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정부 조직 확대 개편이 '혁신'인가

도깨비-1 2012. 12. 4. 16:08


 정부 조직 확대 개편이 '혁신'인가

 

행정의 일관성 해칠 뿐 아니라

정치인·관료 등 공급자 위주…
수요자 입장에서 재조정 필요
소비자 이익 보호하기 위해선
'심판'과 '코치' 기능 분리하고
융합 통해 성장 동력 키우길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교수/ 조선일보 2012. 12. 04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정부 조직의 확대 개편을 표방하고 있다. 창조 경제 구현과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중소기업부를 신설하고, 정보화를 위해 정보통신부를 부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잦은 부처 통폐합은 전시 행정의 전형이다. 대단한 혁신을 하는 듯 보이지만 행정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해쳐 득보다 실이 크다. 예컨대 과거 상공부는 1993년 상공자원부 전환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로 네 차례 개편되었다. 미국의 상무부가 100여년, 영국의 상공부가 40여년 역사를 가진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통폐합이 수요자인 국민보다 집권자의 정치적 동기와 관료·관변 집단 등 공급자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점이다.
   현재의 정부 조직이 불완전하므로 개편이 필요하다면 수요자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재정 위기의 시대에는 행정의 효율성이 기본이다. 정책 수요자가 어떤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해결할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하고 정책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스포츠 경기의 심판 같은 규제 기능과 코치 격의 지원 기능이 분리되어야 소비자의 이익이 보호된다.
   정보 기술과 생명공학을 핵심으로 하는 제조업 부문 간 결합이나 제조·서비스 결합 같은 융합이 미래 성장 동력이다. 제조업 시대의 혁신을 기술 로드맵이 주도했다면 서비스화·융합 시대의 혁신은 소비자의 요구가 주도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수요자의 요구에 발 빠르게 부응하는 것이 경쟁력의 요체다.
   정보통신부 부활 주장을 예로 들어 보자. 과거 유선전화·인터넷·이동통신 등 네트워크를 구축하던 시기에는 정보통신 전담 부처가 기여하였다. 그러나 융합의 시대에는 정보통신산업의 지원 업무도 융합의 수요 산업을 포함하여 산업 전반을 관장하는 부처가 통합적으로 수행해야 효과적이다. 정보화의 기획·조정을 위한 대통령 참모의 역할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집행 조직인 정보통신부 설치는 시대 역행적이다. 과거 강력한 규제 권한과 함께 정보화촉진기금의 막대한 재원을 주무르던 관료나 일부 수혜 집단의 이익과 결부될 뿐이다.
   부처 통폐합보다는 수요자 입장에서 정부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청이 다양한 지원제도를 직접 수립하고 각 부처도 경쟁적으로 중소기업 지원 제도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정책 지원의 중복이나 사각지대는 필연적이다. 미국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기술개발 보조금, 정책금융, 정부 구매 지원 등으로 표준화되어 간결하다. 기술개발 보조금은 중소기업청이 자체 제도를 수립하기보다 농무부·상무부·국방부 등 11개 부처의 프로그램이 중소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도록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각 부처의 정부 구매 사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청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지역 사무소를 방문하면 모든 부처의 지원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수요자 입장에서 설계되어 있다. 우리 중소기업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조직으로도 부처 간의 원활한 협력을 통해 수요자 관점의 효과성과 접근성을 높인다면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소비자가 경제 운영에서 홀대받아 왔다. 국산 자동차나 휴대폰 등은 국내 소비자를 해외 소비자에 비해 가격·품질로 차별한다. 의류·패션, 화장품, 위생용품 등의 수입 상품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금융기관은 금융 소비자를 약탈하며, 공기업도 소비자를 소홀하게 대우한다. 교육과 의료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공급자 관점에 의한 정부 조직과 기능의 산물이다. 경제 행정 조직이 수요자 위주로 정립되어 전문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국민에 봉사하며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