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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슬금슬금 가족 눈치만”…아빠는 외롭다!

도깨비-1 2009. 10. 1. 10:14
뉴스: “슬금슬금 가족 눈치만”…아빠는 외롭다!
출처: 헤럴드경제 2009.10.01 10:13
출처 : 사건사고
글쓴이 : 헤럴드경제 원글보기
메모 : "늦게 들어가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 꼭 '하숙생' 같아요."
3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홀로 지내다 오매불망 기다린 가족과 올해 초 해후한 김모(41ㆍ회사원) 씨. 가족에게 못다한 아버지, 남편의 번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김씨는 최근 오히려 고민이 더 늘었다. "교육문제나 부동산 등 집안 문제는 모두 아내가 결정하고, 매일 회사에 치이다 보니 정작 아이들과 제대로 얘기 나눌 시간도 없어요.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보다 더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김씨는 "권위 있는 가장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돈을 버는 것 외에 아무런 역할이 없는 것 같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하숙생 남편'을 호소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자녀의 학원 문제도 학교 생활 상담도 아내의 몫. 월급통장도 아내에게 넘긴 지 오래다. 집은 잠만 자는 하숙집 같고 가족이 타인처럼 낯설게 느껴진다고 불평하는 이 시대 가장들. 가부장 사회에서 양성평등 사회로 가족문화가 빠르게 변모하면서 롤모델을 잃은 아버지의 뒤늦은 방황이 늘고 있는 셈이다. 양성평등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아버지상'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모(42)씨네 가족이 올 추석 귀성을 포기하는데는 부인 고모(42)씨의 뜻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고씨는 "이미 벌초 겸 성묘를 다녀온데다 중학생인 딸아이의 중간고사가 있고, 신종플루 걱정도 있으니 귀성을 미루고 늦가을 주말에 인사드리러 가자"고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 조씨는 부인의 뜻을 고향 부모님에게 완곡하게 전했다고 한다.

맏며느리인 주부 박모(54)씨는 최근 시동생 3명에게 전화를 걸어 추석차례를 어떻게 치를지 통보하고 임무를 맡겼다. 아울러 고스톱 금지, 차례후 대가족 단체관광 등 '명절 유익하게 보내기' 지침을 하달했다.

가정내 여성파워가 커진 만큼 상대적으로 전통적 권위에 젖어있던 남편들의 소외감은 더 커진듯 하다. 여기저기 취미생활을 찾아 기웃거리는 박모(52ㆍ회사원) 씨는 "예전과 달리 회식자리도 많이 줄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 늘었는데 집에 들어가도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어 대신 취미생활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악기 연주, 승마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시도해봤지만 정작 흥미를 붙이기 어렵다는 박씨. 그는 "집에 가기 싫은 마음에 취미생활을 찾다보니 쉽게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왜 이렇게 가족 눈치를 보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은퇴 후 빌딩 경비 업무직에 종사하고 있는 이모(59) 씨도 "은퇴한 뒤 가정일에 관심을 가져 보려 하지만 좀처럼 아이들과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담배만 늘어가는데 연기 들어온다고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고 털어놨다.

상대적으로 가정 내 아내의 역할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의 '200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부 간 의사결정 권한 중 '일상 생활비 지출'에 대해 기혼가구의 65.3%가 '부인이 결정한다'고 응답했고 그 중 25.1%는 '전적으로 부인이 결정한다'고 답했다. '자녀 양육 및 교육'에 대해서도 '남편이 결정한다'는 답변은 3.1%에 그쳤지만 '부인이 결정한다'는 응답은 39.2%에 이르렀다. 경제와 교육 등 가정의 핵심사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가정 내 의사결정 양상 뿐 아니라 가사분담에서도 가족문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통계청이 1998~2008년에 걸쳐 발표한 '가사분담상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인이 가사를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응답은 1998년 44.3%에서 2008년 35.7%로 줄어든 반면, 남편도 분담하고 있다는 답변은 같은 기간 46.5%에서 53.8%로 늘었다. 남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응답도 0.2%에서 0.3%로 소폭 상승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늘고 있지만 남편 못지 않게 아내의 불만도 적지 않다.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모(36ㆍ여ㆍ주부) 씨는 아이 학교 문제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아파트 문제까지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박씨는 "재개발 관련 집회도 자주 참석해야 하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 교육 문제도 신경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상의를 하려 해도 '잘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외롭다고 투정부리는 남편이 때로는 너무 밉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양성평등 시대에 맞춰 새로운 '아버지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묵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본부장은 "과거 가정생활의 중심자로 남성이 활동할 시기와 달리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요즈음에는 남자들이 위축 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며 "남성이 사회변화의 흐름을 직시하고 과거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탈피, 좀 더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이 교육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남성도 이미 늘고 있다"며 "집에서 소외된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먼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며 가족과 어떻게 더불어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아버지상을 모색하기 위해선 남편이 가정 친화적인 '감성적 리더십'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수ㆍ백웅기 기자/dlcw@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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