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동서남북] 대통령의 앞치마

도깨비-1 2009. 6. 10. 15:03


[동서남북] 대통령의 앞치마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2009년 6월 10일
 

   지난주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과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특별정상회의의 오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앞치마 두르고 꼬치 굽는 모습이 일제히 보도됐다. '만찬 외교' '비즈니스 런치'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썩 괜찮은 이벤트였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게도 느껴졌다.
   정상회의 직후라 캐주얼 차림으로 바꿔 입을 상황이 아니었어도, 훨씬 자연스럽게 보일 방법은 있었다. 즉석에서 양복저고리를 벗고, 넥타이 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제주도 바닷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앞치마 차림으로 꼬치를 굽는 여유와 센스를 발휘했더라면 한층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사진 이야기를 꺼낸 건, 취임 이후 지난 1년 3개월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양복저고리 위에 앞치마 두른 듯, 뭔가 노력하는데 소통이 부족하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양복을 고집하는 답답함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에서다. 초기 내각 인선 때부터 두루 인재를 발탁하지 않고 늘 입던 양복만 고집했고, '한반도 대운하' 대신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늘 비슷비슷한 양복 차림이었으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나 한나라당 내분 때도 속 시원히 양복저고리 벗어 던지고 소통하질 못했다.
   재임 중에는 논란도, 비판도 많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 '서민 대통령'으로 불리며 수백만 국민이 조문하고 눈물짓고, 그 와중에 이 대통령 지지율까지 덩달아 내려앉는 걸 보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게 된다.
   다섯살 차이지만 함께 1940년대생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노무현(1946년생) 전 대통령과 이명박(1941년생) 대통령은 정치 민주화, 경제 성장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양대 키워드를 각각 압축하는 인물들이다. 전혀 다른 삶인 듯해도, 가난이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남다른 의지로 인생을 개척한 자수성가형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익히 알려졌듯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이 대통령은 가난한 목부(牧夫)의 아들로 태어나, 막노동을 하면서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정치에 오랜 족적을 남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거치고 난 후, 국민이 연이어 선택한 대통령이 자수성가형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희망과 변화, 그리고 역경을 뚫고 인생을 개척한 것처럼 국정 운영에서도 추진력과 역동성을 발휘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입지전적 인생의 두 대통령 모두 권력의 정상에 올라가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이는 데 미흡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사형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 부족했고, 이 대통령은 실무형 경영인의 틀에 갇혀 포용의 정치인 모습을 발휘하는 데 역부족이다.
   25년 전, 1984년 1월의 조선일보에는 '재계의 인재들'이라는 연재기사가 실렸다. 후진적 기업문화 속에서도 능력 하나로 성공한 경영인을 소개하는 기획이었는데, 1~3회가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에게 할애됐다. 당시 보도된 주위의 평가는 이랬다. "그룹 총수의 의견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이견(異見)을 제시하는 극소수 최고경영자의 한 사람" "인사 스타일만 해도 능력은 있으나 소외되는 사원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요직에 중용하는 사람" "지연·학연에 대해 얘기를 듣거나 인사에 관련시키는 데 대해서는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
   1년 반 전 530여만 표라는 역대 최대의 표 차로 당선될 때, 국민이 이 대통령에게 기대한 리더십도 그것이었다.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며 온갖 위기를 돌파한 카리스마였다. 부초처럼 흔들리는 민심을 서운해하기에 앞서, 앞치마 두르면서 양복저고리 벗을 만큼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는 지금의 리더십이, 그런 기대치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이 대통령 스스로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

 


[최보식 칼럼] 廣場 쟁탈전

"국민은 현 정권의 정면돌파를 보고 싶다
 왜 미련을 못 버리는가… '폭풍'이 몰려올 때까지
 머뭇거리기만 한다면, 그렇게 눈치만 본다면…"


 

   "민주당이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했지만, 이미 다른 단체에서 집회신고를 해놓아서…."
   머리를 염색한 서울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입을 뗐다. 피곤한 날의 연속인 그에게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오늘 서울광장의 '합법적' 사용자는 자유총연맹이다. '승용차 요일제 자율참여 캠페인' 집회신고를 미리 해놓은 것이다. 이 단체의 총재는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대통령의 중학교 4년 후배다. 물론 행사는 실제로 열리진 않는다.
   서울광장을 내주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 교수들은 릴레이로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가와 각종 사회단체·민노총·정치권으로 사발통문을 돌려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다. 작년 촛불시위의 '영광' 재현을 위해 이날을 벼르고 있었다. 전문시위꾼, 하늘이 두 쪽 나도 이 정권과 같이 못 가겠다는 세력, 이들의 '선동'에 넘어간 다수들이 모일 것이다. 이들이 도심을 제 안방인 양 날뛰도록 정권이 허락할 리 없다.
   그러니 자유총연맹의 '유령 행사'는 기발해 보인다. 그런데 효과가 있을까. 광장 사용을 불허해서, 이들이 고분고분 시위를 그만둘 리 없다. 어느 날보다 서울 도심은 더 '발작적인' 혼란에 빠질 것이다. 무엇보다 광장을 지켜보는 '관중'의 반응이다. 현 정권의 고충을 읽고 광장 선점 기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궁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광장에 32대 경찰버스로 차벽(車壁)을 쳤을 때 "민중의 지팡이는 이제 텅 빈 광장까지 보호하는군" 식의 조롱과 비슷하다.
   어느 정권이나 적대 세력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력은 예상되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 진정 위험한 것은 친구들 및 심정적 방관자들의 변심이다. 정권이 동력을 잃는 것은 이들의 애정이 식고 등을 돌릴 때다. 요즘 그런 상황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현 정권을 찍은 집사람도 냉정해졌고, 친(親)대기업 정책의 '혜택'을 받은 대기업 임원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친구인 고위공무원조차 "대통령은 아직 기업인 같다"고 사석에서 말한다.
   정말 대통령은 대기업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밤낮없이 일하는 중이다. 외국 정상들에게 직접 구운 고기를 접시에 나눠주고 'MB' 실전영어로 대화도 한다.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과 투자를 유치해낸다. 미국 등 우방과도 사이가 좋다.
   하지만 그는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줄은 모른다.
   "광장에서 집회를 하라. 대통령을 성토하고 정권을 비판할 자유가 있다. 다만 차도로 나오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불법에 대해서는 법대로 하겠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 내 임기 안에 법질서만은 꼭 바로 세우겠다. 국민도 도와줘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광장 쟁탈전이 아니라 떠나는 민심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데 있다. 그런 그가 지도자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정위(正位)'를 잊고, 늘 잔기술을 찾는 격이다.
   작년 촛불시위 때 사람들은 용기 있게 광장에 나서는 그를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 뒷산에서'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진 것을 바라보고, 함성과 함께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으며 지냈다. 그래서 임기 첫해를 그냥 보냈다. 이런 얘길 하면 청와대 측근들은 수치에 떨지만, 그때가 교훈으로 남은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국론이 팽팽하게 갈리는 정책 현안에서 대통령이 앞에 나서 국민을 설득하거나 정면 돌파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이라는 비판을 그렇게 받으면서도, 실상을 보면 국정의 핵심 목표 어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국가의 앞날이 걸린 것처럼 요란 떨었던 미디어법도 여론의 반발에 놀라 슬며시 있는 듯 없는 듯해졌다. 아예 안 꺼냈으면 소모적인 분열은 없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도 참여한다고 했다가, 반발하니 안 한다, 그러다가 다시 한다는 식이다. 개성공단 존폐도 열었다 닫았다 한다.
   22조원을 쏟아 붓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운명은 어떨까. 시중에는 '대운하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린 대통령이 '할까 말까' 여론의 눈치를 보는 걸로 의심한다. 그는 "대운하를 해야 한다"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 정면 돌파한 적도 없고, "결코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며 서둘러 불을 끄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갈등과 분란이 폭풍으로 몰려올 때까지 그는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정권이란 늘 상황과 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즈니스 하듯 그때그때 정치적 '손익' 계산만 따져 옮겨가면, 이쪽은 돌아서고 저쪽은 비웃는다. 오늘 또 한번 그런 날을 맞을 것이다. ▣  선임기자/ 2009년 6월 10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