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담상조(肝膽相照) : 肝 간 간, 膽 쓸개 담, 相 서로 상, 照 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으로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를 가리키는 말.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귄다.
[출전]『柳子厚墓誌銘』
[내용]唐나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字 : 子厚)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 되었는데 그의 친구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 “파주는 몹시 궁벽한 변방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님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죽은 후 한유(韓愈)가 그 우정에 감복하여 유종원의 묘지명을 썼는데‘
[ 韓愈柳子厚墓誌銘에 握手出肝膽하여 相示라하다. 韓(나라이름 한) 愈(나을 유) 厚(두터울 후) 誌(기록할 지) 銘(새길 명) 握(잡을 악)]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肝膽)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라고 하였다.
2. 개과천선(改過遷善) : 改 고칠 개, 過 지날 과, 遷 옮길 천, 善 착할 선
지난 잘못을 고쳐 새사람이 됨.
改過遷善에 관한 故事는 晉書(진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晋(진)나라 혜제 때 어느 고을에 周處(주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아버지의 夭折(요절)로 인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방자함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러나 남달리 건장한 體軀(체구)에 性格(성격)까지 포악한 그와 맞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점차 철이 들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시급히 없어져야 할 세 가지 害惡(해악), 즉 남산의 호랑이와 長橋(장교) 아래의 蛟龍(교룡), 그리고 주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입은 주처는 모든 해악을 제거하겠다고 마음먹고 호랑이 및 교룡을 물리쳤으나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冷笑的(냉소적)이었다.
이에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東吳(동오)의 대학자 陸機(육기)와 陸雲(육운) 형제를 찾아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배움을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육운은 ‘당신은 아직 젊기 때문에 굳은 각오로 허물을 고쳐 나가면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때부터 주처는 10여년 동안 學德(학덕)을 갈고 닦아 마침내 巨儒(거유)가 되었다.
3. 거안제미(擧案齊眉) : 擧 들 거, 案 책상 안, 齊 가지런할 제, 眉 눈썹 미
밥상을 눈 위로 들어올린다. 즉 아내가 남편을 공경하여 받는다는 뜻.
4. 건곤일척(乾坤一擲) : 乾 하늘 건, 坤 땅 곤, 一 한 일, 擲 던질 척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주사위를 던진다. 곧 운명과 흥망을 하늘에 걸고 단판에 승패를 겨룸.
5. 견토지쟁(犬兎之爭) : 犬 개 견, 兎 토끼 토, 之 갈 지, 爭 다툴 쟁
개와 토끼의 다툼.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만 이익을 보게 된다는 뜻.
6. 결초보은(結草報恩) :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풀을 묶어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은혜를 꼭 갚는다는 의미.
▶ 풀을 맺어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죽어서 까지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 결초보은(結草報恩)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다'라는 뜻이지요.
중국 진나라의 위무자라는 사람이 젊은 첩과 함께 살았는데,
평소 아들 위과에게 자신이 죽거든
당시 풍습처럼 아내를 함께 묻지 말고,
개가(새로 시집을 감)시키도록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가까워지자 아들 위과에게
자신의 사랑스런 첩을 함께 묻어 달라고 하며 유언을 남기고는 죽었습니다.
아들 위과가 아버지의 어떤 말씀을 따를까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온전할 때 하신 말씀이 진심일 것이라 판단하고
아버지의 첩(위과의 새어머니)을 함께 묻지 않고, 개가시켜 드렸습니다.
그 후에 위과가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싸움에 나갔다가
적에게 포위되어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홀연히 노인 한 분이 나타나 적 장수 발앞의 풀을 묶어(結草)
적 장수가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싸움에서 목숨도 구하고, 승리를 하였는데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낮에 그 노인이 나타나
'나는 당신 새어머니의 아버지일세. 자네가 아버지의 말씀을 잘 따라 내 딸을 살려보내줬기에 나는 이미 죽었지만 그 은혜를 갚으려고(報恩) 했네.'
이렇게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은 고사에서 나온 성어가 '결초보은'입니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이밀의 진정표
▶ [유사의] 刻骨難忘(각골난망). 難忘之恩(난망지은). 銘心不忘(명심불망)
7. 경국지색(傾國之色) : 傾 기울 경, 國 나라 국, 之 갈 지, 色 빛 색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뒤집혀도 모를 만한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8. 계구우후(鷄口牛後) : 鷄 닭 계, 口 입 구, 牛 소 우, 後 뒤 후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 즉 큰 집단의 말석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뜻.
9. 계륵(鷄肋) : 鷄 닭 계, 肋 갈빗대 륵
닭의 갈비뼈. 발라먹을 고기는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뜻으로, 그다지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쓸모있을 것 같아 버리기가 아쉬운 것.
10. 과유불급(過猶不及) : 過 지날 과, 猶 같을 유, 不 아니 불, 及 미칠 급
정도가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뜻.
공자의 제자 자공(자공: B.C. 520-456)이 스승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쪽이 더 현명합니까?"
자공은 공자로부터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사람을 평하는 버릇이 있어 스승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같은 공자의 제자로서 친구이기도 한 '자장'와 '자하'를 비교하여 누가 더 나은가를 물은 것도 자공의 이러한 성품에서 나온 것이다.
자공의 입에 오른 두 사람중에 '자공'는 스승인 공자로부터 편벽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하'은 스승으로부터 군자의 선비가 되고 소인의 선비가 되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학문에는 뛰어났은 큰 인물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나으냐는 것이 자공의 질문이었다. 공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공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면 자공이 낫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다. 지나친 것은 못 미치는 것보다 못하느니라."
공자의 대답은 지나친 것은 못 미치는 것과 똑같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공자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을 '중용' 이라하여 가장 좋은 덕으로 가르쳤다.
11. 과전이하(瓜田李下) : 瓜 오이 과, 田 밭 전, 李 오얏나무 리, 下 아래 하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의 약자로 의심나는 일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
李 오얏나무 -자두나무 [Prunus salicina]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
李
㉠오얏(자두)나무
㉡오얏(자두)
㉢심부름꾼
㉣성(㉡백성(百姓)
㉢겨레, 씨족(氏族)
')" onmouseout=tooltipOff() href="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1-07-17-01" ;>姓)의 하나
李花[이화] 오얏꽃
①자두나무의 꽃
②조선(朝鮮) 말기(末期)에 관리(官吏)들이 쓰던 휘장(徽章)
오얏은 자두의 순 우리말로 오얏꽃은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꽃문양이다. "오얏성씨 왕조가 들어서리라"라는 도선국사의 예언에 놀란 고려는 서둘러 한양 오얏나무 베어 王氣 를 다스리고자 했으나 이성계의 조선이 일어났으니 열매가 진한 보라색이고 모양이 복숭아를 닮았다하여 자도(紫桃)라 하다가 자두가 된 것이다. 순수 우리말 이름은 오얏이고 한자명은 이(李)이다.
梨 - 배나무 이(리)
梨花(이화)- 배나무꽃와 구별해야한다.
과전이하(瓜田李下)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그 후궁 우희(虞姬)에 얽힌 고사로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후궁 우희가 자기에게 가해진 모함을 벗기 위해 비유적으로 썻다는 이 표현은 『열녀전(烈女傳』「절의편(節義篇」에 이렇게 실려있다. 제나라 위왕은 즉위한지 9년이 넘도록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정사를 간신 주파호(周破胡)에게 맡겼다. 이를 보다 못한 우희가,“파호는 남을 헐뜯으며 아첨을 잘하는 신하입니다. 그보다는 북곽(北郭) 선생이 어떠하겠습니까? 현명하며 도(道)를 갖추고 있으니 그를 등용하여 신하로 삼으심이 어떻겟습니까?” 라고 간언하였다. 이말에 파호는 “그녀가 어린 시절 민간에 있을때 북곽 선생과 정을 통하고 있습니다.” 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왕은 우희를 감금시켰고, 관리를 시켜 사실을 엄중하게 심문하게 하였다. 그래도 늘 자신의 가까이에서 총애하던 후궁인지라, 왕 자신이 직접 심문을 하였다.
“저 우희는 지금껏 왕의 가까이에서 한마음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모함하는 간신에게 걸려 백 길이나 되는 구렁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옥석은 진흙에 굴러도 더러워지지 않고, 유하혜(柳下惠)는 추위에 떠는 여자에게 자기 옷으로 덮어 주어 체온을 나누더라도 음행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읍니다. 그것은 평소 행동이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옛말에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 것이며(瓜田不納履), 오얏나무 밭을 지날때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한 말을 어겼으로 이것이 첫번째 죄이고, 신하들이 저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제 부덕(不德)함이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파호를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왕께서 직접 정사를 행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라고 우희가 대답하였다. 이 말에 크게 깨닫게 된 위왕은 감금되어 있는 우희를 풀어주고, 파호를 사형에 처했다.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아예 삼가라는 뜻의 이 평범한 말은 살아가는 작은 지혜가 아닐까싶다. 이런 지혜를 생활에 잘 적용해 어긋남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의 불필요한 오해와 부당한 비난을 받지 않는다. 이는 특별한 꾀를 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치우침 없이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장의 본뜻이 남에게 오해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지만, 반대로 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라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관 관, 절인어물 포, 의 지, 사귈 교
출전 : 사기 <史記>
해의 :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말함
- 중국의 춘추시대때에 제나라의 재상인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나타내는 말로 굉장히 친한 친구사이.. 우정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관중(管仲)은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젊었을 때부터 포숙(鮑叔)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포숙은 관중의 재능과 덕성을 잘 알아주었다. 가난한 관중은 언제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늘 그를 잘 대해 주었으며 그런 일로 따지지 않았다.
얼마 후에 관중은 공자 규(糾)를 섬기게 되었고 포숙은 규의 동생인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제나라 양공(襄公)이 죽자 규와 소백은 왕위를 놓고 다투었다.
이윽고 소백이 제 환공(桓公)으로 즉위하고 규가 죽자 관중은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환공은 관중이 한때 자신의 목숨을 노렸기 때문에 그의 목을 치려했지만 포숙은 관중의
역량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관중을 환공에게 추천하여 제나라의 국정을 맡기게 되었다.
제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여 천하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능력이었다
제나라가 융성하고 관중이 영달을 얻기까지는 포숙의 우정의 덕이 컸다.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회고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젊어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나는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쫒겨났다.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 알아준 사람은 포숙뿐이다."
포숙은 관중을 추천한 후 그의 아래에 있었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 봉록을 받고 영지를 10여대나 보전하여 언제나 명대부로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내세우기보다는 관중의 사람됨을 볼 줄 알고 끝까지 관중을 신뢰하였던 포숙의 인품을 더 높이 평가했다.
교주고슬(膠柱鼓瑟) : 膠 아교 교, 柱 기둥 주, 鼓 북 고, 瑟 거물고 슬
거문고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연주함. 즉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다는 뜻
기러기발{柱 ; 거문고 가야금따위의 줄을 고르는 기구, 금휘(琴徽), 안족(雁足)}을 아교(阿膠;갖풀)로 붙여 놓고{膠} 거문고{瑟}를 탄다{鼓}면 연주가 제대로 될까요? 거문고나 가야금의 줄을 가락에 맞추어 연주하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음률(音律)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맞추었다 해서 그 기러기발을 아예 아교풀로 꽉 붙여 버린다면 연주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교주고슬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 아주 고집불통이고 고지식해서 변통(變通)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 번 성공한 것에 대해 맹신(盲信)을 하면서 더 이상 변화와 응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더욱이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상황에 처할 경우에는 정말 구제불능(救濟不能)일 것입니다.
膠柱鼓瑟은 '교슬(膠瑟)', '교주(膠柱)', '교주조슬(膠柱調瑟)'이라고도 합니다. 고사의 유래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염파.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등 여러 고전에서 출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기>의 {염파인상여열전}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때 중신(重臣)의 식객이었던 인상여(藺相如)는 중국 최고의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진(秦)나라와의 분쟁에서 무사하게 지켜냄으로써 "완벽(完璧)"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내고 재상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조나라의 장수 염파(廉頗)는 인상여와의 사이에 고사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생겨난 진정한 친구 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 조괄(趙括)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조괄은 대장수였던 아버지 조사(趙奢)의 후광(後光)으로 아버지의 병서(兵書)를 맹목적으로 습득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조(趙)의 다음 대 임금 효성왕(孝成王)때의 일입니다. 당시 진(秦)나라의 대군이 조나라를 공격해 왔는데, 왕은 염파를 장수로 하여 진나라와 대전(對戰)하게 했습니다. 강한 진군을 막기 위해 염파가 방어 계책으로 응전(應戰)을 하지 않자, 진나라는 이간책(離間策)을 써서 조나라 왕을 속이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요.
"진나라가 무서워하는 것은 다만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수가 되어 오는 것이다."
효성왕은 이 말을 믿고 염파와 조괄을 교체하려 했는데, 이때 인상여가 왕에게 간언(諫言)을 했습니다.
"왕께서는 명성만 듣고 조괄을 쓰십니다. 조괄은 거문고의 기둥에 아교풀을 칠해서 고정시켜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아버지가 남긴 글을 잘 읽었을 뿐이고 임기응변(臨機應變)할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로 장수를 교체했고, 조괄은 고지식하게 병서(兵書)대로만 대전(對戰)하다가 진나라의 교란(攪亂) 전술에 말려 대패하니, 자신도 죽고 40-50만명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조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膠柱鼓瑟격인 조괄(趙括)의 대처는 고지식함이 보여주는 폐단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조나라 효성왕(孝成王) 역시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귀 담아 듣지 못하고 조급하게 대처한 것도 또 다른 교주고슬격 행위입니다.
이와 같이 윗사람이나 상사(上司)의 교주고슬격 행동은 꼴불견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학벌(學閥)이나 지식을 드러내면서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다 올바르게 선도(善導)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다시 수시처중(隨時處中)이 생각합시다.
문경지교(刎頸之交)
풀이 :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친교, 또는 생사를 같이할 정도로 몹시 친한 친구를 뜻하는 말이다.
유래 : 전국시대에 조나라의 사신 인상여(藺相如)가 진나라 소왕에게 에게 천하에 귀한 보석인 화씨벽을 빼앗기지 않고 도로 가져오자 (화씨벽과 완벽 항 참조), 혜문왕은 그에게 상대라는 높은 벼슬을 내렸다. 그로부터 3년 뒤에 진. 조 두 나라의 왕들에 승지에서 만났을 때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에게 무안과 모욕을 주려 했다. 이 때 조나라 왕을 따라왔던 인상여가 재치로 이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나라 왕으로 하여금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공로로 인상여는 벼슬이 더욱 높아져 단번에 상경에 임명되었다. 이리하여 조나라의 명장으로 이름난 염파보다 슬이 높아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염파는 크게 노했다.
“나는 조나라 장군으로서 공성야전(攻城野戰)의 살벌한 싸움터에서 큰 공을 세워 조나라를 지키는 간성(干城)이요, 최대의 공신이다. 그런데 인상여는 입을 놀린 것만으로 나보다 벼슬이 높다. 그런 놈 밑에 있는 것은 나의 수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에 그놈을 만난다면 단단히 창피를 주리라.”
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될 수 있는 대로 염파 장군과 마주치지 않고, 대궐에서 큰 잔치가 있거나 염파와 자리를 같이해야 할 회의가 있을 때는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또 길을 가다가도 멀리서 염파의 행렬이오는 것을 보면 일부러 골목길로 들어가 그를 피해 다녔다. 인상여의 부하들은 이것이 불만이고 또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떤 자는 인상여 앞에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염파보다 대감이 더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감께서 염파를 두려워하여 슬금슬금 피해 다니기만 하십니다. 대감의 그런 태도를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대감을 따를 수 없으니 저희들을 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인상여은 그들을 말리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염 장군과 왕 중에 어느 쪽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그거야 물론 왕이 더 높습니다.”
“바로 그것이다. 나는 왕조차 겁내지 않고 꾸짖었느니라. 그런데 내가 어째서 장군을 겁내단 말이냐 . 잘 생각해 보아라. 그렇게도 강성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략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와 염 장군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결국 둘이 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내가 염 장군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여 숨는 것은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감정 따위는 뒤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크게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웃통을 홀랑 벗고, 인상여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소인은 본디 천박하여 귀공의 넓은 도량과 관대함을 미처 몰랐소이다. 힘껏 때려 주십시오,”
하고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인상여는 급히 내려가 염파의 손을 잡아 일으켜 객청으로 올라왔다. 이로써 두 사람은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즉,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이 베어지는 일이 있어도 뉘우치지 않겠다는 의형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화씨벽(和氏璧)과 완벽(完璧)
풀이 : 한 점의 티도 없는 훌륭한 상태 또는 훌륭한 것을 그대로 되찾는다는 뜻이다.
유래 : 전국시대의 최대 강국인 진나라의 소왕은 조나라의 혜문왕이 가지고 있는 천하에 기이한 보석[-명옥(明玉)]인 화씨벽(和氏璧)이 너무 탐나서 어떻게든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사신을 보내 화씨벽을 자기 나라의 15개 성(城)과 바꾸자고 제의하여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조나라의 사신인 인상여가 왕명을 받들어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갔더니 소왕은 그것을 받고 기뻐할 뿐 약속했던 15개성을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상여는 한 꾀를 냈다.
“폐하, 그 옥돌에는 안타깝게도 티가 있습니다.”
하고 일단 그 보석을 돌려받자, 그의 불신을 따진 다음, 만일 강제로 화씨벽을 다시 빼앗으려고 한다면 땅바닥에 힘껏 던져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소왕은 부끄러워하며 화씨벽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인상여는 그 날 밤중으로 심복 부하를 시켜 화씨벽을 초나라로 무사히 가져가게 했다.
간성[干城]
[명사] 방패와 성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군대나 인물을 이르는 말.
▷ 干(간) 방패, 지키다 / ▷ 城(성) 성, 지키다
【본래 의미】☞ 방패와 성. 모두 방어 수단으로 사용됨.
【변화된 뜻】☞ 나라를 방위하고 지키는 군인이나 무사의 의미로 사용됨.[bulwark]
【예시성어】☞ 救國干城(구국간성), 干城之材(간성지재).
간성지재 (干城之材)
: 방패와 성의 구실을 하는 인재란 뜻으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인재를 이르는 말.
수시처중(隨時處中)
때에 적중하는 것. 쉽게 얘기하면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때를 기다려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것.
때를 기다리거나 때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요즘 얘기로 하면 불꽃놀이에 비유할 수 있음. 낮이나 밤이나 불꽃의 내용은 같지만 그 효과는 천양지차.
불꽃놀이를 할 때, 준비는 밝은 낮에 하는 것이 필수. 그러나 실제 불꽃을 쏘아 올릴 때는 캄캄할수록 그 효과는 배가되는 법!!
때에 따르는 것과 때를 거스르는 것은 천양지차
구밀복검(口蜜腹劍) : 口 입 구,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입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으로 말로는 친한체 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해칠 생각을 품고 있음을 비유.
*유래: 당(唐)나라 현종(玄宗: 712∼756) 후기에 이임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태자 이하 그 유명한 무장(武將) 안록산(安祿山)까지 두려워했던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宮中政治家)였다. 당나라를 뒤엎을 만한 반란을 일으켰던 안록산도 이임보가 두려워 그가 죽은 지 3년 후에 반란을 일으킬 만큼 그를 두려워했다.
이임보는 뇌물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현종에게 아첨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고, 그로부터 당시 양귀비(楊貴妃)에게 빠져 정사(政事)를 멀리하는 현종의 유흥을 부추기며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만약 바른말을 하는 충신이나 자신의 권위에 위협적인 신하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제거했다. 그가 퇴궐하여 집에 돌아갔다가 무엇인가 꿍꿍이속을 품고 이튿날 입궐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한껏 추켜 올린 다음 뒤통수를 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수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임보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임보는 '입으로 꿀 같은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이 들어 있다[口蜜腹劍].'"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오라버니뻘 되는 양국충이 재상이 되었는데 그도 이임보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 왔기 때문에 실권을 쥐게 되는 즉시 지난날의 죄악을 하나하나 들추어 현종황제에게 보여 주었다. 그래서 화가 날대로 난 현종의 어명에 의해 그의 생전의 모든 벼슬을 박탈하여 서민으로 내려 앉히는 한편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다시 평민들이 쓰는 널 속에 넣어 묻게 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기록된 이임보의 평(評)을 보자.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이라고 말했다. 서재에 앉아 깊이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다음은 반드시 주살(誅殺)이 있었으며 가끔 큰 옥사를 일으켰다.
*유의어: 소리장도(笑裏藏刀) 소중유검(笑中有劍) 면종복배(面從腹背) 권상요목(勸上搖木)
권상요목(권할勸, 위上, 흔들搖, 나무木) 나무에 오르게 해 놓고 흔들어 떨어뜨림. 남을 선동해 놓고 낭패 보게 함
<출전:《新唐書》>
구우일모(九牛一毛) : 九 아홉 구, 牛 소 우, 一 한 일, 毛 털 모
아홉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털이라는 뜻으로, 많은 것 중에 가장 적은 것을 비유한 말.
군맹무상(群盲撫象) : 群 무리 군, 盲 소경 맹, 撫 어루만질 무, 象 코끼리 상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짐. 즉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비유하는 말.
권토중래(捲土重來) : 捲 말 권, 土 흙 토, 重 거듭할 중, 來 올 래
흙먼지를 말이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자가 태세를 가다듬어 다시 공격해 온다는 말. /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돌아옴.
(예문) -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던 이 전 의원은 서울시당 경선 패배로 여의도를 향한 교두보 마련이 쉽지 않음을 확인했다.
출전 『杜牧, 烏江亭詩』
땅을 말아 올릴 듯한 기세로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사람이 분기하여 다시 세력을 되찾는다는 말.
옛날 項羽는 劉邦과 垓下(해하)의 마지막 싸움에서 패해 烏江까지 쫓겨 왔는데, 오강을 지키던 亭長은 배를 대며 말했다.
"강동이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십만의 백성이 살고 있으니, 충분히 나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서 배에 오르시어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항우는 눈물을 머금고 처연히 말하기를,
"옛날 내가 강동의 젊은이 팔천 명을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향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강동의 부형들을 대할 수가 있겠는가?"
항우는 아끼던 애마를 정장에게 준 후 자기를 추격하는 한나라 군사들을 향해 돌진하여 자신의 용맹을 보여준 후 스스로 목을 쳐서 죽으니 이 때 항우의 나이는 겨우 서른 한 살이었다.
唐나라 시인 杜牧이 烏江의 항우묘를 지나면서 항우를 생각하며 읊은 詩인데 많이 알려져 있다.
제오강정(題烏江亭)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 杜牧 (803-852) -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자는 목지(牧之). 828년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후에 황저우[黃州]·츠저우[池州]·무저우[睦州]·후저우[湖州] 등에서 자사(剌史)를 지냈고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시(詩)에서 이상은(李商隱)과 나란히 이름을 날려 '소이두'(小李杜 : 작은 李白·杜甫)라고 불렸다. 고시(古詩)는 두보·한유(韓愈)의 영향을 받아 사회·정치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장편시 〈감회시 感懷詩〉·〈군재독작 郡齋獨酌〉 등은 필력이 웅장하고 장법(章法)이 엄정하며 감개가 깊다. 근체시(近體詩)는 서정적이며 풍경을 읊은 것이 많은데 격조가 청신(淸新)하고 감정이 완곡하고도 간명하다. 〈박진회 泊秦淮〉·〈산행 山行〉·〈강남춘절구 江南春絶句〉와 같은 소시(小詩)들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즐겨 읊어왔다. 〈적벽 赤壁〉·〈제상산사호묘 題商山四皓廟〉·〈과화청궁 過華淸宮〉 등 사적지를 읊은 절구는 그 필치가 기발하고도 힘이 넘친다. 그의 산문은 당 말기에 일가를 이루어 엄격하면서도 맑고 유창했다. 또 산문의 필법과 구법(句法)으로 부(賦)를 지었다. 예컨대 〈아방궁부 阿房宮賦〉 같은 것은 서사(敍事)·서정(抒情)·의론(議論)을 하나로 묶어 육조시대(六朝時代 : 222~589) 이래로 사부(辭賦)가 날로 화려한 변려체로 되어가던 추세를 뛰어넘었다. 문집으로는 〈번천문집 樊川文集〉이 있으며 청대 사람인 풍호(馮浩)가 〈번천시집주 樊川詩集注〉를 냈다.
捲 : 거둘, 말 권. 재방 변과 책 권(券)의 합자로 멍석이나 자리를 둘둘 말아들어 오는 것.
土 : 흙, 땅, 장소 토. 흙
(土는 만물을 길러내는 땅 속이나 땅 위의 모든 흙을 지칭하는 말이고, 地는 땅 위를 가리킨다.)
重 : 무거울, 거듭 중. 『周禮』에 '重은 一鈞(일균)인데 삼십근을 말한다'고 했다.
來 : 올, ~부터, ~에서 래. 원래는 한 줄기에 보리 이삭이 두 개 달린 것을본 뜬 글자였으나
지금은 '오다'라는 뜻으로만 쓰인다.
勝敗兵家不可其 (승패병가불가기)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을 하는 이가 기약할 수 없으니,
包羞忍恥是南兒(포수인치시남아)
부끄러움을 싸안고 욕된 일을 참는 것이 진정한 남아일세.
江東子弟多豪傑(강동자제다호걸)
강동의 젊은이 중에는 호걸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땅을 말아 올리듯 다시 오면 승패는 아무도 알 수 없었으련만.
2009. 08. 20. 출력
금성탕지(金城蕩池) : 金 쇠 금, 城 성 성, 蕩 넘어질 탕, 池 못 지
몹시 견고하고 끓는 물의 연못이 있어 가까이 가지 못하는 성. 즉 방비가 아주 견고한 성.
금의야행(錦依夜行) : 錦 비단 금, 依 옷 의, 夜 밤 야, 行 다닐 행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으로, 출세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아무 보람 없는 행동을 비유한 말.
기인지우(杞人之優) : 杞 나라이름 기 人 사람 인 之 갈 지 優 근심 우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란 뜻. 곧 쓸데없는 걱정이나 무익한 근심을 말함.
기(杞)나라 사람의 헛걱정이란 뜻. 곧 쓸데없는 군걱정. 헛 걱정. 무익한 근심.
[준말] 기우(杞優). [동의어] 기인우천(杞人優天).
[유사어] 오우천월(吳牛喘月). [출전]《列子》〈天瑞篇(천서편)〉
주왕조(周王朝) 시대, 기나라에 쓸데없는 군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진다면 몸둘 곳이 없지 않은가?' 그는 이런 걱정을 하느라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자 '저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기가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몸을 굴신(屈伸:굽힘과 폄)하고 호흡을 하는 것도 늘 하늘 안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하늘이 과연 기가 쌓인 것이라면 일월성신(日月星辰:해와 달과 별)이 떨어저 내릴 게 아닌가?"
"일월성신이란 것도 역시 쌓인 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일 뿐이야. 설령 떨어져 내린다 해도 다칠 염려는 없다네."
"그럼, 땅이 꺼지는 일은 없을까?"
"땅은 흙이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사방에 흙이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뛰고 구르는 것도 늘 땅 위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땅이 꺼진단 말인가? 그러니 이젠 쓸데없는 군걱정은 하지 말게나."
이 말을 듣고서야 그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기호지세(騎虎之勢) : 騎 말탈 기, 虎 범 호, 之 갈 지, 勢 기세 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 곧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 내친걸음.
낙양지귀(洛陽紙貴) : 洛 물이른 락,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낙양의 종이 값이 오른다는 뜻으로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됨을 의미.
남가일몽(南柯一夢) : 南 남녘 남, 柯 가지 가, 一 한 일, 夢 꿈 몽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한 말.
남귤북지(南橘北枳) : 南 남녁 남, 橘 귤나무 귤, 北 북녘 북, 枳 탱자나무 지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뜻. 사람은 환경에 따라 악하게도 되고 착하게도 된다는 말.
남상(濫觴) : 濫 넘칠 람, 觴 술잔 상
거대한 양자강도 그 물의 근원은 불과 '술잔에 넘칠 정도의 적은 물 (濫觴)'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의 시초나 근원을 이르는 말.
낭중지추(囊中之錐) : 囊 주머니 낭,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錐 송곳 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자연히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것을 비유.
전국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 : 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 (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대감,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이제 3년이 됩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 나 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것은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 재치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毛遂)를 20번째 수행원으로 뽑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 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기망양(多岐亡羊) : 多 많을 다, 岐 갈림길 기, 亡 잃을 망, 羊 양 양
길이 여러 갈래여서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하는 방법이 너무 많아 옆길로 새기 쉽기 때문에 진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말.
단장(斷腸) : 斷 끊을 단, 腸 창자 장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 매우 슬픔을 이르는 말
당랑거철(螳螂拒轍) : 螳 사마귀 당, 螂 사마귀 랑, 拒 막을 거, 轍 수레바퀴 자국 철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으로,
분수를 모르고 대듦. 또는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대항하거나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말한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BC.794~731)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루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로 앞으로 나갈 줄만 알지 물러 설줄 모르는 놈이온데
제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떡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 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 가도록 하거라."
도원경(桃源境) : 桃 복숭아 나무 도, 源 근원 원, 境 지경 경
무릉도원, 즉 평화스런 유토피아. 이 세상이 아닌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경지.
독서망양(讀書亡羊) : 讀 읽을 독, 書 책 서, 亡 잃을 망, 羊 양 양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림. 즉,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림
독안룡(獨眼龍) : 獨 홀로 독, 眼 눈 안, 龍 용 용
애꾸눈의 용이란 뜻으로, 애꾸눈의 영웅, 애꾸눈이지만 덕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내용]
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 !'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西: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東平郡王)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 :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오대사(五代史)》〈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두주불사(斗酒不辭) : 斗 말 두, 酒 술 주, 不 아니 불, 辭 사양할 사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량이 대단한 것을 일컫는 말.
[출전]《사기(史記) [항우본기]. 번, 역, 하영, 관열전》
[내용] 진(秦)나라 말기, 초왕(楚王) 항우(項羽)와 패공(沛公) 유방(劉邦)은 진의 수도 함양을 향해 각기 하북과 하남에서 진격하였다.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된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함양을 먼저 점령한 것은 유방이었다. 그러나 군사력이 항우에 미치지 못하는 유방은 함양의 모든 재물과 궁궐을 그대로 둔 채 패상(覇上)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그러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항우(項羽)는 모신(謀臣) 범증(范增)의 의견을 받아드려 유방을 칠 각오를 다졌다.
이에 패공은 기마병 백여 명을 거느리고 항백(項伯= 항우의 숙부)을 통해 항우를 만나 해명하면서 연회를 열었다. 이를 역사책에서는 홍문의 만남(鴻門之會)이라고 한다.
아부(亞父= 범증)는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패공을 죽이기 위해 항장(項莊= 항우의 사촌으로 부장)에게 연회석에서 칼춤을 추다가 패공을 찌르라고 명령하였지만, 위급한 순간마다 항백이 같이 칼춤을 추면서 어깨로 패공을 가려 주었다.
그때 패공과 장량만 군영 안으로 들어와 연회에 참석했고 번쾌는 군영 밖에 있었다. 번쾌는 상황이 긴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철 방패를 들고 군영 문 앞으로 가서 안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군영의 보초가 번쾌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번쾌는 방패로 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 장막 아래에 섰다.
항우가 그를 보고 물었다.
“이자는 누군가?”
장량이 대답했다.
“패공의 참승(驂乘= 수행무사)번쾌입니다.”
항우가 말했다. “장사로 구나.”
그리고는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돼지 다리 하나를 내려 주었다. 번쾌는 술을 마신 뒤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서 먹어 치웠다.
항우가 물었다.
“더 마실 수 있겠소?”
번쾌가 말했다.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 잔을 사양하겠습니까?
(臣死且不辭, 豈特卮酒乎! = 斗酒不辭)
패공께서는 먼저 관중으로 들어와 함양을 평정한 뒤 패상(霸上)에서 병사들을 노숙시키며 왕(항우)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오늘에 이르러 소인배의 말만 듣고 패공과 틈을 만드셨습니다. 신은 이 일로 천하가 분열되고 사람들이 왕을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항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패공은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면서 번쾌를 손짓으로 불러내어 그 자리를 떠났다.
[원문: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열전에서]
項羽在戲下, 欲攻沛公. 沛公從百餘騎因項伯面見項羽, 謝無有閉關事. 項羽既饗軍士,
中酒, 亞父謀欲殺沛公, 令項莊拔劍舞坐中, 欲擊沛公, 項伯常(肩)(屏)蔽之. 時獨沛公與
張良得入坐, 樊噲在營外, 聞事急, 乃持鐵盾入到營. 營衛止噲, 噲直撞入, 立帳下.
項羽目之, 問為誰. 張良曰: 沛公參乘樊噲. 項羽曰: 壯士. 賜之卮酒彘肩. 噲既飲酒, 拔
劍切肉食, 盡之. 項羽曰: 能復飲乎? 噲曰: 臣死且不辭, 豈特卮酒乎! 且沛公先入定咸
陽, 暴師霸上, 以待大王. 大王今日至, 聽小人之言, 與沛公有隙, 臣恐天下解, 心疑大
王也. 項羽默然. 沛公如廁, 麾樊噲去.
**이렇듯 斗酒不辭는 본래 장수들의 기개를 표현하던 것이었으나, 뜻이 변하여 주량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등용문(登龍門) : 登 오를 등, 龍 용 용, 門 문 문
용문에 오른다는 뜻으로 입시나 출세의 관문을 뜻한다.
[意義]
난관을 돌파하고 용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관문이란 의미로 쓰인다.
[出典]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을 보면 “門[선비로서 그의 용접을 받는 사람을 이름하여 등용문이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解義]
후한(後漢)말 환제(桓帝) 때의 일이다.
발호장군(跋扈將軍)이라는 횡포한 외척 양기(梁冀)가 제거되고 대신 선초(禪超)등 소위 오사(五邪)의 환관이 포학을 자행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정의파 관료들은 이에 대해 과감한 항쟁을 전개해서 소위"당고(黨錮)의 화"라는 대규모적인 탄압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데, 이 항쟁의 중심이 되고 정의파 관료중 영수로 지목되는 인물로서 이응(李膺)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응은 원례(元禮)(이응의 자)라고 하며 영천 양성(潁川 襄城) 사람이다.
궁정은 환관의 발호로 기강 퇴폐가 심했으나, 이응은 홀로 명교(名敎)의 호지자(護持者)를 자처하고 절조를 지켰으므로 명성이 더욱 높아져 태학의 청년 학생들은 그를 경모해서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라 일컬었거니와 신진 관료인사(官僚人士)들도 그와 친분을 갖거나 추천을 받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삼아 이것을 "등룡문(登龍門)"이라 칭했다.
용문(龍門)이란 황하 동쪽, 지금의 산서성(山西城) 직산현(稷山縣) 상류에 있는 협곡의 이름으로 일명 하진(河津)이라고도 한다.
이 근처는 아주 흐름이 빨라서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대어(大魚)도 타고 넘지 못한다.
한번 이 급류를 타고 넘으면 그 물고기는 곧 용으로 화한다고 전해 지는 곳이다.
따라서 용문으로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난관을 돌파해서 약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등룡문"의 반대를 의미하는 말에 "점액(點額)"이란 말이 있다.
액(額)이란 이마, 점(點)이란 상처 입는다는 뜻으로, 용문으로 올라가려고 급류에 덤벼든 물고기들이 물살에 휘말려 근처에 있는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정신을 잃고 다시 하류로 전락하는 것을 말한다. 즉 출세 경쟁의 패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북위(北魏) 역도원(易道元)의 "수경주(水經註)에서 나온 말이다.
"다광어는 공혈(鞏穴)을 나와서 석 달이 되면 용문을 오르려고 한다.
만일 오르게 되면 용이되고, 그렇지 못하면 점액(點額)하고 돌아온다."
마부작침(磨斧作針) : 磨 갈 마, 斧 도끼 부, 作 만들 작, 針 바늘 침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함을 비유한 말.
詩聖(시성) 두보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詩仙(시선) 李白(이백)[-子는 太白(태백)]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蜀(촉) 땅의 成都(성도)에서 성장하였다.
그때 그는 學文(학문)을 대성하기 위해象宜 山(상의 산)이란 곳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난 '이백'은 산을 내려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어느 냇가에 이르러 한 노파를 만났다.
그런데 노파가 무엇인가를 바위에 열심히 문지르고 있는지라 '이백'이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도끼 (혹은 '쇠 절구공이'라고도 함)가 아닌가?
이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노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할머님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노파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이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이백은 입을 쩍 벌렸다.
'도끼로 바늘을 만들다니?'
다시 물었다.
"그렇게 큰 도끼를 간다고 바늘이 되겠습니까?"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되고 말고."
노파의 대꾸를 들은 이백은 크게 감동했다. 이윽고 이백은 노파에게 인사를 한 뒤 산으로 다시 올라갔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꾼 것이다.
그 후 이백은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해이해질 때 마다 항상 그 노파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출처:“마부작침(磨斧作針)” 이야기
* 두보 [杜甫]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712~ 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공부(工部)·노두(老杜). 율시에 뛰어났으며, 긴밀하고 엄격한 구성, 사실적 묘사 수법 따위로 인간의 슬픔을 노래하였다. ‘시성’으로 불리며,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꼽힌다. 작품에 <북정(北征)>, <병거행(兵車行)> 따위가 있다.
2009. 09. 07. 출력
망양지탄(望洋之歎) : 望 바랄 망 洋 바다 양, 之 어조사 지, 歎 탄식할 탄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으로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 함.
맹모단기(孟母斷機) : 孟 맏 맹, 母 어미 모, 斷 끊을 단, 機 베틀 기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에 건 날실을 끊었다는 뜻으로, 학문에 정진할 것을 가르침
【뜻】맹자의 어머니가 유학(遊學) 도중에 돌아온 맹자를 훈계하기 위해] 베틀에 건 날실을 끊었다는 뜻으로, 학문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
【원말】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동의어】단기지계(斷機之戒). 단기계(斷機戒)
【유의어】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출전】<열녀전(列女傳)> ‘모의전(母儀傳)’. <몽구(蒙求)>
【고사】
전국 시대를 살다 간 맹자의 어머니의 훈육 일화이다.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공부하던 어린 맹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은 채 맹자에게 물었다.
“그래, 글은 얼마나 배웠느냐?”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고 이렇게 타일렀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이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
크게 깨달은 맹자는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명유(名儒)가 되었다고 한다
문경지교(刎頸之交) : 刎 목찌를 문, 頸 목 경, 之 갈 지, 交 사귈 교
목을 베어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 또는 그런 벗, “삶과 죽음을 초월한 친한 사귐”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과 염파(廉頗)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상여(藺相如)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 하였던 천하명옥(天下名玉)인 화씨벽(和氏璧)을 원상대로 되찾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염파(廉頗)는 배알이를 하였습니다.
세치 혀를 놀려 화씨벽(和氏璧) 하나 되찾아온 공(功)으로 평생(平生) 전장(戰場)을 누비며 공을 세운 자신(自身)을 제치고 상대부(上大夫)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염파(廉頗)는 분개(憤慨)하여 인상여(藺相如)에게 망신(亡身)을 주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 인상여(藺相如)는 염파(廉頗)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기만 하였지요.
인상여(藺相如)의 비겁(卑怯)한 행동을 본 부하(部下)가 곁을 떠나기로 작심(作心)하고 작별(作別)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인상여(藺相如)는 “너는 염파(廉頗)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중 누가 더 무서운가?”라고 물었고 부하(部下)는 “소양왕(昭襄王)”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 인상여(藺相如)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소양왕(昭襄王)도 두려워하지 않고 화씨벽(和氏璧)을 되찾아 온 사람인데 어찌 염파(廉頗) 장군(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진(秦)나라가 쳐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조(趙)나라에 염파(廉頗)와 내가 있기 때문인데 둘이서 싸우게 되면 결국 둘 다 죽고 만다.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위해 염파(廉頗)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廉頗)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결국, 형벌(刑罰)에 쓰이는 형구(刑具)를 짊어지고 인상여(藺相如)를 찾아가 줄여달라는 식의 진심어린 사과(謝過)를 청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목을 베도록 내어주고(문경. 刎頸) 처분을 맡긴 것이지요.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고 친밀한 사귐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문경지교(刎頸之交), 또는 문경지계(刎頸之契)라고 합니다.
반근착절(盤根錯節) : 盤 쟁반 반, 根 뿌리 근, 錯 섞일 착, 節 마디 절
굽은 뿌리와 엉클어진 마디라는 뜻으로, 뒤얽혀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의미.
[해석]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으로, 얼크러져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사건의 비유)
후한서(後漢書) 우전(虞傳)
志不求易 事不避難 臣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乎
[출전.원전]
후한(後漢) 6대 황제인 안제(安帝: 106∼125)때의 일이다. 안제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고 태후의 오빠인 등즐(鄧 )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다. 그 무렵, 서북 변경은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의 침략이 잦았다. 그러나 등즐은 국비 부족을 이유로 양주(凉州:감숙성)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낭중(郎中) 벼슬에 있는 우허(虞 )가 반대하고 나섰다.
"함곡관(函谷關)의 서쪽은 장군을 내고, 동쪽은 재상을 낸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양주는 많은 열사와 무인을 배출한 곳인데, 그런 땅을 강족에게 내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중신들도 모두 우허와 뜻을 같이했다. 이 때부터 우허를 미워하는 등즐은 때마침 조가현(朝歌縣:안휘성 내)의 현령이 비적(匪賊)에게 살해되자, 우허를 후임으로 정하고 비적 토벌을 명했다.
친구들이 모여 걱정했으나 우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에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칼날의 예리함을 알 수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한 우허는 우선 전과자들을 모아 적진에 침투시킨 다음 갖가지 계책으로 비적을 토벌했다고 한다.
백년하청(百年河淸) : 百 일백 백, 年 해 년, 河 물 하, 淸 맑을 청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사물(事物)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의 비유.
② 확실하지 않은(믿을 수 없는) 일을 언제까지나 기다림(기대함)의 비유.
춘추 시대 중반인 주(周)나라 영왕(靈王) 7년(B.C. 565), 정(鄭)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초(楚)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친 것이 화가 되어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곧 주신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은 초나라에 항복하자는 화친론(和親論)과 진(晉)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리며 싸우자는 주전론(主戰論)으로 나뉘었다.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대부인 자사(子駟)가 말했다.
"주나라의 시에 '황하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진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린다는 것은 '백년하청'일 뿐이오.
그러니 일단 초나라에 복종하여 백성들의 불안을 씻어 주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정나라는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기를 모면했다
백면서생(白面書生) : 白 흰 백, 面 얼굴 면, 書 글 서, 生 날 생
오직 글만 읽고 세상사에 경험이 없는 사람
백미(白眉) : 白 흰 백, 眉 눈썹 미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성어
마량의 눈썹이 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요. 다섯 형제 중에 눈썹이 흰 마량의 재주가 가장 출중하다고 하여, 여럿 중에 제일 나은 인물 또는 물건 따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마량(馬良, 187년 ~ 223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문신이다. 자는 계상(季常). 양양(襄陽) 의성 출신이다. 흰 눈썹을 가지고 있어 백미(白眉)라고도 불렸으며, 수재로서 다섯 형제 중 맏이였는데, 이후 여러 사람 중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백미라 부르게 됐다.
유비의 부름을 받아 동생 마속과 함께 유비를 섬겼다. 동오(東吳)와 친선을 유지하고 남만을 회유하는 데 공이 컸다. 유비에게 형주사군(荊州四郡) 정벌을 제안하였으며 관우가 형주를 지킬 때 내정을 보좌했다. 오나라와의 전쟁 때 유비에게 칠백리 걸친 촉군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유비가 관우의 죽음으로 오나라를 정벌 할 때, 마량은 오계(五溪)의 만족(蠻族)를 달래기 위해 파견되어 있었다. 만족은 촉나라의 관위와 칭호를 받고 그를 따랐으나, 유비가 이릉에서 패퇴하자, 이 때 마량은 살해당했다. 관직은 종사(從事)였다.
백중지세(伯仲之勢) : 伯:맏 백 / 仲:버금 중 / 之:어조사 지 / 勢:형세 세
형제의 우열을 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서로 비슷한 형세를 가리킴
【뜻】인물, 기량, 지식 등이 서로 비슷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동의어】백중지간(伯仲之間), 난형난제(難兄難弟)
【유의어】춘란추국(春蘭秋菊) : 봄의 난초와 가을 국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 막상막하(莫上莫下)
【출전】조비(曹丕) : <전론(典論)>
【고사】
위(魏) 나라 초대 황제 조비(曹丕)가 집필한 <전론(典論)>에 나오는 말이다.
조비는 <전론>에서 한(漢) 나라의 대문장가인 부의와 반고 두 사람의 문장 실력에 대해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으로,
"문인들이 서로를 경시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하였다. 부의와 반고의 실력은 백중지간이었다
(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
라고 평하였다. 이 말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의 백중지간이 유래하였다.
조비가 백중지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지만 백과 중은 본디 형제의 순서를 구별하여 부르던 말이다. 맏형을 백, 둘째를 중, 셋째를 숙(叔), 막내를 계(季)라고 불렀다.
따라서 백중은 형과 아우 또는 맏이와 둘째라는 뜻인데, 형제는 보통 외모나 품성이 매우 비슷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을 백중지간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백중지간이었는데 백중지세라는 동의어가 훨씬 많이 사용되어 보통 백중지세라고 부르게 되었다. 줄여서 백중이라고도 한다.
백척간두(百尺竿頭) 百 : 일백 백 / 尺 : 자 척 / 竿 : 대줄기 간 / 頭 : 머리 두
【출전】<서언고사(書言故事)>
【뜻】백 자나 되는 장대 끝이라는 말.
【고사】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임을 말한다.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됨을 뜻하는 말로 '백척간두에 서다'로 쓰이며 줄여서 '간두'라고도 한다. 또, 노력한 위에 한층 더 노력하는 상태 또는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하여, 어떤 목적이나 경지(境地)에 도달하였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함을 뜻하거나, 충분히 언사(言辭)를 다하였어도 더 나아가서 정묘(精妙)한 말을 추가함을 말한다.
중국 송 나라 호계종(胡繼宗)이 엮은 <서언고사(書言故事)>에 쓰여 있으며,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극한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백안시(白眼視) : 白 흰 백, 眼 눈 안, 視 볼 시
흰 눈으로 쳐다보는 것으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홀대함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봄. 중국의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에서 나온 말로, 진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백안(白眼)으로 대하고, 반가운 손님은 청안(靑眼)으로 대한 데서 유래한다.
魏晉 時代위진시대: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老莊노장의 철학에 심취 하여 대나무숲 속에 은거하던 竹林七賢(죽림칠현)의 한사람에 阮籍(완적)이 있었다. 그는 예의 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 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의 형 혜희가 완적(阮籍)이 좋아 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이 업신여기며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처럼 상대가 친지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靑眼視(청안시) 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朝野(조야)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불수진(拂鬚塵) : 拂 떨칠 불, 鬚 수염 수, 塵 먼지 진
수염에 붙은 먼지를 털어준다. 즉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것을 비유한 말.
출전 『宋史』
턱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준다는 뜻으로 남의 환심을 사려고 간사하게 아첨하는 행동.
송(宋)나라 재상중에 구준(寇準)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쪽 같은 인물이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그 대책을 논의하는 어전회의가 열렸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황제의 물음에 다른 중신들은 어물거리며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구준이 거침없이 말했다.
"폐하의 형벌이 공평치 못하여 이를 깨우치려고 재난을 내린 것입니다."
화가 난 황제는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자 구준은 대답했다.
"조길과 왕희는 둘 다 뇌물을 받은 관리입니다. 그런데 약간의 뇌물을 받은 조길은 사형에 처해지고 거액의 뇌물을 삼킨 왕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왕희는 참정 벼슬을 하고 있는 왕면의 동생이었다. 황제는 왕면 형제를 조사한 뒤 즉각 파면했다. 이런 사심없고 강직한 태도 때문에 구준은 황제의 신임을 받았지만 백관들은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어느 날 중신들의 회식자리에서 구준의 턱수염에 음식 찌꺼기가 붙었다.
참정인 정위라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 수염에 묻은 것을 정성껏 털어 주었다.
정위는 구준 자신이 발탁해서 기용한 인물이었다.
구준은 그의 아부하는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무안을 줄까봐 웃으며 말했다.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그런 사람이 어찌 남의 수염에 묻은 것을 털어 주는 일(拂鬚塵) 따위를 한단 말이오!"
잘하려고 한 행동이 그런 식으로 무안을 당하자 정위는 그날부터 앙심을 품었다.
결국에 구준은 정위의 모함으로 재상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비육지탄(脾肉之嘆) : 脾 넓적다리 비, 肉 고기 육,之 갈 지, 嘆 탄식할 탄
넓적다리에 살만 찌는 것, 즉 성공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냄을 한탄함.
사족(蛇足) : 蛇 뱀 사, 足 다리 족
뱀의 발, 즉 쓸데없는 것을 뜻함.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일을 덧붙여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소양(昭陽)이 위(衛)나라를 치고 다시 제(齊)나라를 치려 할 때, 제나라의 세객(說客) 진진(陳軫)이 소양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설복할 때 나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내기를 하였는데, 그것은 땅바닥에 뱀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그 술을 마시기로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뱀을 제일 먼저 그리고 왼쪽 손으로 술대접을 들면서 오른손으로 뱀의 발까지 그리면서 ‘나는 발까지 그렸다’고 뽐내며 술을 마시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뱀 그림을 끝내고 그 술잔을 빼앗아 들며 ‘뱀에는 원래 발이 없다. 그런데 자네는 발까지 그렸으니 그건 뱀이 아니다’라고 하며 술을 마셔버렸습니다. 장군은 지금 위나라를 치고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나라의 최고 벼슬에 계시는 장군이 거기서 더 얻을 것이 무엇이며, 만에 하나라도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면 뱀의 발을 그리려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소양은 과연 옳은 말이라 여겨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나오는 말이다. 뱀에게도 다리가 있지만 쓰이지 않아 퇴화되는 바람에 거의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뱀의 발을 가리키는 한자말인 ‘사족(蛇足)’을 “쓸모없는 군더더기” 정도로 알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족’이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물건이나 사태”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오해는 뒤의 ‘타산지석’처럼 발생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사전적 인상에 치우친 결과입니다.
긁어 부스럼...사족(蛇足)
이렇게 보면 ‘사족’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존재가치에 대한 소극적 부정이 아니라 적극적 부정을 내포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족이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있어서는 해가 되는 것”을 뜻하는 고사 성어임을 분명히 기억해 두시라는 말입니다. 즉 “긁어 괜히 부스럼을 만들지 말라”는 적극적 충고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윗사람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하찮은(자신보다 못한)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됨"을 의미한다.
'남의 훌륭한 점을 보고 얻는 것'을 가리킬 때는 '귀감(龜鑑)'을 쓴다.
다시 말해 '선생님의 말씀을 귀감(龜鑑)으로 삼아 노력하겠습니다.' 라고해야 옳은 표현이다.
타산지석 [他山之石]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됨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편(小雅篇)〉의 '학명(鶴鳴)'에 나오는 구절 '… 타산지석 가이위착(他山之石 可以爲錯;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구슬 가는 숫돌은 됨직한 것을!)' 에서 나온 말이다.
유사한 말로 '반면교사 [反面敎師]'가 있다.
('반면교사 [反面敎師]' : 다른 사람이나 사물(事物)의 부정적(否定的)인 측면(側面)에서 가르침을 얻음을 이르는 말 )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였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
'가장 심한 범죄를 저지른 자 이외에는, 소수의 나쁜 사람들을 (…) 제명하지말고, 그의 모든 정치적 세력을 박탈하고 고립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마오쩌둥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장진한, 『이젠 국어사전을 버려라』)
반면교사, 타산지석 그리고 귀감에 보면 차이점이 상세히 나와 있다. 우리가 사자성어의 겉모양으로 뜻과 쓰임새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많다. 고사성어 강의를 보면 잘못 사용하거나 곡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선즉제인(先則制人) : 先 먼저 서 則 곧 즉, 制 다스릴 제, 人 사람 인
선수를 쳐서 상대를 제압한다는 의미
송양지인(宋襄之仁) : 宋 송나라 송, 襄 도울 양, 之 어조사 지, 仁 어질 인
송나라 양공의 인정, 쓸데없는 인정
[겉뜻] 송 나라 양공(襄公)의 어짐. 중국 춘추 시대에, 송나라의 양공이 적을 불쌍히 여겨 공자목이(公子目夷)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오히려 초나라에 패배하여 세상 사람들이 비웃었다는 데서 유래
[속뜻] 너무 착하기만 하여 쓸데없는 아량을 베풀어 실속이 없음.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또는 불필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음.
【유 래】
춘추 시대인 주(周) 나라 양왕(襄王) 2년(BC 650), 송(宋) 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그러나 목이는,
“나라를 물려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최대의 인자(仁者)이오.”
하면서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즉위하여 양공(襄公)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의 자리에 앉혀 송나라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7년 후(BC 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 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 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인 주나라 양왕 13년 봄에는 춘추시대 제일의 패자인 제의 환공(桓公)을 본받아 녹(鹿-송나라 땅)에서 송ㆍ제ㆍ초(楚) 세 나라의 제후가 모였고, 양공은 맹주(盟主)가 되었다.
이때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禍)의 근원이 도리라’ 라며 걱정했다.
그 해 가을에는 우(盂-송나라 땅)에서 송, 초, 진, 채, 정, 허, 조의 제후들이 모였는데, 강국인 초는 양공의 이러한 행동을 불손한 짓이라 하여 계략을 세워 양공을 포로로 잡아 버렸다. 그리고 겨울에 양공은 용서를 받아 귀국했지만, 목이는
“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직도 어려운 일은 남아 있다.”
고 말했다.
이듬해 봄의 일이다. 정나라는 양공을 얕보고 초나라와 가까이 하였다. 노한 양공은 그 해 여름에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나라를 쳤다. 목이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드디어 화가 닥쳐온다.”
그러자 그 해 동짓달에 과연 초(楚)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 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다. 송(宋) 나라의 양공(襄公)은 먼저 강 저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초나라 군사는 이를 공격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초군은 속속 강을 건너오고 있었는데, 아직 도강이 끝나지 않아 진용이 갖추어지지 못했으므로 목이는 이렇게 주장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다. 적진이 갖추어지기 전에 공격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이윽고 목이는 적군이 강을 다 건넌 뒤에도 아직 충분한 전투 준비가 안 된 것을 보고,
“초는 강적이므로 지금 공격해도 이길지 어떨지 모릅니다. 싸움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니 적의 약점을 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고 말했다.
그랬건만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5월에 죽고 말았다.
그는 춘추(春秋) 오패(五覇)에 끼기도 하는 인물이었지만, 도저히 제의 환공이나 진의 문공 같은 큰 인물은 못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쓸데없는 인정을 가리켜 ‘송양의 인’이라 하게 된 것이다.
수어지교(水魚之交) : 水 물 수, 魚 고기 어, 之 어조사 지, 交 사귈 교
물과 고기의 사이처럼 친한 사귐
[출전]『三國志 』 諸葛亮傳
[내용]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을 찾던 三顧草廬(삼고초려) 때의 이야기다.두번이나 허탕치고 세번째에야 비로소 가까스로 만났는데 사실 관우와 장비는 처음부터 유비가 친히 찾아가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했다. "일개 촌부에 불과한 것 같은데 사람을 보내 불러 오게 합시다." 장비의 말이었다. 결국 두번째도 허탕치자 이번에는 관우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했다. "두번이나 찾았다면 예를 다한 셈입니다. 보아하니 제갈량은 有名無實(유명무실)한 인물이라 일부러 피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자 장비도 이때다 싶어 크게 말했다. "이젠 정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이 안오겠다면 제가 밧줄로 꽁꽁 묶어서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결국 유비의 정성에 감복한 제갈량은 하산해 그를 위해 犬馬之勞(견마지로)를 다한다. 後에 유비는 제갈량을 師父(사부)로 모시면서 침식을 같이 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날이 갈수록 유비가 제갈량을 신뢰하고 교분이 더욱 두터워 지니 결의형제(結義兄弟)한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몹시 불만스러워 했다. 어느 날 유비가 그것을 알고 그들을 불러
선왕이 말하기를“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원컨데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라고 말하고 또한 관우와 장비를 위로 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렇듯이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돈독한 관계를 맺을 때를 수어지교라고 한다. 이때 유비의 나이는 마흔일곱살이고 제갈량은 스물일곱살이었다이처럼 수어지교는 본디 군신간의 관계가 친밀한 것을 비유했던 것이 후에는 친구나 심지어 부부간의 관계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극도로 가까운 사이'를 뜻한다.
[원문]先王曰 孤之有孔明은 猶魚之有水라 源勿復言하라
수적천석(水滴穿石) : 水 물 수, 滴 물방울 적, 穿 뚫을 천, 石 돌 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수주대토(守株待兎) : 守 지킬 수, 株 그루 주, 待 기다릴 대, 兎 토끼 토
나무그루 밑에서 토끼가 오면 잡으려고 기다린다는 말.
어리석게 한 가지만 기다려 융통성이 없음. 노력 없이 성공을 바람.
송나라 경내에 얌전하기는 하지만 머리가 둔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날이 새면 밭에 나가 온종일 밭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몸을 쉬는 바쁜 나날을 지내며 비할 데 없이 부지런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몇 마지기 되지 않는 밭 가에는 한 그루의 오래 묵은 나무가 있었는데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뭇잎도 무성하고 나무 뿌리 덩굴이 땅 위로 뻗쳐 나와 있었다.
하루는 그가 밭에서 밭갈이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토끼 한 마리가 황망히 자기 곁으로 뛰어 오더니 쏜살같이 그 나무가 있는 쪽으로 비호같이 달아났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토끼가 뿌리가 튀어나온 그 나무아래까지 가더니 그만 나무 뿌리에 받쳐 목이 부러지면서 옆으로 나뒹굴어져서 꼼짝 하지 않았다. 아마도 놀란 나머지 급히 뛰어 달아나다가 그만 앞을 잘못 보아 일어난 사고라 느껴진 농부는 재빨리 뛰어가 토끼를 살펴보니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딱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기쁜 심정을 감추지 못해 혼잣말로 『오늘 재수가 참 좋은데! 아침 일찍부터 힘 하나 안들이고 통통하게 살이 찐 먹음직한 토끼를 한 마리 얻었으니 말이야, 매일같이 이런 일이 생긴다면 밭에서 고생을 안 해도 될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햇볕에 검게 그을린 검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날부터 그 농부는 호미를 내던지고 다시는 밭에 나가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매일같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에 관계없이 그 아래 묵은 나무아래에 지켜 앉아 그 때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학수고대했다.
이때 동리에 사는 이웃 사람들이 그가 밭일은 아니하고 날마다 나무 lx에 얼빠진 모양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모두들 달려와 밭갈이를 하지 않고 이 꼴로 하고 있는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어리석은 농부는 제 딴에는 득의에 찬 어조로 이웃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알려 드릴까요? 사실은 제가 여기서 토끼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하고 며칠 전 토끼 한 마리를 얻게 되었던 경위를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이웃 사람들은 폭소를 자아내며 이구동성으로 타이르며 말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런 우연한 일이 이 세상에서 또 있는 일이 아닐세. 그런 생각일랑 아예 버리고 밭농사나 부지런히 짓게』 그러나 이 농부는 막무가내였다.
어쩌면 자신이 차지한 이 기회를 시기해서 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오히려 이웃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계속 그 나무 밑에 앉아 토끼가 나타날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이렇게 또 며칠이 지나도 토끼가 나타나질 않자 실의에 찬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불쌍한 농부는 늦게나마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다시 일하기 위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그러나 오랫동안 밭을 매지 않았음 인지 밭에는 잡초가 우거져 마치 숲과 같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 : 脣 입술 순, 亡 잃을 망, 齒 이 치, 寒 찰 한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 즉, 이웃나라가 망하면 자기 나라도 온전하기 어렵다는 뜻이 있으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술이부작(述而不作) : 述 지을 술, 而 말 이를 이, 不 아니 불, 作 지을 작
'참된 창작은 옛것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태어난다'는 공자의 말씀
☞성인의 말을 술하고(전하고) 자기의 설(說)을 지어내지 않음.
글을 씀에 있어있는 사실을 쓰되, 제 멋대로 지어내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출전]『논어』
[내용]「공자가 말씀하시기를“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은(殷)의 현인 팽(彭)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원문]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시오설(視吾舌) : 視 볼 시, 吾 나 오, 舌 혀 설
내 혀를 보라는 뜻으로,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
【뜻】‘내 혀를 보아라’ →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
【동의어】상존오설(尙存吾舌)
【참조】계구우후(鷄口牛後), 고침안면(高枕安眠)
【출전】<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
【고사】
전국 시대, 위(魏) 나라에 장의(張儀)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권모 술수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웠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과는 동문이 된다.
장의는 수업을 마치자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 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는 끝내 부인했다.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했어요?”
그러자 장의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그럼 됐소.”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해선 안 된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했다.
☞
▶합종책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
▶귀곡자 :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 모사). 성명ㆍ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반 지식에 통달했다고 함.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 <귀곡자(鬼谷子)> 3권을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음.
▶연횡책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앙급지어(殃及池魚) : 殃 재앙 앙, 及 미칠 급, 池 못 지, 魚 고기 어
성에 난 불을 끄느라 연못물을 퍼다 썼더니 못의 고기가 죽었다는 뜻으로 하나의 재앙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옴을 비유한 말.
【뜻】연못 속 물고기의 재앙 → 뜻밖의 횡액을 당함. 재난이 뜻하지 않은 곳까지 미침.
【출전】<여씨춘추(呂氏春秋)> '필기편(必己篇)'
【동의어】지어지앙(池魚之殃)
【속담】모진 놈 옆에 있다가 날벼락 맞는다.
【고사】
춘추 전국 시대 초(楚) 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어느 날 초 나라 궁궐의 성문에 불이 나게 되었다.
이때 성문 바로 옆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의 물을 모두 퍼다가 불을 끄게 되었다.
그래서 연못의 물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죽어버렸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송(宋) 나라에 사마(司馬) 벼슬의 환(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매우 진귀한 보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지었다.
처벌을 받을 것 같자, 보석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의 보석 이야기를 들은 왕이 욕심이 생겨 수중에 넣고 싶어 하였다.
왕은 측근의 환관에게 속히 처리할 것을 명하였다. 환관이 어렵게 환을 찾아내자,
"그 보석은 내가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에 던져버렸다" 라고 하였다.
환관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은 당장 그물로 연못의 바닥을 훑게 하였다.
보석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었다.
그러나 보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물을 모두 퍼내는 바람에 애꿎은 물고기들만 말라 죽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보석과 물고기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고기만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당했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초(楚) 나라의 원숭이와 성문의 화재 이야기가 있다.
초 나라 왕궁에서 원숭이를 기르다가 놓쳤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 달아난 산에다 불을 놓아 나무를 모두 태워버렸다.
또 초 나라 왕궁 성문에 불이 났다. 사람들이 성문 옆의 연못에서 물을 퍼내어 불을 껐다.
이 때문에 연못의 물이 말라버려 물고기들이 다 죽었다.
모두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남 때문에 뜻밖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다.
양상군자(梁上君子) : 梁 들보 량, 上 위 상, 君 군자 군, 子 아들 자
대들보 위의 군자. 곧 도둑을 가리키는 말.
엄이도령(掩耳盜鈴) : 掩 가릴 엄, 耳 귀 이, 盜 훔칠 도, 鈴 방울 령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말.
엄이도령이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말로서 또는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고도 합니다.
진(晋)나라 때, 어떤 귀족 집안이 망하자 혼란한 틈을 타서 그 집 종을 훔치려고 기어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이 너무 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망치로 깨뜨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혹시 다른 사람이 듣고 와서 자기가 훔친 것을 빼앗아갈까봐 손으로 자기 귀를 가렸다고 합니다.
별난 바보도 다 있군……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귀만 막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자기가 듣지 않는다고 남도 모를 줄 아는 것은 귀를 가리고 종을 깨뜨리는 도둑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란 것을 말하기 위해서『여씨춘추』에는 위의 이야기 다음에 위나라 문후(文侯)의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위문후가 신하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자기에 대한 견해를 기탄없이 말해달라며 차례로 물어 나갔다.
모두들 한결같이 임금의 잘한 점만을 들어 칭찬했지만 임좌(任座)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임금의 숨은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이었습니 다.
문후가 얼굴을 붉히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임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다음에 유명한 적황(翟黃)이 말할 차례가 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임금은 밝으신 임금입니다.
옛말에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바른말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금 임좌가 바른말 하는 것을 보아 임금께서 밝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후는 곧 자기 태도를 반성하고 급히 임좌를 부르게 한 다음 몸소 뜰 아래까지 나가 그를 맞아 올린 후 상좌에 앉게 했다고 합니다.
역린(逆鱗) : 逆 거스를 역, 鱗 비늘 린
다른 비늘과 반대로 거슬러서 난 비늘이란 뜻으로, 왕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말.
역자교지(易子敎之) : 易 바꿀 역, 子 아들 자, 敎 가르칠 교, 之 갈 지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으로, 부모가 자기 자식을 가르치기는 어렵다.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
[출전]『맹자(孟子) 』 이루상(離婁上)
[내용]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기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공손추는 공자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음이 궁금해 물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형편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바르게 하라고 가르쳐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자연 노여움이 따른다. 그러면 도리어 부자간의 정이 상하게 된다. 이에 자식은 아버지는 나를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버지 역시 바르게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옛날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쳤다.
부자간에는 잘못했다고 책하지 않는 법이다. 잘못을 꾸짖으면 서로 정이 난다. 정이 멀어지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또 있겠는가? 라고 답했다.스승도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이다. 즉,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면 부자지간에 서로 노여움이 생기고 감정이 상하게 되는 등 폐단이 많아지므로 다른 사람과 서로 자식을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원문]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 何也 孟子曰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則反夷矣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則惡矣 古者 易子而敎之 父子之間 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 莫大焉
연목구어(緣木求魚) : 緣 인연 연, 木 나무 목, 求 구할 구, 魚 고기 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함.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 함.
주나라의 신정왕(愼靜王) 3년, 맹자는 양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이미 50을 넘긴 나이였다. 동쪽에 있는 제나라는 서쪽의 진, 남쪽의 초와 더불어 전국 제후 가운데서도 대국이었다. 선왕(宣王)도 꽤 재주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 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가 아니요 부국강병이며, 외교상의 책모(策謨)- 원교근공(遠交近攻)책과 합종책(合從策-서쪽의 강대한 진에 대하여 한,위,조,연,제,초 여섯 나라가 동맹하여 대항해야 한다는 공수 동맹에 의하려는 정책), 그리고 연형책(連衡策)등이었다. 선왕은 맹자에게 춘추시대의 패자였던 제의 환공(桓公), 진의 문공의 패업에 대하여 듣고 싶다고 했다. 선왕은 중국의 통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대체 임금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나라 제후들과 원수를 맺는 것을 좋아 하시나요?" 하고 맹자가 물었다.
"아니오. 좋아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하려는 것은 내게 대망이 있기 때문이오."
"임금의 대망이란 것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인의(仁義)에 의한 왕도정치를 말하는 맹자를 앞에 두고 선왕은 조금 난처해져 웃기만 할 뿐 좀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맹자가 말했다.
"전쟁의 목적은 의식(衣食)이오니까?"
"아니요, 나의 욕망은 그런 것이 아니오."
선왕은 교묘한 변론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맹자는 세차게 논했다.
"그러시다면 이미 다 알 수 있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과 초의 대국으로 하여금 허리굽히게 하고 중국 전체를 지배하여 사방의 오랑캐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이때까지의 방법, 즉 일방적인 무력으로서 그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것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는 것이라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선왕은 이 말에 놀라서 의외로 생각했다.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어렵습니다. 그건 나무에 올라 고기를 얻으려 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력으로 대ㅂ망을 이루려 하시면 심신을 다하여 결국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치는 큰 재난까지 당하여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옵니다."
"재난을 당하는 까닭을 가르쳐 주시오."
선왕은 귀가 솔깃하여 다가앉았다. 이리하여 맹자는 교묘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얻어 인의에 바탕한 왕도정치론을 당당히 설명해 갔던 것이다.
<맹자> <양혜왕편(梁惠王篇)>
오리무중(五里霧中) : 五 다섯 오, 里 마을 리, 霧 안개 무, 中 가운데 중
사방 5리가 온통 안개 속이라는 뜻으로, 즉 앞길을 예측할 수 없음.
오월동주(吳越同舟) : 吳 오나라 오, 越 월나라 월, 同 한가지 동, 舟 배 주
원수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으로 서로 미워해도 위험에 처하면 돕게 된다는 말이다.
예부터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 지간으로 백성들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고 하였다.
그러자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필사적으로 풍랑을 헤쳐 나왔다.
옥하(玉瑕) : 玉 구슬 옥, 瑕 티 하
옥의 티, 즉 아무리 훌륭한 것에도 결점은 있다. 혹은 작은 결점은 어디에나 있으니 굳이 없애려 하지 말라.
와각지쟁(蝸角之爭) : 蝸 달팽이 와, 角 뿔 각, 之 갈 지, 爭 다툴 쟁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 즉 사소하고 무의미한 싸움.
와신상담(臥薪嘗膽) : 臥 누을 와, 薪 섶나무 신, 嘗 맛볼 상, 膽 쓸개 담
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고난을 참고 견딤.
* 풀이: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말로 원수를 갚기 위해 괴롭고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쓰인다.
<출전『史記』>
*유래: 춘추 시대 주(周)나라 경왕(敬王) 24년 일어난 이야기다.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절강성 가흥(浙江省 嘉興)] 싸움에서 크게 패했고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夫差)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아버지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참모인 범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 )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는 부차에게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 없애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결국 백비의 진언에 따라 항복을 받아들였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말을 사육 하는 일을 하며 노예처럼 지내다가, 구천의 자비로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항복 후 구천(勾踐)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때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극진히 모셨던 이가 또 다른 충신 범려였다. 그는 미인계와 뇌물로 吳의 대부 백비와 내통했다.
3년 째 되던 어느 날, 백비의 설득으로 부차(夫差)는 구천(勾踐)을 귀국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충신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듣고 난 뒤 갑자기 뜻을 바꿔 구천(勾踐)을 죽이기로 하고 불렀다.
마침 부차(夫差)는 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는데 이때 범려의 기지가 번뜩였다.
그는 점쟁이였다. 쾌유돌 날을 정확히 예견한 다음 구천에게 말했다.
“부차(夫差)는 임신(壬申)일이면 쾌차하리다. 따라서 문병 때 부차(夫差)의 대변을 맛보고 안색을 살피는 척하면서 그 날 완쾌하신다고 하면 크게 감동할 것입니다.”
구천(勾踐)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패했기로서니 일국의 제후였던 신분에 어찌 그 짓을….
그러자 범려가 분연히 아뢰었다.
“대사를 위해 순간의 굴욕은 참아야 합니다. 대왕은 먼 훗날을 위해 항복한 몸이 아닙니까. 옛날 문왕(文王)은 폭군 주(紂)가 자신의 아들을 삶은 국을 내렸을 때 뻔히 알면서도 받아 마셨습니다.”
이 말에 따라 문병하고 보니 그는 이질로 심한 설사를 하고 있었다.
“신이 듣기에 설변(泄便·설사한 변)으로 병의 차도를 안다고 했습니다.”
구천은 이렇게 말하며 요강에 손가락을 푹 넣고서 부차의 변을 듬뿍 찍어 맛을 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좌우 신하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구천은 태연했다.
“삼가 경하하나이다. 대왕의 병환은 임신(壬申)일에 완쾌하오리다.”
과연 병은 그 날 완쾌되었고, 부차(夫差)는 감동한 나머지 오자서(伍子胥)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귀국시키고 말았다.
고국에 돌아온 그 후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7년 전쟁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서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참고]嘗糞(상분-대변을 맛보다)
*유의어:
漆身呑炭(칠신탄탄) : 몸에 옻칠 하고 숯불 삼키다. 복수를 위해 자기 몸을 괴롭히다.
會稽之恥(회계지치) : 절치액완(切齒扼腕)이를 갈고 팔을 걷어붙이며 벼름.
切齒腐心(절치부심) : 이를 갈며 속을 썩임.
요동지시(遼東之豕) : 遼 멀 요, 東 동녁 동, 之 갈 지, 豕 돼지 시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준말] 요시(遼豕).
[동의어] 요동시(遼東豕).
[출전]《文選》〈朱浮書〉,《後漢書》〈朱浮專〉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 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 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 (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 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 득의양양(得意洋洋)
겸손의 교훈을 주는 고사가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기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인 안영의 한 마부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안영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려는데, 마부의 처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의 거동을 엿보았다. 자신의 남편은 수레 위에 큰 차양을 씌우더니, 마차의 앞자리에 앉아 채찍질하는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意氣揚揚 甚自得也)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처는 그에게 이혼해야겠다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재상인 안영은 키가 육척도 못되지만, 나라의 재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 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매우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팔척이 넘으면서도 남의 마부가 된 게 만족스런 듯 기뻐하니
저는 이런 남자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후 마부는 늘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재상은 그를 대부로 천거하였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득의양양(得意洋洋)이다.
득의양양(得意洋洋)이란 의기양양이라고도 하는데 뜻대로 되어 기쁘고 으쓱거리는 기상이 얼굴에 나타나는 모양을 말한다.
욕속부달(欲速不達) : 欲 하고잘 할 욕, 速 빠를 속, 不 아니 부, 達 통달할 달
마음만 급하다고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라는 뜻. 즉, 매사를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라는 말.
* 욕속부달 욕교반졸(欲速不達 欲巧反拙)
/ 欲 : 욕심 욕 / 巧 : 공교할 교 / 反 : 돌이킬 반 / 拙 : 못날 졸
【뜻】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 너무 잘하려고 하다간 오히려 망쳐 놓는다.
【출전】<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
【고사】
자하(子夏)가 거보라는 고을의 태수가 되면서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
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慾速不達),
작은 것에 매달리다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慾巧反拙)."
공자의 이 말은 임기 안에 자신의 치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가의 속성을 잘 꼬집어 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도 갖기 쉬운 잘못된 마음가짐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성사될 때가 있고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우선은 큰 안목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전탄금(牛前彈琴) : 牛 소 우, 前 앞 전, 彈 탄알(활) 탄, 琴 거문고 금
소에게 거문고 소리를 들려준다는 뜻으로, 우둔한 사람에게 도리를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하므로 헛된 일이라는 말.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읽기”와 같은 말
우화등선(羽化登仙) : 羽 깃 우, 化 될 화, 登 오를 등, 仙 신선 선
껍질을 벗고 날개를 달아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도를 깨쳐 신선이 됨. 즉 세상의 혼란함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신선들의 죽음은 대부분 ‘우화등선(羽化登仙)’으로 기록된다 .
[출전] 『前赤壁賦』
[내용] : 임술년(1082) 가을 7월 16일에, 동파가 손님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의 아래에서 놀 때에 청풍은 천천히 불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시경의 명월편을 암송하고 요조의 장을 노래 불렀다. 이윽고 달이 동산 위에 나와 남두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하더라.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은지라, 쪽배가 가는 대로 맡겨 아득히 넓은 강을 지나가니, 넓고 넓도다.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 가서 그 그치는 곳을 모르겠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도다. 속세를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구나.
이때에 술을 마셔 즐거움이 더하니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참고]우화(羽化)라는 말의 원뜻은 번데기가 날개 있는 벌레로 바뀐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화등선이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 날개가 돋친 듯 날아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 일종의 이상 동경이라 할 수 있다.
[원문] 壬戌之秋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월하빙인(月下氷人) : 月 달 월, 下 아래 하, 氷 얼음 빙, 人 사람 인
월하로(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것으로, 결혼 중매인을 일컫는 말.
위편삼절(韋編三絶) : 韋 다룸가죽 위, 編 엮을 편, 三 석 삼, 絶 끊을 절
한 책을 되풀이해 읽어 철한 곳이 헤진 걸 다시 고쳐 매어 읽음. 즉 독서를 열심히 함.
고대 중국에서는 책이 소위 몇 십 장의 죽간(竹簡)을 가죽 끈으로 철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그 끈이 몇 번이나 끊어지도록 책을 계속하여 읽는 것을 ´韋編三絶´ 이라고 한다.
´三絶´이란 딱 세 번에 한정된 수가 아니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끊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알려진 전한(前漢)의
사마천 (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가운데 공자전(孔子傳)에 실려 있는 말로,
공자가 만년에 역경(易經)을 애독하여 위편삼절(韋編三絶)에 이른 데서 나왔다고 한다.
공자(孔子)가 만년(晩年)에 역경(易經)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說卦) 문언(文言)편을 서(序)하고,
역경(易經)을 읽어 위편삼절(韋編三絶)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만일 내게 몇 년의 시간을 더 준다면
나는 주역의 문사(文辭)와 의리(義理)에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
죽간이 끊어질 정도로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 빠지고 탐닉했다는 것이다.
이는 학문에 몰입하는 지극한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독서를 권장하는 말에 開卷有益(개권유익)이란 것도 있다.
책은 읽지 않고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뜻이다.
언감생심 焉敢生心 : (焉:어찌 언 敢:감히 감 生:날 생 心;마음 심)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음. 비슷한 말 : 안감생심.
. 이놈, 누구 앞이라고 언감생심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 상급 학교 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언감생심
. 돈이 어떤 돈인데, 언감생심, 떼어먹다니요. 언감생심
. 크고 기름진 것은 그만두고라도 새끼 한 마리조차 고아 먹어 보지 못하였다.
그것을 어찌 감히 꿈에라도 언감생심 맛볼 수가 있었으랴.≪최명희, 혼불≫
은감불원(殷鑑不遠) : 殷 은나라 은, 鑑 거울 감, 不 아니 불, 遠 멀 원
은나라의 거울은 먼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요약]
은나라 멸망을 보는 거울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원말] 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어] 상감불원(商鑑不遠)
[유어] 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출전] 《시경 대아편(詩經 大雅篇)》
[내용] 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殷王朝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 (紂王)은 원래 지용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북방 오랑캐의 유소씨국 (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女+旦己)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妖女毒婦) 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國庫)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 (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폭락(飮酒暴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다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火包烙之刑)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주왕(紂王)의 포학(暴虐)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의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 당하고 서백(西伯) 은 유폐되었다.
서백(후에 주문왕)이 은주왕을 개탄하는 말을 가탁(假託)하여 만든 것이 시경(詩經) `대아편 (大雅篇)`의 `탕시(湯詩)`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蕩之什(탕지십)
[생략]
일찌기 문왕께서 말씀하시되 文王曰咨(문왕왈자)
아, 어지러운 은 나라여! 咨女殷商(자여은상)
세상에 널리 도는 말이 있거니 人亦有言(인역유언)
쓰러진 나무 뿌리 드러날 적엔 顚沛之揭(전패지게)
가지나 잎이냐 우선 아니 상해도 枝葉未有害(지엽미유해)
뿌리는 먼저 이미 죽어 있다고 本實先撥(본실선발)
은의 거울은 가까운데 있었던 것을 殷鑒不遠(은감불원)
하의 망국 비쳐 볼 줄을 잊었도다 在夏后之世(재하후지세)
삼공(三公)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주왕의 친형, 망명) 기자(箕子:왕족, 망명) 비간(比干:왕자, 처형당함)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되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怨聲)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離叛) 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주왕조의 시조 무왕 武王)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 : 泣 울 읍, 斬 벨 참, 馬 말 마, 謖 일어날 속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공정함을 지키기 위해서 사사로운 정을 버린다는 말.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애석하지만 자기가 아끼는 자를 버리는 일의 비유.
중국 촉(蜀)나라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유비(劉備)가 사망한 후 그 유조(遺詔)를 받들어 숙적인 위(魏)나라를 쳤으나,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군령을 어겨 대패한 부장 마속을 지난날의 전공과 친교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참형(斬刑)에 처하여 전군의 각성을 촉구했다는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의 고사에 따른 것이다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 인만큼 군량 수송로의 가정(街亭:한중동쪽)을 수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 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 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 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 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 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제갈 량이 주저 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는가?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 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 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 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겼다.
마속은 전 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 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 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28)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 완(張浣)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 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 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출전]《三國志》〈蜀志 諸葛亮專〉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문신이다. 자는 계상(季常). 양양(襄陽) 의성 출신이다. 흰 눈썹을 가지고 있어 백미(白眉)라고도 불렸으며, 수재로서 다섯 형제 중 맏이였는데, 이후 여러 사람 중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백미라 부르게 됐다.
일이관지(一以貫之) : 一 한 일, 以 써 이, 貫 꿸 관, 之 갈 지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 것을 꿰뚫음.
일자사(一字師) : 一 한 일, 字 글자 자, 師 선생 사
한 글자를 가르쳐 준 스승이란 뜻으로, 핵심을 짚어주는 유능한 스승을 가리킨다.
자가당착(自家撞着) : 自 스스로 자, 家 집 가, 撞 칠 당, 着 붙을 착
자기가 한 말이나 글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특히 말과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을 때를 말함.
전거복철(前車覆轍) : 前 앞 전, 車 수레 거, 覆 뒤집힐 복, 轍 바퀴자국 철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자국이란 뜻으로 앞의 실패를 거울로 삼으라는 의미.
조명시리(朝鳴市利) : 朝 아침 조, 鳴 울 명, 市 저자 시, 利 날카로울 리
명서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조삼모사(朝三暮四) : 朝 아침 조, 三 석 삼, 暮 저물 모, 四 넉 사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라는 뜻으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경우를 빗대는 말. 또는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이르는 말.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견딘다고 하였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좋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열자(列子)》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결국 조3모4나 조4모3(朝四暮三)이나 똑같은 숫자인 점에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수로 넘기는 데 비유하게 되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 走 달릴 주, 馬 말 마, 加 더할 가, 鞭 채찍 편
달리는 말에 계속 채찍질을 한다는 뜻으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을 더욱 부추기거나 몰아친다는 말임.
走 馬 看 山 : (달릴 주 말 마 볼 간 메 산)
달리는 말 위에서 산천을 구경하듯 사물을 대강 보고 지나침.
看 (볼 간); 살펴보다. 보살피다.
看破(간파)/看病(간병)
중과부적(衆寡不敵) : 衆 무리 중, 寡 적을 과, 不 아니 불, 敵 적 적
적은 숫자로는 많은 숫자를 대적하지 못한다.
【출전】<맹자(孟子)> ‘양혜왕편(梁惠王篇)’
【고사】
전국시대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왕도(王道)를 역설하던 맹자가 제(齊) 나라의 선왕(宣王)을
만났다. 선왕은 천하의 패권을 잡기 위한 방법을 맹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토지를 개척하여 진(秦) 나라와 초(楚) 나라의 조회를 받고 중국에 군림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어루만지고자 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이처럼 심합니까?”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재앙은 없겠지만,
이와 같은 욕심을 추구하면 마음과 힘을 다하더라도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지금 소국인 추(鄒)와 대국인 초(楚)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겠습니까?”
“초 나라가 이깁니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결코 큰 것을 이길 수 없고(小固不可以敵大),
무리가 적은 것은 무리가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寡固不可以敵衆),
약한 것은 강한 것에 패하기 마련입니다(弱固不可以敵强).
지금 천하의 1000리 사방(四方)에 아홉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제 나라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가 나머지 여덟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결국 추 나라가 초 나라를 이기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다음 맹자는 왕도론으로 말을 맺었다.
“왕도로써 백성을 열복(悅服)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전하의 덕에 기꺼이 굴복할 것입니다.
천하 또한 전하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중원축록(中原逐鹿) : 中 가운데 중, 原 근원 원, 逐 쫓을 축, 鹿 사슴 록
중원의 사슴을 쫓는다. 즉 패권을 다툼.
지어지앙(池魚之殃) : 池 못 지, 魚 물고기 어, 之 갈 지, 殃 재앙 앙
연못 속 물고기의 재앙. 즉 재난이 엉뚱한 곳에 미침 / 동의어 -앙급지어(殃及池魚)
천고마비(天高馬肥) : 天 하늘 천, 高 높은 고, 馬 말 마, 肥 살찔 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을 가리킴.
천려일실(千慮一失) : 千 일천 천, 慮 생각할 려, 一 하나 일, 失 잃을 실
천 가지 생각 중에 한 가지쯤은 잘못 생각할 수 있다는 말임.
지혜가 많아도 한 가지 실책이 있다.
한(漢)나라 유방의 군사를 이끌고 한신(韓信)이 조나라로 쳐들어갔을 때
조나라의 성안군은 이좌거의 전략을 듣지않아 결전 끝에 패했다.
한신은 이좌거의 지덕을 높이 사서 상금 천냥을 걸어 그를 포로로 잡아왔고
극진하게 대접한 후 천하통일의 마지막 장애물인 연나라와 제나라를
격파할 계책을 물었다. 패배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다고 사양하던
그는 거듭되는 한신의 요청에 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천 가지 생각에 한 가지 실수가 있는데,
어리석은 자라도 천가지 생각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겠지요.'
이어서 그는 군사들을 먼저 쉬게 하라고 충고하였고
그후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하였다.
천의무봉(天衣無縫) : 天 하늘 천, 衣 옷 의, 無 없을 무, 縫 꿰멜 봉
하늘나라의 옷에는 꿰맨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바늘과 실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훌륭한 것을 가리킨다.
철면피(鐵面皮) : 鐵 쇠 철, 面 낯 면, 皮 가죽 피
마치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수치를 모르는 사람
청출어람(靑出於藍) : 靑 푸를 청, 出 날 출, 於 어조사 어, 藍 쪽 람
쪽빛(남색)에서 나온 푸른빛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 보다더 뛰어남을 비유한 말이다.
[준말] 출람(出藍).
[동의어] 출람지예(出藍之譽), 출람지재(出藍之才), 후생각고(後生角高), 출람지영예(出藍之榮譽).
[출전]《荀子》〈勸學篇〉
쪽[藍]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말.
이 말은 전국 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靑取之於藍(청취지어람)]
쪽빛보다 더 푸르고 [而靑於藍(이청어람)]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氷水爲之(빙수위지)]
물보다도 더 차다 [而寒於水(이한어수)]
[주]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지해서는 안 되며 청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
주진형(朱震亨)은 서기 1281 년 절강성 무주(婺州) 의오(義烏)에서 태어나 서기 1358 년에 향년 78 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친 원대(元代)의 저명한 의학자였다.
주진형의 집이 의오(義烏) 단계(丹溪)에 있었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단계옹(翁)이라고 존칭했다. 금원 4 대가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학자로써 양음파(養陰派)의 시조이다.
눈 주위에 대륜(大輪)과 소륜(小輪)이 있었으므로 그의 용모는 괴이하게 생겼다. 그러나 풍채가 늠름하고 활기있는 표정이었다. 그의 의술은 고명하여 절강성과 강소성 일대에 이름을 떨쳤으므로 수 많은 제자들이 주진형으로 부터 의술을 배우기 위하여 구름떼 처럼 몰려들었다. 그중 저명한 제자와 사숙자(私淑者)의 수는 33 명이나 되었다.
단계에게 글벗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플때 마다 매차 단계옹을 찾아가 진찰을 받은 후 지어준 약을 한 첩만 복용하기만 하면 병이 잘 나았다.
어느 해 여름 글벗은 복통이 심했으며 설사를 계속하였다. 단계는 글벗을 진맥한 후 예전과 동일하게 약을 한 첩 처방해 주었다. 글벗은 단계가 지어준 약을 달여 복용했지만 병이 호전되지 않아 또 다시 단계가 세 첩을 지어준 약을 복용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주단계가 처방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단계는 이번에 약량을 배가시켜 복용시켰다. 그래도 글벗의 병정은 호전되지 않고 전과 마찬가지였다.
단계의 글벗은 부득이 그 당시 주단계의 수제자인 대사공(戴思恭) 의사의 집을 찾아 갔다.
대사공의 자(字)는 원례(原禮)이며 무주(婺州) 포강현(浦江縣) 사람이다. 대사공은 어려서 아버지 대요(戴垚)를 따라 의오까지 걸어서 주단계의 집에 도착했다. 부자가 모두 주단계의 제자가 되었다. 단계는 대요의 아들 대사공이 보통 아이들 보다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계는 성심성의껏 전력을 다하여 대사공을 가르쳤다. 대사공의 한의학 실력은 날로 증진되어 절강성 주위에 이름을 떨쳤다.
대사공은 자기를 찾아온 노인이 자기 스승 주진형과 절친한 친구 관계라는 것을 진즉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사공은 열성을 다하여 주진형의 글벗을 대접했다. 인사말을 나눈 후 단계의 글벗은 대사공에게 병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사공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선생님의 병은 주진형 노사(老師)께서 보살펴 주시지 않습니까?" 하고 단계의 글벗에게 물었다.
단계의 글벗은 "물론 봤지!" 하고 대사공에게 대답했다.
그래서 대사공은 단계의 글벗의 병정에 대하여 묻고 설태(舌苔)를 관찰하고 정중하게 맥을 짚었다. 그리고 나서 대사공은 주단계의 처방을 분석해 봤다. 그리고 대사공은 "주단계 스승께서 증세에 알맞게 약을 잘 쓰셨습니다. 주단계 스승님의 처방에 뒤이어 석류피(石榴皮) 3 전(錢)을 추가 처방하오니 시험삼아 복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 단계의 글벗에게 설명했다.
단계의 글벗은 대사공이 처방해 준 약을 받아들고 의오에 돌아와 세 첩을 복용하고 나니 질병이 신속하게 깨끗이 나았다.
어느 날 단계의 글벗은 단계를 만나러 갔다. 글벗의 얼굴색은 불그스레하고 정신은 꽤 좋아 보였다. 단계는 이상하게 여겨 글벗에게 정황을 물었다. 그리고 주단계는 글벗이 보여주는 대사공의 처방전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주단계는 "맞다.! 석류피는 고삽(固涩)작용과 살충작용이 있고 사리(瀉痢)를 그치게 해주고 복통을 치료해 주므로 석류피가 빠져서는 않되지!"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주단계는 "청출어람이군!" 라고 말하고 대사공의 의술에 경탄하였다.
청출어람이란?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 寸 마디 촌, 鐵 쇠 철, 殺 죽일 살, 人 사람 인
한 치의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간단한 경구로 어떤 일이나 상대방의 급소를 찔러 당황시키거나 감동시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자(朱子)의 제자 나대경(羅大經)의『학림옥로(鶴林玉露)』는 천(天)·지(地)·인(人),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시어(詩語)를 풀이한 것부터 일화, 전설에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촌철살인이란 말은 지부(地部) 7권 ‘살인수단(殺人手段)’편에 종고(宗?)가 선을 논하며 이르되「비유컨데 "어떤 사람이 한 수레의 무기를 싣고 왔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곧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촌(寸)이란 보통 성인 남자의 손가락 한 개 폭을 말하며, 철(鐵)은 쇠로 만든 무기를 뜻한다. 즉 촌철(寸鐵)이란 한 치도 못되는 무기를 의미하는데, 날카로운 경구(警句)를 비유한 것으로, 상대방의 혀를 찌르는 한마디 말이 수천 마디의 말을 능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 兎 토끼 토, 死 죽을 사, 狗 개 구, 烹 삶을 팽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쓸로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
퇴고(推敲) : 推 밀 퇴, 敲 두드릴 고
밀고 두드린다는 뜻으로, 시문을 지을 때 자구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을 이르는 말.
‘퇴고(推敲)’라는 말 자체부터가 아름다운 일화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아래 문을 두드리네
당(唐) 시대의 시인 가도(賈島)의 서경시다.
위의 한시 승고월하문에서 처음에는 승고(僧敲)가 아니라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이었다. 승퇴월하문이 아무리 읊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밀퇴(推)자 대신으로 생각해낸 것이 두드릴고(敲)자였다.
그런데 승고월하문이라 해 보면 이번엔 다시 ‘퇴’자에 애착이 생긴다.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
정하지 못한 채 하루는 노새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노새위에서도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 에만 열중하다가
그만 경윤(京尹, 부윤(府尹) 같은 벼슬) 행차가 오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 버렸다.
가도는 경윤앞에 끌리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또 미처 비켜서지 못한 이유로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를 변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윤은 이내 파안일소(破顔一笑)하고, 다시 잠깐 생각한 뒤에
“그건 퇴(推)보다 고(敲)가 나으리다.” 하였다.
경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대 문호 한퇴지(韓退之)였다.
서로 이름을 알고 그 자리에서부터 문우가 되었고,
가도가 승퇴월하문을 한퇴지(한유)의 말대로 승고월하문으로 정해버린 것은 물론,
이로부터 후인들이 글 고치는 것을 ‘퇴고’로 일컫게 된 것이다.
推 - 밀 추, 밀 퇴
(재방변- 扌변)
'손'의 모양을 본뜬 글자. 변(邊)으로 쓰일 때는 扌의 자형(字形)으로 되고, 손과 관련(關聯ㆍ關連)된 뜻을 나타냄. 의미(意味) 요소(要素)로 쓰임
획수 : 11 (부수획수:3)
* 추고(推敲)
- “推” 字가 “밀 추” 또는 “밀 퇴”로 읽히는 관계로 “추고” 또는 “퇴고”라 하기도 하는데,
주로 “퇴고”로 쓰이므로 가급적 “추고”라고 하지 않는 게 좋다.
- ‘퇴고(推敲)’의 잘못 읽음.
기타, 아래와 같이 '추고'로 쓰이는 낱말이 많아 혼돈을 일으킬 수 있다.
推考(추고) : ①추측(推測)하여 생각함 ②벼슬아치의 허물을 추문(推問)하여 고찰(考察)함
推古(추고) : 옛 사적을 미루어 생각함
推故(추고) : 거짓으로 핑계함
追告(추고) : 덧붙여 알림. 주로 편지 따위에서 덧붙여 적을 것이 있을 때 쓴다. 추신과 같은 말.
追考(추고) : 지나간 일을 생각함
* 추신[追伸/追申]
[명사] 뒤에 덧붙여 말한다는 뜻으로, 편지의 끝에 더 쓰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 그 앞에 쓰는 말.
파죽지세(破竹之勢) : 破 깨뜨릴 파, 竹 대나무 죽, 之 갈 지, 勢 기세 세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거칠 것 없이 맹렬한 기세를 말한다.
필부지용(匹夫之勇) : 匹 필 필, 夫 지아비 부, 之 갈 지, 勇 날쌜 용
소인이 깊은 생각 없이 혈기만 믿고 대드는 용기. 즉 앞뒤 분별없이 마구 행동하는 것.
호가호위(狐假虎威) : 狐 여우 호, 假 거짓 가, 虎 범 호, 威 위엄 위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어 위세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업고 위세를 부림.
유래 : [전국책]에 이런 우화가 있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깨달은 여우가 호랑이를 향해 외쳤다.
“너 이놈 듣거라 나는 하느님에 의하여 산중의 왕이 되었다. 오늘 네가 나를 해치면 하느님이 네게 벌을 줄 테니 그리 알아라.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내 뒤를 따라오면서 다른 짐승들이 어떻게 하는가 잘 보아라.”
호랑이는 과연 그럴까 하고 여우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갔더니 과연 여우가 말한 그대로 모든 짐승이 질겁을하여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것이 자기를 무서워하여 도망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초나라 왕이 북쪽 나라에서는 초나라 장순을 몹시 두려워한다고 들었으나, 그것은 초나라장순을 두려워 한다기 보다 초나라국력의 강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 好 좋을 호, 事 일 사, 多 많을 다 魔 마귀 마
좋은 일에는 마귀가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방해가 되는 일이 많다는 말임.
호접지몽(胡蝶之夢) : 胡 턱밑살 호, 蝶 나비 접, 之 갈 지, 夢 꿈 몽
나비가 된 꿈이란 뜻으로, 나와 자연이 한 몸이 된 물아일체의 경지.
화룡점정(畵龍點睛) : 畵 그림 화, 龍 용 룡, 點 점 점, 睛 눈동자 정
용을 그릴 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뜻으로,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끝손질을 말한다.
화호유구(畵虎類狗) : 畵 그림 화, 虎 범 호, 類 무리 류, 狗 개 구
호랑이 그림을 그리려다가 실패하여 개를 닮은 그림이 되었다는 뜻으로, 서투른 솜씨고 어려운 일을 하려다가 도리어 잘못되거나 중도에 흐지부지하여 이루지 못하여 웃음거리가 된다는 말.
환골탈태(煥骨奪胎) : 煥 불꽃 환, 骨 뼈 골, 奪 빼앗을 탈, 胎 아이밸 태
뼈를 바꾸고 탈을 바꿔 쓴 다는 뜻으로, 얼굴이나 자태가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거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지은 시나 문장을 본떠서 지었으나 더욱 아름답고 새로운 글이 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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