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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초점] 한·일 종합 경기대책과 WBC모델

도깨비-1 2009. 4. 18. 08:15


[경제초점] 한·일 종합 경기대책과 WBC모델

재작년 긴자에 넘친 한국인, 올해는 명동을 채운 일본인
FTA의 유무에 상관없이 두 시장은 사실상 통합돼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와세대 정치경제학부교수)-2009년 4월 16일

 

   지난 8일, 일본 여당은 15조엔의 재정을 투입하는 대규모 추가경기대책에 합의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너무나 노골적인 선거대책이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실망은 깊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일본 정치가들은 유럽과 미국의 금융위기는 일본에 있어서 '모기가 앉은 정도'의 영향밖에 없다면서 정쟁에만 핏대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선진국 중 최악의 경기 하락과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공포의 부활이었다. 간신히 대책안은 나왔지만, 이 터널의 출구에는 엄청난 세금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쟁을 계속하는 정치권에 대해 국민들은 실망하고 있다. 총액 50조원의 녹색 뉴딜 정책이 발표됐고, 3월말에는 28조9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결정됐지만,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을 보면 이런 정부사업의 효율성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다만, 이런 계획이라 할지라도 일단 실행되는 이상 한국과 일본은 서로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두 나라의 당면 과제는 고용의 유지이며, 금융위기의 제조업으로의 확산 방지, 중소기업·서비스 산업에 대한 지원, 고령화 대책 등 한·일간 대책에는 공통점이 많다. 또 재작년에는 '도쿄 중심부 긴자(銀座)에 넘치던 한국인 관광객'이 이젠 '서울에 넘치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바뀐 것처럼, 자유무역협정(FTA) 유무에 상관없이 두 나라의 시장은 사실상 통합돼 있다. 이 때문에 양국의 경제 연계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안건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은 에너지 소비가 많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에너지 절약형으로 교체할 경우, 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할 경우 정부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이 정책에 발맞춰 한국과 일본의 주요 메이커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고, 관련 제품에 공통 기준을 만들 경우 두 나라 환경기술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중소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양국 환율을 보면 한국 기업들은 충분히 수출경쟁력이 있다.
   또 일본은 의료보험청구의 완전 온라인화, 사회보장 카드의 확충이 필요한데, 주민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이 이 분야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작성을 한국에 아웃소싱하는 등 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추가교부도 결정됐는데, 이미 돗토리(鳥取)현은 아시아나항공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관광객을 유지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이후에도 늘어날 것이다.
   인접국과의 정책협조는 좋은 의미에서의 '외압'을 만든다. 정쟁에 관련 없이, 일단은 정치가들도 정책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번 대책에서 하네다(羽田)공항으로부터 출발하는 유럽노선을 신설했다. 국내공항이 됐던 하네다가 다시 국제화된 것은 일본 국내 세력이 한국과 손을 잡고 강력하게 일을 추진한 덕분이었다. 이 덕분에 한·일의 승객들도, 양국 항공회사도 큰 이익을 얻었다. 한국과의 연계가 없었다면 나리타(成田)공항을 보호하려는 세력 때문에 일본은 규제를 철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산업계는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절감·환경대책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이번 대책으로 관련 산업의 대일수출과 기술획득의 가능성이 커지면 역시 좋은 '압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의 수준은 국민의 책임이며, 정치가들을 비판해도 현상은 금세 바뀌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현실이다. 한 나라 내부에선 움직이지 않는 일도, 외교와 거대한 규모의 시장통합이라는 '외압'이 작용하면 해볼 만한 일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한·일간의 독특한 긴장관계는 좋은 의미의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세계가 놀랄 명승부를 만들어낸 지난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이미 증명한 바 있다. 경기종합대책을 둘러싼 협조는 경제정책의 효율화 경쟁으로서도 가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조선일보 2009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