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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

도깨비-1 2010. 12. 10. 14:04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 [鍪藏寺阿彌陀佛造像事蹟碑螭首─龜趺]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暗谷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비석.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제39대 임금 소성왕(:재위 798∼800)의 비()인 계화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고자 아미타불을 만들어 무장사에 봉안할 때 세운 것이다. 귀부 높이 58cm, 너비 168cm, 길이 110cm. 이수 높이 65cm, 너비 81cm이다. 지정 당시부터 비신은 없었다. 다만 귀부의 목부분과 신석()의 단석() 3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원소재지에는 이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비좌() 밑에 귀부가 2좌()인 점과 비좌 4면에
십이지신상을 양각한 것이다. 귀갑()은 도형화하여 조형되었고, 귀부 2좌는 비좌의 십이지상 조식()과 함께 외호안좌()의 목적의식이 은연중에 작용한 듯하다. 이수도 약 1/3이 떨어져 나갔는데 거기에는 육룡반결운() 무늬가 조식되었다. 정면 중심부의 사각 전액()은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글자는 왕희지 서체이며, 조선 후기의 금석학자 완당() 김정희()는 그 서품()을 백월비()에 견주었다.
2008년 11월 20일 비신복원을 위한 조사를 시행하던 중 귀부의 왼쪽 머리 1점이 발견되어 복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장사 [鍪 藏寺] 

경북 경주시 암곡동에 절터가 남아 있다.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숨겼다 하여 무장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삼국유사》가 씌어질 무렵까지는 사찰이 현존해 있었으나 그 뒤 무슨 이유로 폐허가 되었는지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미타전은 이 절의 고승이 잠을 자다 꿈을 꾼 뒤 세웠다 하며 안에 봉안된 아미타불과 신중()은 소성왕비인 계화왕후가 먼저 죽은 남편의 구원을 위해 희사한 재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터에는 미타상을 조성한 인연을 적은 비문 무장사아미타불 조상사적비의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비신은 왕희지() 글씨를 집각한 것으로 1915년 파편 3조각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비문으로 무장사터라는 것이 알려졌다. 숲 사이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3년에 복원한 무장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26호), 석등의 옥개석()과 미타전의 자리를 짐작하게 하는 10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 

 

 

 

 

 

 

 

 

 

 

 

2010. 호젓한오솔길

 

출처 :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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