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동서남북] "욕 들어 묵으면서까지"

도깨비-1 2011. 3. 11. 14:34

[동서남북] "욕 들어 묵으면서까지"

선우 정 팀장/ 조선일보 2011년 3월 8일

 

   경남 통영의 충무김밥은 규모가 각기 다른 '원조집'이 많다. 이들 중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풍화김밥은 손님이 많아 입구에 행렬을 이루는 집으로 유명하다. 본관 6평, 별관 10평의 소규모다.
   이 집 이야기가 본지 8일자 A2면에 실렸다. 제목은 '소문난 맛집들, 너도나도 가격 인상'. 전국 22개 맛집 중 한 곳으로 소개됐다. 그런데 풍화김밥만 이야기가 제목과 달랐다. '너도나도 올릴 때 나 홀로 안 올린 집'으로 소개됐다. 경쟁 맛집들이 반찬인 무와 오징어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충무김밥 값을 500원 올렸을 때 풍화김밥은 4000원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주인 김민숙씨에게 전화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도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조그만 시골집이라 얼마에 얼마나 팔아야 얼마가 남는지 정확히 계산해 본 적도 없다"며 "그냥 손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곤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욕 들어 묵(먹)으면서까지 묵(먹)는 장사 안 하고 싶습니더(다)."
   풍화김밥은 '500원 전쟁'을 벌이는 경남 통영시에 든든한 우군(友軍)이다. 통영시는 7일부터 시내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상대로 '제값 받기 운동'을 시작했다. 작년에 500원씩 줄줄이 올린 충무김밥 값을 원상 복귀시키자는 것이다. 현재 캠페인에 참여한 충무김밥 집은 19곳. 풍화김밥처럼 남들 올릴 때 안 올린 집도 있고, 터미널식당처럼 올렸다가 내린 집도 있다.
   왜 이런 운동을 할까. 담당 부서인 통영시청 지역경제과에 물었다. "한려수도 케이블카가 생기고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엄청 늘었심더. 최고 호황임더. 통영 인구도 작년보다 1040명이나 늘었고예. 그런데 관광객이 충무김밥이 '비싸졌다' 안 합니꺼. 하지만 강제할 방법은 없습니더. '잘나갈 때 잘해보자'고 권유하는 깁니더."
   경제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기업의 모든 철학은 최종적으로 '가격'에 수렴된다. 프랑스의 에르메스처럼 최고의 가격으로 경영철학을 구현하는 곳도 있고, 일본의 다이에이처럼 '가격파괴'라는 철학을 끝까지 밀고 가는 곳도 있다. 오른 재료 값을 곧장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남들이 가격을 올렸다고 냉큼 따라 올리는 곳은 제아무리 글로벌 대기업이라도 그저 삼류다. 전경련 테이블에서 대통령과 경제를 논의하는 경영자라도 가격에 철학을 담지 못하고 세태에 휩쓸리는 경영자라면 그저 삼류다. 기업을 설득하지 못하고 공정위와 동반성장위를 동원해 압박하는 정부 역시 천하의 'G20' 정부라도 삼류에 불과하다.
   반대로 "욕 들어 먹으면서까지 먹는 장사 안 하겠다"는 가게 주인은 지방의 16평짜리 가게에서 평생 김밥을 말아 팔아도 일류다. "잘나갈 때 좀 더 잘해보자"며 주민을 설득하는 지방정부가 있다면 인구 14만명 소도시 지방정부라도 일류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삼류만큼이나 일류도 많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소비가 공급을 능가하는 경제다. 이런 경제에선 남이 올리니 나도 덩달아 올리는 삼류도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력 소비층(15~64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7년부터 그런 느슨한 시대는 끝난다. 소비곡선이 하강하는 순간, 혁신을 미루고 편승만 하던 삼류는 도태되고 풍화김밥 같은 일류만 살아남을 것이다. 소비자를 졸(卒)로 보는 눈꼴신 세상도 앞으로 몇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