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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집값에 관한 아주 위험한 발상 / 선대인

도깨비-1 2010. 7. 16. 14:01
[세상읽기] 집값에 관한 아주 위험한 발상 / 선대인
 
          한겨레
올해 들어 최근으로 올수록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세 상승’을 부르짖던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들이나 언론들도 이제는 대부분 주택시장 위기를 합창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세상승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값이 떨어진 지금이 집을 살 적기”라는 식으로 선동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정말 지금이 집을 살 적기일까. 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주기는 보통 10~20년 정도의 장기 사이클을 그린다. 이 주택시장 사이클의 흐름으로 볼 때 수도권 주택시장은 여전히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의 초기 국면에 놓여 있다. 이는 명목가격이 아닌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 주택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민은행이 주택가격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한국은 크게 두 차례 부동산 버블기를 겪었다. 이른바 ‘버블세븐’ 등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 가격은 상승(1987~1991년 5월) → 하강(1991년 6월~1998년 11월) → 상승(1998년 12월~2006년 말) → 하강(2007년 초~최근)의 파동을 그려왔다. 국내에서도 부동산 버블과 버블 해소 과정이 뚜렷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동안 주택가격이 국지적으로 반등했다고는 하나 2차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약한 흐름일 뿐이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호가를 주로 집계해 작성한 지수다. 집값이 오를 때는 먼저 올리지만, 집값이 내릴 때는 거의 요지부동이다. 따라서 호가가 아닌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추이를 보면 이미 대세 하락 흐름에 들어 있음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 연구소는 호가가 아닌 국토부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수도권 아파트단지 수천곳의 실거래가 추이 패턴을 산출했다. 그 결과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이미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의 고점 대비 서울 강남3구의 경우 15~20%, 일산, 분당, 평촌, 용인, 산본, 수원, 김포, 파주 등 수도권 아파트들이 밀집된 주요 도시들의 경우 이미 25~35% 떨어진 상태다. 2006년 이후 국내 누적 물가상승률 약 15%를 고려하면 실질가격으로는 수도권 주요 도시들의 경우 이미 40~45% 떨어진 셈이 된다. 고점에서 5% 정도밖에 안 떨어진 것으로 나오는 국민은행이나 부동산정보업체 호가는 허구인 것이다.

아파트 거래량 지표 또한 장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부터 집계됐으므로 그 이전 거래량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1996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가계대출과 아파트 거래량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추정해 보았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과 2006년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분기별로 20만호를 넘었으나 2007년 이후로는 평균 8만호 수준으로 구조적 감소기에 진입했다. 올 2분기는 6만호 수준까지 떨어졌다. 투기 열풍으로 집값이 치솟는 가운데 소득으로도 모자라 빚을 내서 살 만한 사람들조차 집을 다 사버려 수요가 거의 바닥나버린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주택거래 침체는 몇 가지 부양책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상당한 가격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향후 주택가격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주택시장의 사이클은 결코 주식시장처럼 짧지 않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장기간에 걸쳐 커졌던 만큼 해소 과정도 크고 오랜 진통이 뒤따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주택가격은 머리에서 어깨 정도로 내려온 수준이다. 일시적 기복은 있겠지만 집값은 아직도 장시간에 걸쳐 발바닥까지 내려갈 일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집값이 내린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역발상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주택시장에서 지금의 역발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kennedian3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