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만물상] 인간 YS

도깨비-1 2015. 11. 23. 15:41

 

[만물상] 인간 YS

  • 강인선 논설위원

입력 : 2015.11.23 03:00 / 조선일보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단식과 말실수, 특유의 발음, 조깅, 칼국수가 떠오른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간적 면모가 늘 화제였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발표할 때였다.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서 담화문을 읽고 있는데 대변인이 사색이 돼 다가왔다. 케이블이 연결되지 않아 생중계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다시 준비될 때까지 화를 참느라 YS는 의자 팔걸이를 부서뜨릴 정도로 꽉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YS가 화를 터뜨릴 땐 정말 무서웠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취임 초 대통령이 골프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 비서관이 몰래 골프를 친 일이 있었다. 이 골프 회동이 한 일간지 만평에 나와버렸다. 홍 수석은 한동안 대통령을 피해 다녔다. 일주일 만에 회의에 들어가서도 대통령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YS가 "보래이" 하면서 불러 세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YS가 탁자 위에 발을 척 올리더니 말했다. "별일 없제? 잘하래이…."

[만물상] 인간 YS

 

▶YS가 민자당 대표 시절 외교사절들이 참여하는 청와대 행사에 초대받았다. YS의 '영원한 비서' 김기수는 이날 드레스코드가 '연미복'이라고 전했다. 막상 가보니 다들 정장 차림이었다. YS는 혼자 연미복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사를 마쳤다. 상도동 집으로 가는 길 자동차가 한강대교를 건널 때 YS가 말했다. "기수야, 니 한강에 뛰어내리래이." 김 실장은 YS가 가까운 사람에겐 어떻게 화를 내는지 잘 안다. 그는 지금까지 35년 넘게 YS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YS는 음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청와대 메뉴도 칼국수에 마른 멸치와 고추장을 곁들인 정도였다. DJ도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대접받았다. 하지만 나오는 길에 곧장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청와대에 밥 먹으러 갔던 사람들 사이에 "양이 적다" "맛이 없다" 말이 많았다. YS는 출입기자 친척 중에 안동 칼국수를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청와대 요리사를 보내 비법을 배우게 했다.

▶YS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조깅으로 몸 관리를 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방한 땐 같이 조깅하다가 갑자기 전력질주해 클린턴보다 앞질러버렸다. 감출 수 없는 승부 근성이 작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YS는 그 무엇보다 정국에 대한 통찰력이 비범했다. 한 시대의 거인이 떠났다. 그가 '학실히'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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