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광복 70년, 역사적 성공과 그 불만
입력 : 2015.08.12 03:00 / 조선일보
70년 成就에 긍지 당연하지만 갈등 조정 못 한 과거 실패에서 배워야 더 견고한 성공 가능해
폭력·투쟁 대신 인간 威嚴 존중… 자유·정의 지키기 위한 힘과 기억을 통한 화해가 요망된다
오는 15일, 광복 70년을 맞는다. 70년은 두 세대가 넘는 시간이요, 나라 없던 시기의 곱빼기가 되는 세월이다. 짧은 세월이 아니지만 나라 없는 창피와 아픔을 잊어버릴 정도로 긴 세월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 잃은 시기를 경험했던 국민이 이제 70대 이상 고령자로 한정되고 감소되었다는 사실이다. 해방의 감격을 경험한 사람은 국민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광복 70년을 맞는 감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해방의 감격을 경험한 세대에게 20세기 후반의 우리 역사는 놀라운 성공 이야기로 실감된다. 실패와 좌절로 중첩된 20세기 전반의 우리 역사와 좋은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수준의 수직적 향상,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산업화, 세계에 유례없는 전국적 산림 녹화, 정치적·제도적 민주화의 성취에 우리는 민족적 긍지를 느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자학적 비관론을 극복하며 경험에 기초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1950년대에 크게 번졌던 "엽전이 별 수 있나"란 자조(自嘲)적 언사가 사라진 것이 좋은 증거이다.
그러나 전후(戰後)의 쑥대밭에서 마련해낸 성공 이야기에는 불만이 따른다. 그 불만은 성공 이야기 이전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무관심한 세대일수록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 이전의 절망적인 가난과 무지, 비관론과 황량한 강산(江山)에 대한 일차적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만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치욕과 실패의 역사'라고 송두리째 부정하는 해괴한 비역사적 관점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성공 이야기와 함께 아쉬운 실패의 유산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심각한 이념 대립이나 내부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는 일에 우리는 능란하지 못하다. 앞으로 30년이면 광복 100년이 된다. 그때까지 불만 없고 견고한 성공 이야기를 마련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우리는 안고 있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는 국민 과반수를 도시 거주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학 고전이 가르치듯이 도시생활은 생계를 위한 자연과의 투쟁을 이윤을 위한 인간 상호 간의 투쟁으로 변형시킨다. 정신의 황폐화가 진척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언어 폭력이나 학교와 병영의 가혹 행위가 대표적 징후이다. 이웃에 대한 배려 없는 공격성의 노출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사람의 위엄에 어울리는 인간화된 사회가 우리의 당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성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광장의 충동적 구호정치는 민주주의에 장애가 될 것이다. 상대의 실패와 타도를 통해서 기회를 도모하는 전투적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다.
미묘하게 돌아가는 우리 주변의 국제정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우화가 있다. "항시 자기보다 강한 짐승들의 공격을 받아 절망에 빠진 꼬마가 주(主)에게 말하였다. '주님이시여, 모든 짐승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은 어인 까닭입니까?' 주는 대답하였다. "애야, 난들 어쩌겠느냐? 너를 보면 나도 그러고 싶은 걸."
식민지의 시인이었던 타고르가 인도 국민에게 들려준 말이다. 힘없음이 공격을 유발한다는 것, 강한 것이 최선의 방어책이며 힘 없이는 자유도 정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우화는 가르친다. 개인이나 국가가 외면할 수 없는 진부하지만 냉혹한 사실과 대면하게 한다.
삶의 외경(畏敬)을 노래한 명상적인 시인을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자로 만든 것은 냉철한 현실인식이었다. 관광 명소가 된 아우슈비츠의 한 건물 입구에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란 말이 적혀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 곧 화해의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과 화해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 기억 없는 화해는 자기 기만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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