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가족이 모이는 주말 주택… 광주광역시 화암동 '산조(散調)의 집'

도깨비-1 2012. 8. 3. 10:19


건물은 줄이고 시야는 넓히고… 3代, 자연에 안기다

 

[집이 변한다] [20] 가족이 모이는 주말 주택… 광주광역시 화암동 '산조(散調)의 집'

 

 조선일보 2012. 08. 03 / 광주 김미리기자


49㎡ 크기에 필요 공간만 구성
무등산에 바위 한 점 놓듯 설계
건물 주위 널찍한 데크 설치…
산·나무·가족을 '바라보는 집'

 

   70대 노(老)화백의 화폭엔 늘 가족이 한가득이다. 자신과 아내, 아들 하나, 딸 둘. 다섯 식구 얼굴이 오순도순 담겨있다. 한평생 가족을 그려온 화가는 화폭 밖 자연으로 가족애를 옮겼다. 장성한 자식과 손자 손녀를 넉넉한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집'을 지었다.
   광주광역시 화암동, 보드라운 무등산 자락에 최근 들어선 '산조(散調)의 집'이다.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유명한 어느 화백이 작업실 겸 주말 주택으로 지은 별서(別墅)다. 주말이면 광주 시내 아파트에 사는 건축주 부부와 근처 아파트에 사는 아들 가족, 서울에 사는 두 딸이 이곳으로 모인다. 그렇다고 '나 여기 있소' 외치는 거창한 집은 아니다. 연면적 49.23㎡(약 15평)의 미니 주택. 방 하나, 거실 하나, 주방, 화장실. 콘도처럼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만으로 구성됐다. 부부 건축가인 '가온건축' 임형남(51)·노은주(43)씨가 설계한 이 집은 최근 해외 건축 웹진 '아키데일리' '아키넥트' 등에 잇따라 소개됐다.
   "산속에 바위 한 점을 놓는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한 집이라 할까요." 최근 이 집에서 만난 건축가 부부는 "바위가 많아 동네 이름이 화암(花巖)"이라며 "'무돌'(무등산 돌을 일컫는 말)을 이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했다. 집의 인상을 좌우하는 외벽을 바위 색과 비슷한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결정한 이유다. 건축가는 "바위 조각이 사방에 흩뿌려진 언덕에 정박한 자그만 집"이라고 했다.
   설계의 모티브는 우리의 전통 음악 가야금 산조였다. "설계 때문에 서울과 광주를 고속버스로 오가는 길에 산조를 듣곤 했어요. 이 지방이 산조의 발원지이기도 했고요. 산조 가락은 문을 열듯 천천히 시작해 조금씩 빨라지지요. 문득 산조처럼 단순한 듯하면서도 입체적인 집이 떠올랐어요." 산조의 '흐트러진 가락'은 사방으로 흐트러진 봉우리도 연상시켰다.
   집은 검박하며 담백하다. "무등산을 바라보는 조망대 기능, 가족이 만나는 접점 기능, 이 두 기능에만 충실하면 됐기에 현란한 기교와 건축적 수사(修辭)는 최대한 걷어냈다"고 한다. 설계는 마당에 있는 100년 묵은 살구나무와 무등산 봉우리에서 출발했다. "대지 서쪽으로 발성 연습을 하듯 나란히 어깨를 포개고 무등산의 연봉(連峯)이 서 있어요. 원래 남향집을 생각했지만 이 집의 진짜 주인공인 '자연'을 위해 과감히 서쪽으로 창을 크게 냈어요." 다행히 집 서쪽에 우뚝 솟은 살구나무가 깊은 그늘을 만들어 차양(遮陽) 기능을 했다. 거실과 침실에 낸 커다란 통창은 '자연의 액자'다.
   작은 집인 만큼 내부 구성은 간단하다. 최소 공간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평면이 그대로 집의 형태가 됐다. 천장에 다락처럼 만든 작은 창고엔 접는 계단을 설치해 필요할 때만 펴도록 했다.
   집의 방점은 애초에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산을 '바라보는' 일, 마당을 뛰어다니는 손자들을 '내다보는' 일, 살구나무를 '올려보는' 일…. 집 안 일보다는 집 밖에서 이뤄지는 가족 구성원의 '보는 행위'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두 건축가는 "집 바깥으로 주머니 같은 데크를 여기저기 달아 가족들이 다양한 '보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손자들이 어찌나 뛰어노는지, 갈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화가 건축주의 만면에 그윽한 미소가 번졌다.
   이 집의 또 다른 미덕은 요원할 것만 같은 전원주택의 꿈을 '소형 주말 주택'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다. 직장, 학교 등 생활 기반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삶을 통째로 시골로 이식하기란 쉽지 않다. 두 건축가는 "도시의 일상은 두되 주택을 경험할 수 있는 차선책이 교외에 작고 경제적인 집을 짓는 것"이라 했다. 이 집 공사비는 9000만원 정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