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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생원도 그날 새하얀 메밀꽃에 취했을까

도깨비-1 2009. 8. 30. 21:40
뉴스: 허생원도 그날 새하얀 메밀꽃에 취했을까
출처: 머니위크 2009.08.30 09:40
출처 : 여행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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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머니위크]민병준의 길따라 멋따라/봉평]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이효석 단편소설 < 메밀꽃 필 무렵 > 중에서)

그토록 무덥던 여름이 뒷모습을 보이며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초가을. 이 무렵이 되면 강원도 평창군 봉평 들판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드러진 새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 메밀꽃 필 무렵 > 무대에서 새하얀 메밀밭을 눈이 시리도록 거닐어보자. 소설 속 주인공처럼.

◆광활한 메밀꽃밭과 물레방아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 메밀꽃 필 무렵 > 의 작가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은 1928년 < 도시와 유령 > 을 발표한 이후 카프(KAPF) 진영으로부터 동반자 작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1936년부터 1940년 사이에 많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 메밀꽃 필 무렵 > 은 1936년 < 조광 > 10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봉평은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봉평장터는 방문객들을 소설 속으로 안내하는 무대장치다. 이런저런 옷감을 파는 드팀전 장돌뱅이를 시작한 지 이십년이나 된 허생원이 우연히 맺었던 옛사랑이 그리워 한번도 빼놓지 않고 들렀던 곳이다. 장터 입구엔 충줏집터 표석이 있다. 이곳은 봉평장을 찾은 장돌뱅이들이 노곤한 육신을 달래기 위해 목젖을 적시고 쉬어가던 곳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충줏집과 수작하던 동이를 후려친 허생원의 한숨소리, 늙은 나귀를 괴롭히던 장터 아이들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흥정천 개울가에 재현한 1930년대 재래장터와 먹거리촌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공간이다. 방문객들은 허생원이나 동이처럼 장터를 거닐면서 장돌뱅이가 되기도 한다. 또 메밀국수를 비롯해 메밀전병, 묵사발, 올챙이국수 등 메밀을 재료로 맛을 낸 온갖 음식과 감자떡, 장터국밥 등을 싼값에 맛볼 수 있다. 봉평 여행은 장날(매월 2ㆍ7일)에 맞춰야 여행의 재미가 곱절로 늘어난다. 소설의 분위기에 좀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효석 흉상이 있는 가산공원을 지나 흥정천 섶다리를 건너면 온통 하얀 메밀꽃밭이다. 소설 속의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바로 그 광경. 흥정천 너머엔 방앗간이 보인다. 달밤에 목욕하려던 허생원이 메밀밭 위로 쏟아지는 하얀 달빛을 피해 들어섰다가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쳐 '무섭고도 기막힌' 하룻밤 인연을 맺은 물레방앗간이다. 사람들은 우연찮은 풋사랑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던 허생원을 상상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방앗간을 기웃거리지만 이 물레방앗간은 근래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물레방앗간 뒤쪽 언덕엔 이효석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결코 길지 않았던 이효석의 일생과 문학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공간으로서 평소에 쓰던 유품들도 전시돼 있다.

◆펑퍼짐한 들판에 자리한 이효석 생가

효석문학관을 살펴봤다면 이제 이효석의 생가를 찾을 차례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가는 문학관에서 1.5km쯤 떨어진 윗마을에 있다. 천천히 걷는다 해도 2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새하얀 메밀밭이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어 걷는 맛이 좋다.

메밀꽃 핀 펑퍼짐한 들판에 덩그마니 서있는 가산 생가는 강원도 산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집이다. 1913년 당시 봉평면장이었던 가산의 부친은 이 집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도회지로 떠났다.

이효석의 생가임을 알려주는 표석만으로 이곳에서 당대 최고 문장가의 흔적을 되짚어 보기란 쉽지 않다. 툇마루에 앉아 어린 효석의 상상력을 키워주던 앞산을 바라본다. 초가을 햇살 쏟아지는 고즈넉한 메밀밭 위로 효석과 허생원의 모습이 겹쳐졌다 사라진다.

소설 속의 허생원은 분명 물레방앗간에서 운명적인 인연을 맺은 성처녀를 메밀꽃 질 무렵 다시 만나 봉평 어디선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원시적 자연을 꿈꾸는 아름다운 작품을 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효석의 말년은 불행했다. 1940년 부인과 어린 자식을 잃은 뒤 실의에 빠져 만주를 유랑하던 효석은 이태 뒤 결핵성 뇌막염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겨우 36세였다.

메밀은 보통 8월 초순에 파종하는데, 꽃이 피는 데까지 보통 한달 정도 걸린다. 메밀밭은 봉평면 전체를 통틀어 약 30만㎡에 이른다. 원래 메밀은 홍수 등으로 농사를 망쳤을 때나 무논 드문 깊은 산골에서 심던 구황작물이다. < 메밀꽃 필 무렵 > 역시 이런 궁핍한 환경에서 탄생한 소설인 것이다.

한편 매년 메밀꽃이 피어나는 9월 초가 되면 봉평에서는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11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엔 9월4일(금)부터 14일(월)까지 열하루 동안 펼쳐진다. 행사 기간 중엔 '이효석문학상 시상'과 '가산문학 심포지엄' 등을 비롯해 문화예술체험, 그리고 민속놀이, 메밀음식마당, 봉숭아물들이기 등의 전통체험을 할 수 있다. 또 < 메밀꽃 필 무렵 > 영화 감상과 이효석과 봉평에 관한 영상물도 상영한다. 올해부터는 문화제 기간 내내 낮 시간대에도 문학관 문학교실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여행정보

●교통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6번 국도(횡성 방향)→6km→봉평 < 수도권 기준 2시간30분 소요 >

●별미

메밀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봉평엔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봉평 장터의 고향막국수(033-336-1211), 현대막국수(033-335-0314) 등은 봉평에서도 유명한 메밀 막국수 전문 식당. 메밀국수 4000원, 메밀비빔국수 5000원, 순메밀국수 6000원. 장터 부근의 미가연(033-335-8805)은 메밀싹비빔밥을 잘 한다. 1인분 6000원.

●숙박

봉평장터에서 가까운 흥정천 상류에 허브나라농원(033-335-2902)이 있다. 허브농원 숲속의 통나무집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주변엔 좋은사람들펜션(033-336-5516), 겨자씨이야기(033-336-3018), 계곡민박(033-336-2881) 등 숙박시설이 많다.

●참조

평창군청 대표전화 033-330-2000, 효석문화제 위원회 전화 033-335-2323~4 www.hyose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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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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