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박철순 등)

[스크랩] <[정지원의 인사이드 부스] '불사조' 박철순에 대한 추억!>

도깨비-1 2007. 4. 24. 17:33
출처 : 최신뉴스
글쓴이 : 스포츠서울 원글보기
메모 :

[스포츠서울닷컴 I 정지원칼럼니스트] '황당한(?) 철순씨!'

 

스포츠에 몸을 담은 지도 어언 13년이 흘렀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방송 부스에서 또 취재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선수들, 감독들, 구단 임직원들, 기자들 그리고 해설자들 등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스포츠 종사자들을 만난 셈이다.

그들 중에 유난히 박철순씨가 생각난다. 지난 1998년 iTV가 박찬호 선발등판을 포함한 메이저리그 경기를 독점으로 중계 방송하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OB 베어스의 코치였던 박철순씨가 팀을 나오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한국 프로야구 원년(1982) 최다승(24승) 투수 박철순.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22연승 가도를 달리며 국내 야구팬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그의 영웅적 잔상은 16년이 흐른 1998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박철순씨는 국내 프로야구 출범 직전 미국의 밀워키 부르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 진입을 노리고 있다가 고국에서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뉴스를 듣고 입국해 프로야구 원년 최고의 스타가 됐다.

마땅한 해설자를 찾지 못하던 그 시점, 박철순씨의 사직은 당시 iTV 스포츠팀을 설레게 만들었다. 박찬호의 투구를 분석할 수 있는 투수 출신에다가 비록 마이너리그이지만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박철순씨의 이력은 박찬호 중계방송 해설의 최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iTV는 전사적으로 박철순 영입 작전에 돌입했고 그의 승낙을 받아냈다.

박철순씨의 해설 발탁은 사회적으로도 반향이 있었다. 당시 모 커피회사는 강물에 공을 던지는 박철순씨의 모습을 촬영하여 CF를 제작했다. 타방송사에서도 취재의뢰가 빗발쳤던 시절이었다. 모두들 들뜬 분위기속에서 박철순씨의 해설 데뷔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방송 첫날. 세인의 수많은 관심 속에 박찬호 선발경기가 전국적으로 중계방송되었다. 하지만 이게 웬 일인가? 방송 경험이 일천한 박철순 해설위원은 경기 내내 거의 말씀이 없었다. 누구나 첫 방송은 잘 치르기가 어렵다. 박 위원의 경우 평소에도 말 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또 목소리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평소 언어습관이 방송까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어렵지 않게 당시의 상황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방송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4시간의 방송을 마쳤다. 정말 조용한 야구 중계방송이었다. 캐스터였던 필자도 그날만큼 진땀을 흘린 적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박철순씨와 관련해 가장 히트였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중계방송 도중에 박위원의 해설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전화가 쇄도하자 담당 피디는 캐스터였던 필자에게 리시버를 통해 " 박위원께 목소리 좀 높이라고 전해달라 " 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때 박위원은 " 오늘 박찬호의 부진의 이유를 말해달라 " 는 필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려는 중이었다. 필자는 답변을 하려는 박위원을 향해 '크게' 라는 글자를 정말 크게 써서 보여줬다. 박위원왈, " 음~~ 오늘 박찬호 선수는 (글자를 보면서) '크게' 던졌어야 했어요. " 상황을 알고 있던 방송국 부조는 웃음바다가 됐다. 그리고 박위원은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었다. 필자 역시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너무 힘겨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황이 이런지라 빨리 수습을 하기 위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 박위원님! 오늘 박찬호 선수의 투구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리면서 중계방송 마쳐야겠네요. " 박위원왈, " 음~~ 할 말이 없네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 그리고 또, 아무 말씀도 없었다. 기겁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했다. " 오늘 박찬호 선수가 원체 부진해서 하실 말씀이 없나 봅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 되돌아보면 등골이 오싹했던 순간이었지만 늘 재미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기억이다.

이제는 사업가로 변신한 박철순씨. 얼마전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지만 거의 치유됐다는 얘기에 마음이 놓인다. 불사조 박철순. 그의 앞날에 다시 한 번 무궁한 발전과 영광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jcaster@hanmail.net

- 색깔있는 뉴스 스포츠서울닷컴 (sportsseoul.com)

Copyrights ⓒ 스포츠서울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