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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박함 부추기는 '그놈' 신드롬

도깨비-1 2007. 6. 15. 18:57
뉴스: 천박함 부추기는 '그놈' 신드롬
출처: 중앙일보 2007.06.12 04:37
출처 : 사회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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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중앙일보 천인성.권호] #1. '그놈은 멋있었다'(2001년).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본명 이윤세.22.여)를 단번에 스타로 만든 인터넷 소설이다. 가벼운 터치와 '방가(반갑다)',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 등 인터넷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파격을 선보여 네티즌들을 열광하게 했다. 귀여니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고 성균관대 특별전형에 합격했다. 여기서 그놈은 애정이 담긴 표현이 됐다.

#2.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그놈 목소리'. 1991년 발생한 이형호군 유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유괴범의 목소리를 '그놈'이라 지칭하며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놈은 부모의 끔찍한 절규를 외면하는 차가운 범죄자를 뜻한다.

'그놈'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듣는 이에게 가까이 있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남자를 비속하게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라고 정의한다. 그런 비속어(卑俗語)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소설 및 영화 제목에서 노랫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노무현 대통령마저 국가의 기본 구조와 질서를 규정한 헌법을 "그놈"이라고 깎아내렸다. 노 대통령은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에 참석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대운하 공약을 비판하다 "나도 토론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각종 장르에 '그놈' 등장=소설에서 '그놈'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놈은 멋있었다' 이후 '그놈과 나' '나는 그놈의 전부였다' '드럽게 섹시한 그놈'까지. '그놈'이 주인공이 된 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대부분은 10대 여학생을 타깃으로 연애를 가볍게 다룬 이른바 하이틴 소설이다. 이들 소설에서 그놈은 비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가져야 할, 내가 좋아하는, 그러나 쉽지 않은 상대'를 일컫는 말로 상징된다. 심지어 '그놈의 부엌에서 찾은 건강 밥상 120가지'라는 제목의 요리책도 등장했다.

책뿐 아니다. '그놈, 그년을 만나다' '그놈은 없고 그녀는 갔다' '그놈이 다 그놈'라는 제목의 연극도 나왔다. 인기 여가수 김현정은 '그놈의 결혼식'이라는 노래를 내놨다.

◆"잘못된 세태 반영"='그놈 현상'이 언어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대 장효현(국문과) 교수는 "말에는 '격(格)'이 있는데 상대방을 비하하는 '놈'이라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인다는 것은 그만큼 언어 사용 문화가 천박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언어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층이 너무 쉽게 놈이란 단어를 쓰는 건 유감"이라 덧붙였다.

사회적으로 천박함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대 임현진(사회학) 사회대학장은 "사람이나 사물에 품격을 부여하지 않는 현상"이라며 "말이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는 거울이라 봤을 때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사회와 개인의 품격과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탈권위'라는 미명 아래 지켜야 할 권위를 경시하는 잘못된 세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한양대 정진곤(교육학) 사회교육원장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권위마저 무너진 사회상을 반영한다"며 "타파해야 할 권위주의와 지켜야 할 권위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일영(정외과) 교수는 "노 대통령은 시중의 저급한 언어를 여과 없이 사용해 지지자들을 규합해 왔다"며 "'그놈의 헌법' 발언도 그런 개인의 캐릭터와 화술 속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천인성.권호 기자 guchi@joongang.co.kr

◆그놈='그 아이'.남자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작가 박영한은 소설 '머나먼 쏭바강'에서 "네 사촌 오빤지 뭔지 하는 '그놈' 때문에 우리 집 하숙생들도 서에 불려갔다 왔다"고 적었다. '그놈 가져다가 무엇에 쓰려고'라는 말처럼 '그것'을 속되게 표현하는 경우에도 쓰인다('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천인성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chun4p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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