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화천군의 '6·25 報恩'

도깨비-1 2010. 6. 2. 11:19

관내서 戰死한 에티오피아 용사 47명 후손 찾아 장학금
군청 공무원 현지 파견 대상… 학생 61명 찾아내
작년 첫 도움 받은 학생들 "한국에 감사" 편지 보내와

 

    조선일보/ 2010.06.02

 

   지난 4월 강원도 화천군청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눅눅한 갱지 27장에는 영어와 에티오피아어로 쓴 글씨가 빼곡했다. 화천군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는 6·25 참전 에티오피아 용사의 후손 35명이 감사의 뜻을 담아 보내온 편지 꾸러미였다.
   브룩타이트 훌루게타(Hulugeta·12)양은 "한국민 여러분은 내가 훌륭한 학생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줬습니다. 한국에서 전사하신 우리 할아버지들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고 썼다. 에유엘 아세파(Assefa·10)군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6·25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에티오피아군은 1951년 화천군 '봉당덕리 전투'에서 첫 전사자를 냈다. 에티오피아가 황실근위대를 주축으로 파병한 부대는 '칵뉴(Kagnew)부대'로 불렸다. 칵뉴는 '물리치기 어려운 적을 궤멸시킨다'는 뜻의 에티오피아말이다. 먼저 파견된 제1 칵뉴대대 1185명 가운데 47명이 화천지역 전투에서 전사했다.
   화천군은 6·25 60주년을 1년 앞둔 작년 초 화천에서 희생된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의 후손들에게 보은(報恩)하는 사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군청 공무원들은 현지 주재 한국대사관과 교민을 통해 조사한 뒤 에티오피아 학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장학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화천군은 곧바로 예산 4000만원을 편성하고 한 달에 25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문제는 장학금을 받을 참전 용사 후손을 찾는 일이었다. 대상 학생을 찾기 위해 화천군청 최문순(55) 주민생활실장과 윤경하(43) 주사가 작년 12월 에티오피아를 찾아갔다. 다행히 에티오피아에 화천 출신 교민 하옥선(52)씨가 살고 있었다. 통역을 자처한 하씨까지 '에티오피아 지원팀 3인방'이 꾸려졌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현지 한국전참전용사회로부터 참전 군인 명부와 주소를 받아 85가구를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다.
   최 실장은 "평균 해발 2000m 고산지대인 에티오피아를 여기저기 다니다가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구토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소 체계가 엉망이어서 집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6일 동안 돌아다닌 끝에 61명(초등생 21명, 중고생 19명, 대학생 21명)의 학생이 추려졌다. 윤 주사는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참전 용사들이 참전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참전 증명 자료도 많이 사라져버려 장학금 줄 학생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2월 11일 처음으로 장학금이 전달됐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참전용사회관에 모인 학생 61명은 B학점 이하일 경우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각서를 썼다. 하지만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돈 벌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은 한 달에 300비르(약 3만원), 중학생은 400비르, 고등학생은 500비르의 장학금을 각각 주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상위 10% 직업에 속하는 택시기사가 한 달에 버는 돈이 300비르가 조금 안 된다고 한다.
   그 뒤 장학금 전달은 하씨가 맡고 있다. 하씨는 현지 한국대사관으로 보내온 군청 장학금을 찾아 매월 1일 참전 용사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한글과 '아리랑' 같은 한국민요를 가르쳐 주고 있다. 최 실장과 윤 주사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은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북한 공산당과의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화천군은 앞으로 화천지역 전투에 참전한 제1 칵뉴대대 후손뿐 아니라 강원도 다른 지역 전투에 참전한 제2 칵뉴대대, 제3 칵뉴대대 후손들에게도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