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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택엔 삶이 있다

도깨비-1 2014. 12. 5. 16:29
주택엔 삶이 있다
http://media.daum.net/v/20141204093012637

출처 :  [미디어다음] 인테리어 
글쓴이 : 레몬트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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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엔 삶이 있다

무용수 아내는 재봉틀로 커튼을 만들고, 증권맨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골목을 산책한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듯한 여유랄까, 주택은 젊은 부부에게 그런 느긋하고 편안한 일상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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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둘러싸고 있던 높은 담을 없애 햇살이 잘 들어온다. 마당 데크로 나가는 문은 본래 창문이 있던 자리고, 소파 옆 통창은 작은 창으로 만들었다. 현관의 실내화 꽂이는 잡지 컴홈에서 얻은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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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와 건축가가 고심하며 만든 주방. 조리대 앞의 냄비뚜껑 꽂이 아이디어도 재밌다.

35평 대지, 작은 집의 인연

올해 2월에 별안간 저지른 일이었다. 아파트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었던 구자휘, 김정아 씨 부부는 느긋하게 쉬던 주말 오후, 문득 주택을 보러 나섰다. 아내의 사촌 언니가 살았던 연희동, 그저 익숙함에 이끌려 무작정 연희동으로 갔고 부동산에서 안내한 첫 번째 집을 보고 환한 것이 맘에 들어 결정해버렸다.

집이 앉은 방향이나 바닥의 수평, 설비 등은 따져볼 생각도 못 했고, 집 뒤로 산이 있고 1, 2층이 분리되어 있어 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땅콩 집에 매료된 여느 30대들처럼 이들 부부도 단독주택의 삶을 꿈꿨다.

역시 이 집의 서재에는 『두 남자의 집 짓기』, 『햇살 가득 연희동 집, 바람 솔솔 부암동 집』 등 주택의 꿈을 키워주었던 책들이 꽂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잘되겠지 하며 샀어요. 작은 주택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니 집 공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대출을 얻어 산 집이라 리모델링은 손수 해볼 생각이었다. 아내는 2개월여를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 즈음 부부는 우연히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고 푸하하하 프렌즈(FHHH Friends)라는 젊은 건축가 집단을 알게 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상업 공간을 설계해왔고, 집 공사는 맡을 계획이 없던 업체였다.

집 공사를 하지 않는 팀에게 자신들의 애지중지 첫 주택을 맡긴 것도, 집에는 관심 없던 팀이 35평 대지에 15평짜리 작고 낡아 품이 많이 드는 집을 맡은 것도 신기하다.

"몇 군데 업체를 만났는데 디자인이 좋고 나쁨을 떠나 하던 대로 하려는 점이 별로였어요. 우리는 '우리 집'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저희가 클라이언트를 좀 따져요.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면 힘들거든요. 또 저희가 잘해도 주인이 살면서 전혀 다른 집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기 집'을 만들고 싶은 부부와 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의기투합해 독립한 3명의 젊은 건축가 집단은 서로 통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봄부터 가을까지 3개월에 걸친 기나긴 작업이 이루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미팅을 하고 고난도 겪으며, 건축주와 건축가는 친구가 되었다. 더구나 또래라 그런지 촬영 당일 가족과 함께 놀러와 거실에 둘러앉은 모습이 오랜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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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책장과 신발장이 빌트인 된 벽 뒤로 서재 겸 작업 코너와 부부 침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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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발치의 코너. 선반과 거울, 블루투스 스피커로 벽면을 알차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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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직사각형 방을 나눠서 서재와 침실로 만들었다. 침실 방문은 미닫이, 침대와 수납상자는 무인양품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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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담을 허물고 모던한 디자인의 문과 원형 계단을 설치했다.

딸 예원이의 방. 가지고 있는 침대에 맞춰 복고풍 조명을 선택했다. 집의 모든 조명은 을지로 모던라이팅에서 구입했다.

발품과 정성의 리모델링

집은 간결하면서 따뜻하다. 일본 잡지 컴홈,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노란 코끼리, 일본 드라마 오센, 수박 등이 아내가 참고한 인테리어의 교과서였다. 그래서인지 무인양품의 물건들이 주요 쇼핑 목록이었다고 한다.

첫 미팅 때 고민하며 공간 배치를 그린 도면과 평소 좋아하는 인테리어 잡지를 들고 온 취향 확실한 부부의 소망을 바탕으로 건축가가 전문가의 노하우를 더해가며 집을 완성했다.

방 2개의 좁은 15평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천장을 2m 80cm까지 높였고, 서재에 문을 달지 않고 주방과 서재 사이의 시야가 트이도록 디자인했다. 채광을 위해 집을 둘러싸고 있던 담을 허물면서, 자가 구역 내에 주차를 하는 구청의 그린파킹 제도를 이용해 지원을 받으면서 계단을 새로 설치했다.

흔치 않은 원형 계단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층은 전세를 주고, 세 식구는 1층 공간만 쓴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공간이 좁아져서 냉장고, 세탁기, 아이 침대를 제외한 신혼 가구를 모두 처분하고 이사 왔지만 좁아서 불편한 느낌은 전혀 없다.

길쭉한 직사각형 방을 나누어 침실과 서재로 쓰고 나머지 방은 아이 방으로 정하면서 방문은 미닫이로, 벽 뒤에는 선반과 책장, 침대 아래에는 수납박스를 넣는 등의 아이디어로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특히 주방은 기성 제품을 넣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일주일 넘게 집주인과 건축가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디자인이다. 반신 욕조를 넣는 것이나 몰딩과 걸레받이를 두르지 않는 것 등 시공업자들에게 '다르게' 한다고 잔소리도 꽤 들었다.

설계에만 3개월의 시간을 투자한 정성 어린 집. 방문의 위치를 바꾸고, 테라스 부분을 실내로 들여 거실 공간을 넓히고, 마당 데크로 나가는 곳은 창을 늘리고, 담장을 허물면서 통창이 있던 거실은 외부 시선을 차단하려고 창을 줄였다. 집주인도 열심히 손을 보탰다.

구조에 맞춰 책장이나 선반, 주방 가구를 현장에서 짜서 완성하면 집주인은 일일이 사포질을 해가며 마무리했고, 조명, 조명 플레이트, 걸이 장식 하나하나까지 직접 골랐다. 공간은 좁아졌건만 남편도 아내도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 때가 더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이웃 간의 소음 문제도 그렇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학원에 보내거나 하는 선택에 휩쓸려야 하는 것도 불편했어요. 지금은 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고 그저 골목에서 뛰어놀아요. 내성적이던 아이도 활발해졌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오면 어딜 데리고 가지 하면서 나갈 궁리만 했는데 여기 살면서 마당 쓸고 집 가꾸는 재미에 빠져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단다.

남편도 아파트는 왠지 빡빡했는데 여기는 뭔지 모르게 오래된 옷처럼 편하고 아이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요즘 아파트는 공원과 산책로가 잘되어 있는데도 그 맛과는 좀 다르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여 여러 번 물으니 부부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저마다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동네, 그 느리게 가던 시간이 단독주택의 삶에 배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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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상판은 평소에는 냄비걸이, 올려 고정하면 조리대로 쓰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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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씨가 몇 개월간 고민하며 정한 공간 배치도와 실측을 위해 구입한 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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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일과 직선 라인의 도기로 미니멀 분위기의 욕실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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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바라본 모습. 좌측이 욕실, 우측 미닫이문이 아이 방이다.

기획_홍주희 | 사진_전택수(JEON Studio)

레몬트리 2014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