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감동뉴스
글쓴이 : 조선일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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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가 함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뒷면에 적힌 두 문장에 강필성(35)씨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네 딸은 잠들어 있었다. 7일 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3층 단독주택의 옥탑방. 강씨는 아이들 책상 위에 놓인 카네이션 선물을 우연히 봤다. 딸들을 두고 집을 떠나 방황했던 지난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빠의 방황
2002년 8월의 어느 날. 강씨는 소주 15병을 마시고, 부산에 있는 처갓집 현관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불이 번지진 않았지만, 방화 죄로 징역 2년 형에 벌금 250만원을 선고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집사람이 없었어요. 생후 1개월 된 아기까지 데리고 나갔더군요.” 컴퓨터 교육프로그램을 파는 사업은 부도가 났다. 8000만원 정도의 빚이 쌓이자, 강씨는 절망에 빠져 매일 술을 마셨고, 견디지 못한 아내는 딸 수빈(가명)이를 업고 가출했다.
감옥에서 그는 타일 작업을 배웠다. 출감해서 이 일로 다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씨에겐 수빈이 외에 딸 세 명이 더 있었다. 첫 번째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세 딸 수진(가명)·수민(가명)·수연(가명)은 부산 처갓집에서 키웠다. 감옥에서 하루 8시간씩 타일 작업을 하면서 강씨는 네 딸의 얼굴을 매일 떠올렸다.
“다들 어릴 때 헤어져서, 얼굴이 희미했어요. 딸들 얼굴조차 선명하게 그리지 못했죠. 감옥에서 나가면 아이들부터 만나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감옥에서 사고로 다리 관절을 다쳐 일을 하기 힘들어졌다. 2004년 3월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출감한 그는 다시 소주를 사서 입에 부었다. 거리에서 잠들고, 눈을 떴다. 며칠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다시 딸 생각이 났어요. 특히, 막내 수빈이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때부터 강씨의 ‘딸 찾기’가 시작됐다.
수소문 끝에 서울 왕십리의 한 영아원에 막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노숙자의 몰골로 아이를 만났다. 당시 세 살이던 수빈이는 낯선 아빠의 모습에 놀라 울기만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애 훔쳐 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수빈이와 보름을 함께 지냈다. 헤어질 날이 다가오자, 비로소 수빈이가 아빠를 향해 웃었다. 가슴이 저렸다. “부끄러웠어요. 잠시나마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외국에 입양 보낼까 고민도 했으니까요. 결국 ‘내가 키워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그 무렵 부산에서 연락이 왔다. 수진(현재 14세), 수민(11), 수연(8)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보호시설로 보내겠다는 외갓집의 전화였다. 곧장 달려가 세 아이를 데려왔다. 수빈(현재 5세)이도 영아원에서 찾아왔다. 네 아이의 손을 잡고 강씨는 서울 상도동 부모님 집으로 갔다. 2005년 말엔 옥탑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기 시작했다.
◆다시 모인 아빠와 네 딸
강씨는 술을 끊었다. 소주 생각이 날 때면 지갑에 넣어둔 아이들 사진을 본다.
그는 전기용접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정수기능대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학교로 보내면, 곧바로 정수기능대학에 가서 오후 4시까지 강의를 듣는다. 실습훈련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나면 오후 10시. 아이들의 숙제를 확인한 후 11시 무렵에 잠든다. “우리 딸들은 다 재주가 많아요. 수진이는 나중에 맛있는 빵을 만드는 ‘파티쉐’가 되고 싶대요. 수민이는 개그맨이 꿈이고요. 수연이는 머리가 좋아서 수학은 무조건 100점이고, 수빈이는 키가 커서 모델을 시키면 좋을 것 같고….” 아이들은 애교가 부쩍 늘고, 학교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셋째 수연이는 “아빠랑 있으면 가만 있어도 웃음이 나요. 아빠랑 같이 살기 전엔 잘 안 웃었는데, 요즘은 매일 웃어요”라고 말했다. 둘째 수민이와 첫째 수진이는 어버이날 선물로 과일꼬치와 주먹밥, 샌드위치를 밤새 만들었다.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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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엄마, 가족을 버린 아빠, 이혼한 독신자들, 버려진 아기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경기침체로 삶이 팍팍해지면서 가족 해체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혼자만 사는 1인 가족이 317만 가구(2005년 기준)를 넘어섰다. 다섯 집당 한 집꼴로 독신가구인 셈이다. 또 하루 평균 320여 쌍의 부부가 갈라서고, 연간 2만여 명이 넘는 기러기 아빠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찢어졌던 가족들이 “우린 한 식구”라며 다시 뭉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삶의 소중한 가치가 가족이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다시 뭉친’ 다섯 가족의 스토리를 연재한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가 함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뒷면에 적힌 두 문장에 강필성(35)씨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네 딸은 잠들어 있었다. 7일 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3층 단독주택의 옥탑방. 강씨는 아이들 책상 위에 놓인 카네이션 선물을 우연히 봤다. 딸들을 두고 집을 떠나 방황했던 지난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빠의 방황
2002년 8월의 어느 날. 강씨는 소주 15병을 마시고, 부산에 있는 처갓집 현관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불이 번지진 않았지만, 방화 죄로 징역 2년 형에 벌금 250만원을 선고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집사람이 없었어요. 생후 1개월 된 아기까지 데리고 나갔더군요.” 컴퓨터 교육프로그램을 파는 사업은 부도가 났다. 8000만원 정도의 빚이 쌓이자, 강씨는 절망에 빠져 매일 술을 마셨고, 견디지 못한 아내는 딸 수빈(가명)이를 업고 가출했다.
감옥에서 그는 타일 작업을 배웠다. 출감해서 이 일로 다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씨에겐 수빈이 외에 딸 세 명이 더 있었다. 첫 번째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세 딸 수진(가명)·수민(가명)·수연(가명)은 부산 처갓집에서 키웠다. 감옥에서 하루 8시간씩 타일 작업을 하면서 강씨는 네 딸의 얼굴을 매일 떠올렸다.
“다들 어릴 때 헤어져서, 얼굴이 희미했어요. 딸들 얼굴조차 선명하게 그리지 못했죠. 감옥에서 나가면 아이들부터 만나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감옥에서 사고로 다리 관절을 다쳐 일을 하기 힘들어졌다. 2004년 3월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출감한 그는 다시 소주를 사서 입에 부었다. 거리에서 잠들고, 눈을 떴다. 며칠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다시 딸 생각이 났어요. 특히, 막내 수빈이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때부터 강씨의 ‘딸 찾기’가 시작됐다.
수소문 끝에 서울 왕십리의 한 영아원에 막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노숙자의 몰골로 아이를 만났다. 당시 세 살이던 수빈이는 낯선 아빠의 모습에 놀라 울기만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애 훔쳐 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수빈이와 보름을 함께 지냈다. 헤어질 날이 다가오자, 비로소 수빈이가 아빠를 향해 웃었다. 가슴이 저렸다. “부끄러웠어요. 잠시나마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외국에 입양 보낼까 고민도 했으니까요. 결국 ‘내가 키워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그 무렵 부산에서 연락이 왔다. 수진(현재 14세), 수민(11), 수연(8)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보호시설로 보내겠다는 외갓집의 전화였다. 곧장 달려가 세 아이를 데려왔다. 수빈(현재 5세)이도 영아원에서 찾아왔다. 네 아이의 손을 잡고 강씨는 서울 상도동 부모님 집으로 갔다. 2005년 말엔 옥탑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기 시작했다.
◆다시 모인 아빠와 네 딸
강씨는 술을 끊었다. 소주 생각이 날 때면 지갑에 넣어둔 아이들 사진을 본다.
그는 전기용접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정수기능대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학교로 보내면, 곧바로 정수기능대학에 가서 오후 4시까지 강의를 듣는다. 실습훈련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나면 오후 10시. 아이들의 숙제를 확인한 후 11시 무렵에 잠든다. “우리 딸들은 다 재주가 많아요. 수진이는 나중에 맛있는 빵을 만드는 ‘파티쉐’가 되고 싶대요. 수민이는 개그맨이 꿈이고요. 수연이는 머리가 좋아서 수학은 무조건 100점이고, 수빈이는 키가 커서 모델을 시키면 좋을 것 같고….” 아이들은 애교가 부쩍 늘고, 학교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셋째 수연이는 “아빠랑 있으면 가만 있어도 웃음이 나요. 아빠랑 같이 살기 전엔 잘 안 웃었는데, 요즘은 매일 웃어요”라고 말했다. 둘째 수민이와 첫째 수진이는 어버이날 선물로 과일꼬치와 주먹밥, 샌드위치를 밤새 만들었다.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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