정국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면, 우리 사회가 입은 깊은 상처도 빠르게 치유될 수 있다.

법의 궁극적 기능은 분쟁 해결이다. 이 일에서 중요한 것은 재판정과 판결의 권위다. 권위를 지닌 재판정이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모두 승복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비로소 분쟁이 해결된다. 그렇지 못하면 분쟁은 그저 끝날 따름이다. 분열이 심한 사회에서 법관들만은 그래도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사회 통합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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