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박철순 등)

[스크랩] [천일평의 아이&메모] 한국야구 21세기 첫 10년간 10대 명장면

도깨비-1 2009. 12. 29. 15:49
출처 : 야구
글쓴이 : OSEN 원글보기
메모 :
 
한국야구는 2000년대들어 크게 발전했습니다. 1905년 미국인 질레트 선교사에 의해 한국에 들어온 야구는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고교야구와 실업야구 등 아마야구가 인기를 끌면서 도약기에 들어섰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습니다.

 

 

 
첫해부터 '만루홈런으로 동이 트고 만루홈런으로 저물었다'는 유행어를 낳으며 인기를 모은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일본, 등 야구 선진국에 비해 두 단계 이상 뒤쳐졌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수준차를 좁히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 이후는 대표팀 경기력만 놓고 보면 어깨를 겨루게 됐습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2000년대 초반에는 추락했다가 2007년 이후 다시 살아나는 심한 굴곡현상이 나타났는데 2000년부터 올해까지 새 천 년 첫 장을 연 지난 10년간 한국야구에서 보여준 추억에 남거나 인상 깊었던 순간의 한국야구 10대 명장면을 꼽아봅니다.

☞10대 명장면은 필자와 OSEN의 야구 담당 기자들이 뽑은 것입니다.
◈ 베이징 올림픽 기적의 우승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김경문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박찬호, 김병현 등 스타 플레이어가 빠진 가운데 출전, 동메달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대표팀은 미국과의 첫 경기부터 8-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등 결승까지 9차례 경기에서 네덜란드전만 제외하면 모두 역전승이나 한 점차 승부로 가슴을 조이는 명승부를 연출한 끝에 9전전승의 위업을 쌓고 올림픽 남자 단체종목 구기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숙적 일본과의 예선 리그에서 한국은 이대호의 동점 투런포에 이어 김현수가 대타 적시타를 때리며 5-3으로 역전승했고 준결승에서 다시 만나 선발 김광현의 호투와 해외파 중 유일하게 참가한 이승엽이 8회말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을 뿜어 6-2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강호 쿠바와의 결승은 류현진이 역투하는 가운데 한국이 3-2로 살얼음판 리드를 하다가 9회말 푸에르토리코인 구심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1사 만루의 위기를 맞고 포수 강민호는 퇴장까지 당했으나 구원등판한 정대현이 메이저리그에서 4000만 달러를 부른 강타자 구리엘을 상대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대현의 실투로 인해 가운데 공을 잡은 진갑용의 놀란 표정→그 다음 살짝 바깥으로 휘어진 정대현의 공을 때린 구리엘의 내야 땅볼→박진만의 침착한 포구와 2루수 송구→고영민의 약간 박자가 맞지 않은 포구와 그래도 침착하게 던진 1루 송구→한국 선수들의 "만세!" 환호성과 눈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2002 한국시리즈 삼성의 이승엽 동점 스리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

삼성은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했으나 대회 규정에 따라 한국시리즈는 없이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 이전과 이후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신 삼성은 '우승 제조기' 김응룡 감독을 해태에서 영입하여 2001년 첫해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가 2002년 LG를 최종 시리즈에서 만났습니다.

3승2패로 한 경기 앞선 6차전은 김성근 감독이 지휘한 LG가 8회까지 9-6으로 리드해 낙승이 예상돼 대구구장은 9회말 원아웃이 되자 관중 3분의 1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9회말 1사 1, 2루의 찬스에서 이승엽이 트윈스의 간판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3점포를 터뜨리고 이어 나온 마해영이 구원 최원호를 상대로 끝내기 솔로 홈런을 날려 10-9, 믿기지 않는 역전승으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축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삼성이 8번째 한국시리즈 진출 끝에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 2009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KIA 나지완 끝내기 홈런

2001년부터 해태를 이어받은 KIA 타이거즈는 8년간 한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다가 2009 시즌에 김상현의 깜짝 활약과 로페즈, 구톰슨, 최희섭, 양현종 등에 힘입어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맞상대 SK는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했으나 2년 연속 우승팀답게 저력을 발휘해 2패 후 2연승을 올리며 6차전까지 3승3패 동률을 이루고 최종 7차전은 중반까지 5-1로 앞서 나가 3년 연속 우승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KIA는 3번타자 나지완이 6회에 투런포를 날리고 7회에는 아기 호랑이 안치홍이 솔로 홈런을 때리고 김원섭의 적시2루타로 기어이 동점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9회말 1사후 나지완이 채병룡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 홈런을 뿜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진기록을 수립하며 해태 포함 10번째 시리즈 우승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 2009 WC 봉중근의 쾌투와 이범호의 호타 준우승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는 봉중근(LG)의 등장이 눈부셨습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지친 기색이 보였으나 앞선 경기서는 일본을 철저히 윽박지르며 매서운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2009년 3월 9일 도쿄돔서 열린 아시아라운드 조 1, 2위 결정전 일본과의 경기서 선발로 등판한 봉중근은 6회 원아웃까지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원천 봉쇄해 한국이 1-0으로 승리했습니다.

3월 7일 일본과 첫대결에서 2-14로 콜드게임패 당해 국민들에게 아쉬움으로 주었지만 봉중근의 선발 쾌투로 영봉승을 거둠으로써 그 수모를 씻어내고 봉중근에겐 '봉의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봉중근은 3월 18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2라운드 1조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또 한 번 선발 쾌투를 펼쳤습니다. 역시 6회 1사까지 3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1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틀어막았습니다. 한국은 4-1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베네수엘라를 10-2로 대파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일본과 대결에서 또다시 선발로 나선 봉중근은 구위가 감소됐지만 4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고 추신수는 5회에 동점 솔로홈런을 날려 "추! 추! 트레인!"의 명성을 실감 시켰습니다.

1-3으로 뒤지다가 이범호의 8, 9회 2루타와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연장 10회초 임창용이 이치로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석패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위대한 도전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한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헌신이 빛난 세계대회이기도 합니다.

◈ 2007 한국시리즈 SK 김광현, 김재현의 깜짝 활약과 대역전 우승

2007 시즌 두산은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파죽의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던 SK와 첫 판에서 리오스가 2-0, 완봉승을 올리고 2차전도 6-3으로 역전승을 거두어 쉽게 우승을 할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SK는 3차전을 9-1로 대승하고 경기 중 벌어진 양팀의 집단 난투극이 사기진작에 도움이 됐는 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4차전에 선발로 나선 신예 비밀병기 김광현은 22승 투수 리오스를 상대로 완벽투를 펼쳐 4-0, 팀의 영봉승 1등 공신이 돼 시리즈 분위기를 완전히 돌려놓았습니다. 김광현의 8회 원아웃까지 1안타 무실점의 눈부신 쾌투와 5회 조동화와 김재현의 예상을 깬 솔로 홈런 두방 이 역경 속에서 빛난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2000년 창단한 SK는 첫 개가를 올렸고 김성근 감독은 사령탑을 맡은 지 23년만에 처음으로 헹가래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최다기록 56개

2003 시즌 마지막은 온통 이승엽의 홈런 대기록에 야구팬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홈런왕 이승엽(당시 27세. 삼성)은 그 해 시즌 중 세계 최연소 300 홈런에 이어 세계 최소경기 40홈런과 50홈런 한국 최초기록을 달성했고 마지막으로 일본의 오 사다하루가 1964년에 세운 일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55개를 경신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그가 출장하는 야구장엔 그의 홈런볼을 잡기 위한 잠자리채가 외야석에 대거 등장해 이채로왔습니다.

55호를 날린 다음 5경기째 침묵을 지키고 정규시즌이 끝나는 날인 10월 2일 대구 홈구장에서 그는 롯데를 맞았습니다.

롯데 투수는 프로 2년차 이정민. 1구 볼과 2구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흘려보낸 이승엽은 3구째 가운데 낮은 쪽으로 파고드는 137㎞ 직구를 향해 여유있게 돌아갔고'딱'하는 소리와 함께 가운데 담장을 넘어 빨랫줄처럼 날아갔습니다.

대구구장은 홈런축제의 장으로 변해 함성과 함께 56개의 분수 축포가 달구벌의 밤을 수놓았습니다. 이승엽은 그 해를 끝으로 9년 동안의 국내 활동을 접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 했으나 에이전트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일본 롯데로 갔습니다.

◈ 시드니 올림픽 일본전 이병규의 기막힌 홈송구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초반에 호주, 쿠바, 미국에 패하는 바람에 2승3패로 결선 진출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잘 나가던 일본과 만났습니다.

선발 마쓰자카를 상대로 1회초 김동주가 2타점 적시타에 이어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날려 앞서나가다가 5-5 동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9회말 수비에서 2사 1, 2루 때 정민태-구대성에 이어 나온 임창용이 3번 다구치에게 중전안타를 맞았습니다.

2루주자가 당연히 들어올 수 있는 이 타구를 잡은 중견수 이병규는 홈으로 송구했고 극적으로 태그아웃이 선언됐습니다. 이병규의 정확하고 기막힌 이 송구 하나로 연장에 들어간 한국은 10회초 2점을 뽑아 결국 7-6으로 이기고 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이승엽은 준결승에서 또 만난 일본의 마쓰자카로부터 결승 2루타를 뽑아내며 3-1, 승리를 이끌어 동메달을 따냈는데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에 두 번 모두 이긴 것은 처음입니다.

◈ 2006년 WC 이종범의 결승2루타와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호수비

한국 대표팀은 2006년 3월 열린 제1회 WBC 때 일본에 준결승에서 패했으나 지역 예선과 본선에서 연달아 깨며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도쿄돔 예선에서 한국은 4회말 0-2로 뒤져 있던 2사 만루 수비에서 이진영이 혼신의 다이빙 캐치로 타구를 잡아내 대량 실점의 위기를 막아내고 이승엽이 8회초 좌완 이시이를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려 3-2로 역전승을 거두고 지역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에서 거행된 8강전에서 일본과 0의 행진을 이어가다가 8회초 1사 2, 3루에서 이종범이 최고의 마무리 후지카와로부터 통렬한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때려 2-1로 승리했습니다.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이 경기에서도 2회말 2사 2루 때 멋진 호송구로 주자를 잡아내 명성을 재차 확인 시켰습니다.

◈ 현대와 삼성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과 수중전

현대와 삼성이 벌인 2004 한국시리즈는 9차전까지 가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현대가 1차전에 피어리의 호투로 6-2로 낙승했는데 2차전은 시간 제한(4시간) 규정으로인해 8-8로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4차전은 삼성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노런이 돋보이면서도 양팀이 득점을 하지 못해 무승부가 기록됐습니다. 7차전도 6-6, 4시간 제한 규정에 걸려 무승부로 처리돼 무려 3게임이나 무승부가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희한한 진기록도 쏟아졌습니다.
6차전에서 나온 9회말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과 1-0 스코어, 현대 선발 김수경의 3회말 1사 후 강동우부터 5타자 연속 삼진 기록은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7차전 1회초 삼성 공격에서 나온 삼중살과 1회말 전준호의 홈스틸도 한국시리즈에서 최초 기록입니다. 현대 투수 이상렬은 1차전부터 8차전까지 매 경기 등판하며 단일 시리즈 최다 등판 기록을 세웠고 삼성 포수 진갑용은 4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 역시 한국시리즈 사상 최다 사구 기록을 세웠습니다.

3승3무2패로 현대가 앞선 가운데 열린 9차전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거행돼 현대가 2회에만 8점을 뽑아 싱겁게 승부가 판가름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비로 경기가 두 번이나 중단되고 진창으로 변한 그라운드에서 끈질기게 추격해 9회 말엔 7-8까지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 시리즈 유종의 미를 남겼습니다.

◈ 프로 데뷔 첫타석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 두산 송원국

2001년 6월 23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SK-두산의 경기는 타격 공방전이 전개돼 9회초까지 6-6, 동점을 이루었습니다.

두산이 9회말 2사 만루 기회를 잡자 김인식 베어스 감독은 대타를 찾아보다가 2군에서 올라온 송원국을 내보냈습니다. 광주일고 출신으로 1998년 입단 후 2군에서만 보낸 송원국은 1군 경기는 프로 데뷔 처음 타석이었습니다.

상대는 베테랑 김원형. 초구에 송원국은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 타구는 담장을 훌쩍 넘는 끝내기 만루홈런이 됐습니다.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타자는 두 번째이고 첫 타석 만루홈런과 끝내기홈런은 사상 처음 기록한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에도 없는 진기록을 세운 외야수 송원국은 이 타석부터 1군경기에 자주 나왔으나 2년 후 교통사고로 무릎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야구를 그만 두었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 & Fun, 매일 2판 발행 ☞ 신문보기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