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최보식 칼럼] 손잡고 '박근혜 때리기'

도깨비-1 2012. 6. 15. 10:42


[최보식 칼럼] 손잡고 '박근혜 때리기'

'非朴 주자들' 박정희 공격에 앞장
'유신 공주' '독재자의 딸' 쏟아내
이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갑자기 좌파 성향으로 돌아섰나
민주당은 박근혜가 소송 제기하자
'아이도 안 낳아본 게…'


   최보식 선임기사/ 조선일보 2012. 06. 15.

 

   합쳐도 '5%대 지지율'. 바늘처럼 찌르는 수식어이지만, 새누리당 비박(非朴) 주자들의 목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다만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면 차선(次善)의 목표도 있다. 자신이 꼭 아니더라도 '정권 재창출'을 하는 것이다. 본심이 어디에 있든 "완전국민경선제로 가야 경선 흥행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명분이다.
   비박 주자들도 새누리당의 간판 타자들이었다. 입을 열면 귀를 기울일 만했다. 그런 이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로 점점 작아지고 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바쁘다. 까마득하게 앞서 있는 박근혜 의원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공격'에 몰두하면서 신문 지면의 1단짜리 크기로 변했다.
   도대체 그를 빙 둘러싸고 '독선' '불통' '오만함' '안하무인'이라고 퍼부어도 반응이 없다. 저 포용력 부재(不在)! 관전자조차 답답한 심정이다. 뭐, 그 정도로 바뀌었을 것 같으면 지금 박근혜의 존재가 없었을지 모른다. 독한 비판들도 워낙 듣다보니 진부해졌다. 마음은 급하고, 박 의원만 때려서는 극적 효과가 없다고 계산한 걸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 아닌가. 군사독재와 유신이란 체제를 만들어 비극을 줬다. 만주 군관학교를 다녔고 여순반란사건 이전에 남로당 비밀 당원이었다." "유신 독재가 부활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유신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대권을 다투는데 이보다 더 심한 공격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다. 명색이 보수 정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 "공이 더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해온 쪽이다. 일부 진보 진영 학자도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인정한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인식과도 관계되는 것이다.
   다른 특별한 과외를 받았던 것일까. 비박 주자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갑자기 좌파 성향으로 돌아선 것처럼 됐다. 박정희 시절의 '유신'과 '독재'만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 2세 출신인 대선 주자까지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뭔가에 홀리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
   또 어떤 주자는 자신의 진가(眞價)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지만, 박 의원을 김정은과 동격으로 보는 듯한 표현도 썼다. "지금 북한 김정은을 우리가 왜 비판하고 있나. 할아버지 아버지 잘 만나서 나이 20대에 독재하는 것 아니냐. 부모를 잘 만나서 잘나가는 '세습 리더십'보다는 서민의 삶을 구석구석 이해하는 서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는 노무현 탄핵 역풍을 맞았던 '천막 당사' 시절의 2004년 선거와 지난 총선 때 어쨌든 앞장서서 당을 위기에서 구한 동료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5년 전 한나라당 경선 때는 박빙 승부여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향해 '유신 망령' '독재자의 딸'로 대놓고 인신공격을 했던 기억은 없다.
   어느 조직이든 외부의 공격만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에서 스스로 허물어진 뒤에야 공격을 받는 것이다. 여당에서 박 의원을 '독재자의 딸'로 규정하면, 야당에서는 "유신의 후예인 유신 공주" "박근혜의 악질적 색깔론은 히틀러식 발상" "원조 종북(從北)은 남로당 핵심 당원이었던 박정희"라며 서로 주고받는다. 어느 쪽이 우군이고 적군인지 구별이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박근혜 의원이 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를 여러 번 만났다"고 공격했을 때였다. 박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흥분한 민주당 원내 대책 회의에서 "아이도 안 낳아본 게…"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취재진 앞에서는 "한밤중에 아이를 등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응급실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어 본 적이 있는가. 생활고로 밤새워 부부 싸움을 하며 가정 살림을 걱정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오히려 꾸짖는 듯했다.
   그 뒤 한 비박 주자가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자 "(고소를 한) 박근혜가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마치 야당과 더 다정하게 손잡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상식으로는 "민주당 원내대표의 음해성 발언이다. 그 양반은 이런 전력이 몇 번 있다. 증거가 있다면서 왜 증거를 내놓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비박 주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의 매력으로 국민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절제나 품위,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찾을 데가 없다. 자기 이익 쟁취 말고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 것 같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 지경이니 장차 어느 선에서 그칠지, 혹 세불리(勢不利)면 보따리를 싸고 떠날지 짐작이 안 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을 백번 이해해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안쓰러움을 떨칠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