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명소

[스크랩] 세상살이에 지치거든 폐사지로 가라

도깨비-1 2010. 12. 10. 13:49
세상살이에 지치거든 폐사지로 가라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1210123403763

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 
글쓴이 : 오토타임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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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사지-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소재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시인 정호승은 거듭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며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고 낮은 목소리지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고백을 시 '폐사지처럼 산다'에서 말하고 있다.

↑ 절집 장독대

↑ 새로 조성된 정원과 요사채

↑ 민초들의 마음이 담긴 배바위

↑ 기원하는 여인들

↑ 얼굴이 뭉개진 여래

↑ 보물로 지정된 안국사지탑

↑ 왼쪽의 협시불

↑ 사각 보개를 얹은 본존불

↑ 안국사지 석불입상

↑ 안국사지 석불입상 뒷모습

어수선한 세상, 스산한 계절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를 후렴처럼 읊조리며 충남 당진읍 정미면 수당리에 자리한, 폐사지 안국사지를 찾아간다. 안국사는 창건 연대가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세워져 고려 때 번창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1929년에 다시 세웠다고 하나 또다시 폐사됐다.

돌로 쌓았던 축대가 남아 있는 절터 안에는 장대석이 이리 저리 나뒹굴고 주춧돌 서너 개도 보인다. 낙엽이 뒹구는 빈 절터를 지키는 석불입상과 석탑의 모습이 덩그러니 춥다. 무너져 내려앉은 석탑이며 마모된 석불 모습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친친 휘감겨 있다.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선 석불입상(보물 제100호) 앞에 두 손을 맞대고 절을 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을 염원하는 걸까, 쉬 자리를 뜨지 않고 몇 번이나 간절히 머리를 조아린다. 그들 앞에 서 있는 석불입상의 모습을 뜯어보니 웬걸, 이건 좀 엽기적인 상황이다. 지나치게 큰 키의 부처님도 부처님이지만 그 오른쪽의 석불은 허리까지 땅에 묻혀 있고, 왼쪽 석불은 아예 머리가 달아나고 없는 채로 서 있다.

보물 제100호로 지정된 이 세 석불 중 중심에 선, 키가 5m나 되는 석불이 본존불이다. 머리는 원통형이고 얼굴은 사각형인데 넓적하다.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까지 쓰고 있어 가뜩이나 크고 불균형한 모습이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큰 몸에 견주면 팔과 손은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쪽에 대고, 왼손은 배에 붙여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괴체화(塊體化)한 고려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괴산 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과 함께 주목된다.

석불 앞에 있는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 또한 풍상을 견뎌낸 흔적이 온몸에 남아 있다. 탑은 아랫부분인 기단부가 다른 탑들보다 간단하고, 2층 위로는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다. 탑신은 유일하게 1층 몸돌만 남아 있는데, 각 귀퉁이에 기둥을 본떠 새기고 한 면에는 문짝 모양을, 다른 세 면에는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폐사지에 남아 있는 또 다른 흔적은 '배바위'라 불리는 매향암각이다. 석불입상 뒤쪽에 보이는 큰 바윗돌이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이 미륵불이 미래에 나타나면 쓸 향나무를 땅에 묻어 놓았다는 기록이 거기에 새겨져 있다.

세상살이는 여느 때나 팍팍한가 보다. 그때나 지금, 민초의 삶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으리라.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는 시인의 싯구를 읊조리며 폐사지를 찾아 서성이는 오늘의 이 민초의 삶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맛집

당진 읍내로 나가면 한정식 전문집인 '설악회가든(041-352-0046)'이 있다.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깔끔한 음식 못지 않게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근처 '당진제일꽃게장(041-353-6379)'은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게장으로 유명한 맛집. 알이 꽉 찬 게로 담근 실속 있는 게장맛이 일품이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나가 647번 지방도를 탄다. 안국사지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수당리로 향한다. 수당리 경로당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좁은 시멘트길을 따라 들어가면 원당지 연못을 지나 안국사지에 이른다. 당진읍내에서 서남쪽으로 10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폐사지처럼 산다

    - 정 호승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