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우리 곁의 日 군국주의 잔재
입력 : 2015.06.12 03:00 / 조선일보
일본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1887년 당시 소학생(초등학생)이었던 왕세자에게 가방 하나를 선물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육군 보병이 메던 가방을 본뜬 란도셀이었다. 그 왕세자는 20여년 후 다이쇼(大正) 일왕(재위 1912~1926년)이 됐다. 란도셀의 유래는 일본 군국주의 정신을 소학생에게 가르치는 데서 온 셈이다. 일본의 한 버라이어티쇼에선 가죽으로 만든 견고한 란도셀 가방 옆에 달린 신발주머니 고리가 원래 수류탄을 달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도 일본 소학생들은 란도셀을 메고 학교에 다닌다. 란도셀을 멘 일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군국주의가 눈에 겹쳐 도무지 불편하다.
이런 란도셀이 SK텔레콤의 TV 광고(CF)에 등장했다. SK텔레콤은 아이들이 손목에 차는 소형 스마트폰인 키즈폰을 선전하는 TV 광고에 아역(兒役) 배우가 란도셀을 메고 나오는 장면을 넣었다. 란도셀을 광고에 넣은 이유는 단순하다. 란도셀이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라고 판단하고, 그 이미지를 키즈폰에 덧씌우려는 의도다. SK텔레콤의 키즈폰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엄마들에게 잘 팔리는 인기 상품이 됐다.
일본이 자랑하는 전통문화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가부키(歌舞伎)는 한때 공연 금지로 존폐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다. 70년 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미국에 패배한 뒤 점령군으로 들어온 맥아더 장군이 군국주의 잔재 일소 차원에서 내린 조치였다. '일본 미(美) 의식의 정수'라는 가부키지만 맥아더 장군의 눈엔 군국주의 정서가 서린 연극으로 비쳤던 것이다. 2년 뒤 해금된 가부키는 고도 경제 성장기와 버블 시대를 거치며 다시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요즘엔 일본 젊은이의 관심 밖으로 점차 멀어지는 신세다.
일본 드라마에는 이제 거의 등장하지 않는 가부키 용어들이 KBS 인기 드라마에 나온다. KBS의 금·토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주인공들이 여러 차례 '삼마이' '니마이'란 말을 쓰자 단어 뜻이 궁금해진 시청자들이 네이버에 질문을 올려놨다. 삼마이와 니마이는 '삼마이메(三枚目·셋째)' '니마이메(二枚目·둘째)'라는 가부키 용어에서 왔다. 가부키 공연장 앞에는 주요 배우 8명의 이름이 붙는다. 둘째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 이름이, 셋째는 우스꽝스러운 역할의 배우 이름이 새겨진다. KBS 제작진은 배경이 TV 방송국인 드라마의 현장 분위기를 살리려고 이런 단어를 썼을 것이다.
우리 삶의 곁엔 아직도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다. SK텔레콤이 란도셀의 유래를 알았다면 TV 화면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을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두 달 후면 광복 70주년이다. 일본과 그들의 군국주의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2차 대전의 A급 전범으로 사형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가 일본 법률에선 '전범(戰犯)'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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