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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처님 오신 날 특집-가볼만한 ‘절집 6選’>무거운 마음 비우고 쉬었다

도깨비-1 2008. 5. 11. 22:29
출처 :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문화일보 원글보기
메모 : 불교신도에게는 당연히 그렇겠지만, 비신도들에게도 절은 '마음을 닦는 곳'으로 다가온다. 불교신도들에게 절집은 수행의 공간이자 믿음을 되돌아보는 공간이라면, 비신도들은 오래 묵은 절집에서는 건너온 시간을, 호젓한 절집에서는 무위의 마음을, 아름다운 경관을 내다볼 수 있는 절집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관룡사 용선대>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찾아가 마음을 닦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절집 여섯곳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절집들은 무수하지만 익히 알려져 사람들로 붐비는 절집들은 빼고, 되도록 덜 알려진 작은 절집이나 암자를 택했다.

글·사진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고요한 산길 따라 20분… 자연을 마신다

오래된 것들의 묵은 맛이 이렇지 싶다. 세월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절. 그곳이 바로 전북 완주의 화암사다. 이즈음 대부분의 절들이 일주문 앞까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법당 앞까지도 길을 놓아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불명산 중턱에 앉아있는 화암사에 당도하려면 참나무숲과 계곡을 따라 20분쯤 어둑어둑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500여년전 화암사 중창비에 씌어진 '바위벼랑의 허리에 너비 한 자 정도의 가느다란 길이 있어 그 벼랑을 타고 들어가면 절에 이른다'는 글 그대로다.

 화암사 우화루는 단청의 화장기가 다 씻겨진 정갈한 모습으로 서있다. 아니 우화루뿐만 아니고 절집의 모든 건물이 오랜 세월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문지방을 둥글려 놓은 우화루 옆의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ㅁ자형 마당에 적묵당과 극락전, 불명당이 둘러서있다. 우화루와 적묵당은 지붕이 맞닿았고, 적묵당 지붕은 다시 극락전의 풍판 안으로 들었다. 화암사에서 가장 눈길을 붙잡는 것이 바로 극락전. 서까래에 널판(하앙)을 넣어서 처마를 길게 뽑아 세운 '하앙식' 구조다. 이런 구조의 건축물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극락전 안의 불상 위에 깎아 세운 화려한 닫집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곳은 여럿이 왁자지껄 찾아가는 절집이 아니라, 스스로 고요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고즈넉한 봄날의 오후에 산길을 걸어 화암사에 들어서 불명당 툇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리라.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에서 '화암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고 썼다.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다'는 시인은 화암사를 몰래 감추어두고 사랑하겠다는 요량이었으리라.

  모과나무 기둥에 기대어 세속 때 벗는다

남도에서 손꼽히는 이름난 절집 전남 구례의 화엄사. 그러나 화엄사의 부속 암자인 구층암은 화엄사에서 보통 걸음으로 불과 5분여 거리지만 꼭꼭 숨겨져 있다. 절집을 찾는 사람들이 국보가 즐비한 웅장한 절집 화엄사만을 둘러보기도 바쁜 탓이리라. 그러나 구층암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화엄사의 매력을 절반쯤은 보지 못한 것이나 진배없다.

자연과 닮아있는 절집인 구층암의 백미는 바로 요사채의 기둥이다. 이리저리 울퉁불퉁 뒤틀며 자란 아름드리 모과나무 세그루를 썩 베어다가 그대로 기둥을 삼았다. 요사채 앞마당에는 그 기둥을 닮은 늙은 모과나무 두그루가 성성하게 살아있다. 둥글게 잘 깎아낸 소나무 기둥 틈에 투박한 모과나무를 손보지 않고 기둥으로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죽어서 요사채를 받치는 기둥이 된 세그루의 모과나무와 마당 앞에서 하늘을 받치고 선 살아있는 늙은 모과나무 두그루. 아마도 '살아있음'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을까.

구층암 천불전의 처마 아래 나무로 투박하게 깎아 올린 거북에 올라 탄 토끼상도 눈길을 끈다. 마치 민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휘어 자란 모과나무를 기둥 삼거나 토끼와 거북 조각을 법당의 처마에 올리는 파격은, 구층암이 수도자가 칩거하는 암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지 싶다. 수행자들만의 공간에서 세속적인 미의 기준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을 터. 그래서 구층암을 지은 대목은 스스로 불법을 닦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암자를 세웠으리라.

  극락세계 안내하는 '반야용선' 찾아볼까

경남 창녕 화왕산 기슭의 관룡사를 찾아가는 까닭은 절집보다는 용선대의 석불을 보러 가는 여정이다.

원효대사가 불기운이 강한 화왕산 꼭대기의 연못에 살고 있던 아홉마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용을 보다(觀龍)'는 이름을 붙였다는 절집에서는 독특한 기운이 느껴진다. 범종각의 북을 받치고 선 목조각 해태의 모습도 그렇고, 지붕을 크게 얹은 약사전의 모습도 범상치 않다.

관룡사의 돌확에 담긴 시원하고 단 물에 목을 축이고 20분쯤 숲길을 걸으면 용선대를 만난다. 법화신앙에서는 고통에 빠진 중생을 극락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는 상상 속의 배를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부른다. 그 배가 바로 용선대다. 화왕산 중턱에 허공으로 불쑥 내민 거대한 바위인 용선대는 뱃머리를 닮아있다. 그 뱃머리 앞에 석불이 앉아서 이끌고 있다. 용선대 석불의 난간에 기대서 수십길 아래로 겹겹이 어깨를 끼고 늘어선 산등성이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본다. 저 아래 세속마을의 번잡스러움은 멀다.

용선대에서는 석불좌상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도 좋지만, 그보다 용선대에서 좀 떨어진 뒤쪽의 높은 바위에 올라 멀찌감치서 용선대를 아래로 바라보는 풍경이 훨씬 더 좋다. 이쪽에서 내려보면 바위와 석불 그리고 그 앞에 손을 모은 사람들과 산아래 마을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고통의 세상을 건너 극락세계로 향한다는 '반야용선'의 배 모양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그곳에서 석불 앞에 간절하게 몸을 낮추고 손을 모은 신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다리 하나하나 건너며 욕심을 버리세요

전남 곡성 동리산 자락의 태안사는 신라시대의 고찰이다. 인근의 송광사나 선암사, 화엄사에 가려 아는 이는 적지만, 태안사는 한때 이들 세곳의 대찰을 모두 말사로 거느렸던 대찰 중의 대찰이었다. 고즈넉한 태안사는 신도들이나 방문객들을 위한 절집이라기보다는 불법을 닦으며 수도에 정진하는 스님들의 것에 더 가깝다.

태안사로 드는 유순한 숲길에는 유독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많다.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돌아가라는 '귀래교(歸來橋)', 마음을 씻으라는 '정심교(淨心橋)',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지혜를 얻으라는 '반야교(般若橋)',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루는 '해탈교(解脫橋)'. 하나 하나 다리를 건널 때마다 다리의 이름을 되뇌며 내 안에 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 다섯번째 다리가 '능파각(凌波閣)'이다. 미련도 욕심도 없이 가볍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를 '능파'라고 한단다.

태안사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누구든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인 배알문이다. 나를 낮추지 않으면 들어설 수 없는 문. 혜철의 법신을 모신 부도탑으로 오르는 계단 끝에 그 문이 서있다. 낮은 자리에 서서 고되고 천한 일을 내가 하는 그런 마음을 가르치는 문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문은 몇해 전에 말끔하게 정돈돼 정취는 예전만 못하지만, 나를 낮추는 하심(下心)을 가르치는 뜻이야 달라졌을까.

지리산 병풍을 펼쳐놓은 듯 한눈에 쏙

주능선만 45㎞에 달하는 거대한 지리산 자락에는 수많은 절집과 암자들이 있다. 그 중 이름난 절들만 하나씩 헤어보아도 두손으로 모자랄 정도다. 그 지리산의 거대함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절이 바로 경남 함양의 금대암이다. 금(金)이란 불가에서 부처를 뜻하고, 대(臺)는 부처가 앉는 자리를 말한다. 그러니 금대암이란 '부처가 앉는 자리'에 들어선 암자인 셈이다.

해발 800m 남짓한 금대암 앞의 벼랑에 서면 지리산의 북사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을 조망하는 단연 최고의 장소로 꼽힐 만하다. 천왕봉과 중봉, 하봉, 제석봉, 촛대봉 등 해발 1800m 안팎의 봉우리들은 열병식을 하듯 늘어서있다. 지리산의 거대함은 그 안에 들었을 때보다, 오히려 이렇듯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더 압도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금대암에서는 지리산의 전경 말고도 볼거리가 몇가지 더 있다. 첫번째가 암자 앞에 있는 푸른 대나무밭 사이로 우람한 전나무들. 수령 500년으로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키도 크다. 전나무는 보통 25m 내외로 자란다는데, 금대암의 전나무는 40m에 달하니, 보통 전나무의 2배쯤 되는 셈이다. 금대암에서 내려서는 길에서는 지리산 자락의 삼정산 능선의 도마리에 조성된 다랑논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즈음 모내기를 앞두고 찰랑찰랑 물을 받아놓은 다랑논의 모습은, 이것만으로도 금대암을 찾는 사람이 있을 만큼 환상적이다.

400년 창호문살서 극락세상을 엿본다

경북 영주시 순흥의 소백산 자락에 들어선 성혈사는 가파른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야 닿는 초라하고 자그마한 절집이다. 시멘트 포장길은 좁고, 경사가 급하다. 승용차로 못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차가 힘겨워 헐떡거릴 정도다. 이런 험한 길을 올라 성혈사를 찾아가는 것은 나한전 나무문살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문살을 갖기로는 변산의 내소사가 첫손에 꼽히지만, 나무문살의 현란한 아름다움은 이곳 성혈사 나한전을 당해낼 수 없다.

부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시는 나한전 정면의 세칸, 여섯쪽 창호문에는 나무로 깎아놓은 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다. 채색은 바랬지만 정교한 문살의 새김은 400년 가까운 세월을 성큼 뛰어넘는다. 특히 가운데 칸 두쪽의 문에는 연꽃과 연잎, 연못에 모여든 여러 동물을 나무판에 투각으로 정교하게 새겨놓았다. 금시라도 튀어나올 듯 정교하게 새겨진 연초며 백로, 연잎 아래의 개구리와 게, 물고기…. 거기다가 두갈래로 묶어올린 머리를 가진 동자가 연잎으로 배를 삼고 연꽃 봉오리를 노 삼아서 놀고 있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감탄이 터진다.

도로가 놓인 지금도 찾는 이가 없는 절집이니 예전에는 인적조차 드물었을 터. 오랜 세월로 둥글어진 문살을 어루만지면 소백산 기슭의 절집에서 정성을 다해 문살을 깎아냈을 이름 모를 장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문살에 새겨넣은 새와 동물들이 노니는 모습을 극락세상이라고 믿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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