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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 실패 답습하는 한국

도깨비-1 2011. 5. 17. 17:17


[특파원 칼럼] 일본 실패 답습하는 한국

 차학봉 도쿄특파원/ 2011. 05. 15 조선일보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시 인근 고마키(小牧)시에는 '피치라이너'라는 경전철이 달리던 궤도가 곳곳에 흉물로 남아 있다. 1991년 개통 당시 피치라이너는 건설비와 운영비가 적게 드는 '꿈의 교통수단'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통 16년 만인 2006년에 운영을 중단했다. 300억엔(약 4000억원)이 넘는 공사비가 들어갔지만, 이용자가 너무 적었다. 연결 교통수단도 부족했고 도시 인구도 예상처럼 늘지 않았다. 그 결과 당초 예상했던 이용객은 하루 900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200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용자가 적다 보니 매년 부채만 쌓여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시설이 노후화돼 보수유지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적자를 견디지 못한 시당국은 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며 경전철이 자동차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만연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전철을 도시발전의 상징으로 보고 민간사업자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피치라이너처럼 폐쇄되지는 않았지만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경전철이 일본에는 적지 않다. 일감을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건설업자, 경전철을 팔려는 제조업체, 폼 나는 업적을 남기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욕심이 합쳐지면서 교통수요를 부풀리기에 바빴다.
   완공은 됐지만 이용객이 적어서 연간 300억~500억원의 적자가 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공사를 끝내고도 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 경전철은 피치라이너가 폐쇄되기 직전인 2005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실패 판정이 내려졌는데도 한국에서는 7000억원이 넘는 거액이 투자됐다. 현재 한국에서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경전철 사업은 84개 노선으로, 사업비가 51조원을 웃돈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겠다는 무모한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테마파크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무리하게 빚을 내 테마파크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의 실패에는 아예 눈을 감고 있다. 유바리시는 부채를 갚기 위해 학교와 병원을 통폐합하고 수도요금 등 공공요금을 올리는 바람에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등 도시 몰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까지 토목사업을 남발하다가 '곰과 다람쥐만 다니는 도로' '유령 공항'을 양산한 일본식 경기부양 정책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선거 때면 빠지지 않는 단골공약이다. 최근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줄도산 사태도 일본 버블 붕괴 과정 그대로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건설사와 저축은행들이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린다는 환상에 빠져 마구잡이로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고 정부는 방관했다.
   한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데도 이를 무시하다가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