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우칼럼] `본데없다` [중앙일보]
국민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거나 후벼파는 속칭 '싸가지 없는 말'은 모음집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끼게 하거나 품격 없는 발언의 사례도 널려 있다. 대통령이 중도하차 가능성을 언급하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 임기 많이 남았다"고 주워담은 것도 그렇다. 대통령과 여당 당의장이 주고받는 감정싸움은 보기 민망할 수준이다. 보고 배운 게 없으면 일을 만들어갈 줄도 모른다. '여.야.정 정치협상회의'의 제안과 무산의 과정은 전형적 사례다. 여당이 풍비박산 직전에 있으니 여당 지도부와 미리 조율을 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자. "국정 수행에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그런 제의를 한다면서 어떻게 한나라당에 사전 설명이나 설득작업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공개 제의한 뒤에라도 막후 접촉을 통해 진정성을 보였어야 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우리가 제안 당일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를 유보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면서 "무조건 거부했을 경우 역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청와대 측의 의도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한 것은 발표 직전 한나라당 대표와 접촉하려다 '연락'이 닿지 않자 원내대표에게 간략히 설명한 게 전부였다. 무성의하고 성사시킬 의지도 없어보이는 제안에 한나라당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뒤 청와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말을 또 했다. 이정우 대통령 정책특보의 해촉을 발표하면서다. "그저께부터 연락했는데 연락이 잘 안 돼 본인에게는 아직 통보가 안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참모에게 연락을 못하는 상황은 차라리 싸구려 코미디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안 철회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의 카드라고 내민 것도 '본데없는' 짓이다. 석 달 동안 마음고생한 전씨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은 행위다. 하기야 전씨의 사퇴 성명서를 보면 이런 대통령의 처사에 불만이 없는 듯한데, 제3자가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느니 떠드는 것이 쑥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리 '내 사람'이라도 기본 예의는 갖춰야 한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 대통령의 당 지도부와의 만찬 제의를 거절한 과정은 '본데없는' 처신이 청와대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 의장은 당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네 번씩이나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는데 청와대에서 아무 대답이 없다가 당 지도부 20명을 저녁에 보자면서 당일 연락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통령이 여당 의장의 거듭된 면담 요청을 묵살한 건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그렇다 해도 김 의장의 처신은 '언론 플레이'란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다.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앵무새 노릇을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 그걸 못하니 '본데없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한 번 해본 소리'일 수 없고, 국정은 소꿉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의 중추인 청와대가 제1야당의 대표나 대통령 특보와 접촉할 비상연락망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건 위기상황이다. 이래서야 국민이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킬 책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중소기업이라도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하면 망한다. 차라리 현 정권 초기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이 있을 때가 지금보다는 나았다. 일을 만들어갈 줄 모르는 보좌진에 둘러싸인 대통령,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 모두가 안타깝다. 김두우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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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3 21:32 입력 / 2006.12.04 11:0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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