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준하 無罪' 再審 결과를 접하고
입력 : 2013.01.25 23:04 | 수정 : 2013.01.25 23:27 / 조선일보
법원은 엊그제 1974년 유신(維新)헌법 반대 행위를 금지한 긴급조치 1호를 위반해 15년형을 선고받은 고(故) 장준하씨의 유족이 낸 재심(再審) 사건에서 "긴급조치 1호는 국민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2010년 대법원이 판결했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하셨던 민족의 큰 어른이란 평가를 받고 있고 재판부도 이견이 없다"고 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게 하고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부여한 비민주적 유신헌법 철폐 투쟁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권은 유신헌법 반대 투쟁에 긴급조치로 대응했고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비방하거나 개폐(改廢)를 주장하는 행위 일체를 금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해 비상 군법회의에 회부하도록 한 조치였다. 유신 이후 '유신헌법 개정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서명운동'에 최초로 공개적으로 나섰던 장씨에게도 긴급조치 1호 위반 죄명이 적용됐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본류(本流)는 장씨처럼 자유민주 헌정(憲政) 질서를 되살리려는 투쟁에 몸을 던진 이들이었다. 장씨에 대한 무죄 확정은 자유민주 헌정 회복을 위해 고초를 겪은 모든 이에 대한 명예 회복 조치다. 되돌아보면 유신 정권의 장기 집권 폐해가 80년대 신군부 집권으로 이어지면서 김일성 추종 세력이 민주화 운동에 파고들어 때로는 민주화 운동의 본류를 밀어내고 재야 운동의 주도권을 쥐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국민도 착잡한 눈길로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게 됐다.
장씨는 자신이 창간한 잡지 '사상계'를 통해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그러나 장씨를 비롯한 이 잡지의 편집위원은 대부분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개신교 자유주의자들이자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병행 발전을 주장했던 민족주의적 인사들이었다. 사상계는 1970년 권력층의 부패를 야유한 시인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실었다가 폐간됐다. 그 김지하 시인도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 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장씨와 김지하 시인에게서 보듯 민주화 운동 본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유민주 헌정' 회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 당선인 역시 민주화 본류 세력의 자유민주 헌정 질서 회복 투쟁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에 동의한 것이다. 40년을 지체한 장씨에 대한 무죄 선고를 계기로 우리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다시 올바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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