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시론] 외국선 멋진 건물 짓고 모국선 추한 도시 양산

도깨비-1 2009. 2. 7. 09:23

 

[시론] 어글리 코리아, 어글리 코리안
외국선 멋진 건물 짓고 모국선 추한 도시 양산
번역=박승혁 기자 patrick@chosun.com

 

▲ 앤드루 새먼·영국 더 타임스지 서울특파원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을 기억하는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식당에 김치를 숨겨서 들어가는 등 외국에 나가서 갖은 추태를 부리던 이들 말이다. 다행히도 해외에서 그런 현상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동안 '어글리 코리아'가 판을 칠 것이다.

옛날 한국의 수묵화를 한번 보자.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작은 외딴집 한 채가 숲 속에 고즈넉이 서 있다. 용이 구름 사이를 헤엄치고, 까치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며 호랑이가 대나무 숲 사이를 내달린다. 전면에는 강이 곡선을 그리며 산비탈을 끼고 흐른다. 그리고 작가의 서명은 우아한 서체로 물결 틈에 들어가 있다.

이 광경은 오늘날 어떻게 그려질까? 산봉우리와 외딴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지금은 건물들의 숲에 혼란스럽게 둘러싸여 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고 비둘기는 비비 꼬인 전선 위에 앉아 있으며 도둑고양이가 골목 사이를 달린다. 강은 이제 폐수의 도랑에 지나지 않으며 산비탈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사진에 작가의 서명은 없다. 다만 여러 색깔, 여러 글꼴의 한글 광고판이 여기저기 뒤범벅돼 있을 뿐이다.

참 추하다. 도심 중심부만이 이렇게 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들쭉날쭉한 산봉우리들과 드넓은 골짜기, 조각보 같은 논밭은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풍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휴식을 찾기 위해 도심을 벗어난다 해도, 당신이 사는 박스 모양 아파트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판에 박인 콘도들만이 당신을 맞이할 뿐이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논밭들 사이 번쩍거리는 형광빛 파란색, 주황색 지붕들이다.

꼭 이래야 할 이유는 없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이태리의 토스카나, 영국의 글로스터셔 등지에서는 그 지역의 재료로 지은 예쁜 마을들이 자연풍경과 함께 어긋남 없는 조화를 이룬다. 이들 지역 전통 건축양식의 단아한 곡선과 절제된 색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국인의 '디자인 DNA'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인들은 세계 곳곳에 굉장히 멋진 건물들을 지으면서 유독 모국에서만 혐오스러운 대량생산품을 양산한다.

한때 값싸고 질 낮은 제품으로만 이름을 알려야 했던 한국의 제조업자들은 지난 10년간 품질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 건축에서는 그러한 발전이 보이질 않는다. 왜 한국의 건축가들은 가치를 높이지 않는 것일까? 색채·모양·크기 등 디자인적 측면에서 한국 건축가들의 국내 작품은 끔찍할 정도다. 부동산 투기가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더 매력적인 건물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그리고 왜 지역 정부는 구획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재개발을 허가해 이런 미적(美的)인 참사가 지속되도록 놓아둘까.

'어글리 코리아' 얘긴 이제 지겹다. 요즘엔 다른 종류의 '어글리 코리안'이 나타났다. 최근 용산에서도 봤다. 김남훈 경사를 죽음으로 내몬 폭력시위대, 또 재개발 철거업자들이 고용한 폭력 용역들이다. 한국의 재개발사업은 사실 도덕적으로도, 그리고 미적으로도 매력 없다. 재개발사업은 한국의 근대적 발전과 발을 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1980년대의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인들은 고급 식품·의류·생필품 등에 엄청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 그런데 그 볼썽사나운 집들에마저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르며 구입 경쟁을 하는 데 거리낌 없다니 알 수 없다.

 

입력 : 2009.02.06 21:56 / 수정 : 2009.02.06 23:00   [조선일보]

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