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떼다'의 시치미 바로 이것
옛말에 ‘시치미 뗀다’는 말이 있다. 이는 매사냥에서 비롯된 말이다. ‘시치미’(쇠뿔을 얇게 깎아 만들기도 했다)란 매의 꽁지에 매어 두는 꼬리표 같은 것으로, 여기에는 주소와 봉받이 이름 등을 적어 자신의 매임을 표시했다. 옛날 매사냥이 성행했을 무렵, 간혹 사냥을 나갔다가 매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때 남이 잃어버린 매를 받아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다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하고도 안한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할 때 마치 시치미를 떼어 임자를 모르게 하는 것과 같다 하여 ‘시치미 뗀다’고 하였다. 보통 과거의 매사냥꾼들은 어느 정도 사냥 훈련이 끝난 매에게 매방울과 함께 시치미를 달아주었다.
산진이 매 뒤꽁지에 매방울과 함께 시치미가 붙어 있다.
옛말에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매가 꿩 잡는 데는 ‘도사’라는 얘기다.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매를 훈련시켜 꿩을 잡는데 이용해 왔다. 이런 사람들을 일러 이른바 매사냥꾼이라 불렀는데, 매사냥꾼 가운데서도 가장 경험이 많아 매를 부리면서 사냥을 총지휘하는 사람을 매잡이 또는 봉받이라 불렀다. 보통 매사냥꾼들은 매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데, 그 해에 낳은 햇매는 보라매, 산에서 묵은 놈은 산진이, 손에서 묵으면 수진이(주로 여름에 키운다), 송골매는 날진이라 부른다.
우리에게 알려진 매사냥의 역사는 기원전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세기쯤 중국에서 매사냥을 했다는 기록과 기원전 1세기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매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 매사냥을 즐겼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오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매사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삼국시대 때부터는 매사냥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려 때에는 ‘응방’이라는 관청까지 두어 원나라에 매를 세공으로 바쳤다고 한다. 이 응방은 조선시대까지 매에 대한 송사와 매 훈련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매는 중국에서도 사냥을 잘 하기로 알아주었는데, 특별히 이 매를 ‘해동청’이라 불렀다.
‘해동청’은 우리의 보라매를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으나, 어떤 기록에서는 ‘송골매’로 적고 있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참매와 매를 함께 매사냥에 이용해 왔는데, 이 때문에 해동청을 참매와 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매사냥은 일제시대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성행하였다. 일제시대 때만 해도 매사냥꾼의 숫자가 1천여 명이 넘었다고 하니, 매사냥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매사냥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어울려 하는 집단 놀이나 다름없다.
하늘을 날고 있는 야생의 매.
우선 가장 경험이 많은 봉받이(수왈치, 매받이로 불리기도 한다)가 매를 잡고 있다가 꿩이나 토끼를 발견하면 “매 나간다” 하고 고함을 지르며 끈을 풀어준다. 매는 영리한 짐승이어서 봉받이가 “애기야 꿩 나간다” 하면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러면 같이 왔던 ‘배 보는 사람’(망 보는 사람, ‘매꾼’으로 불리기도 한다)이 꿩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보고 있다가 꿩털이꾼에게 알려 주면 꿩털이꾼들(예닐곱 명)이 매가 날아가는 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일단 매는 사냥감을 먹어버리면 날아가기 때문에 꿩털이꾼은 최대한 빨리 먹이로부터 매를 낚아채야 한다. 매사냥을 할 때면 사흘째가 가장 되다고 하며, 사흘이 넘어가면 그 때는 탄력이 붙어서 그리 힘들지 않다고 한다.
보통 매사냥은 매가 털갈이를 끝내는 12월부터 시작한다. 매사냥꾼 인원은 최소한 5명이 있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7~8명이 함께 다닌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 얼마 뒤 전쟁이 나고 살기가 바빠지면서 매사냥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산림보호 정책으로 나무 연료가 석탄과 석유로 대체된 것도 매사냥을 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다. 산에 나무가 너무 많으면 매사냥꾼이 맘놓고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냥총이 등장한 것도 굳이 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결정적인 요인은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밀렵으로 매의 씨알이 귀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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