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스크랩] 층간 소음의 `악몽`.. 난, 이렇게 해결했다

도깨비-1 2014. 1. 28. 21:14
층간 소음의 `악몽`.. 난, 이렇게 해결했다
http://media.daum.net/v/20140126182905083

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오마이뉴스 원글보기
메모 : [오마이뉴스 이정혁 기자]

밤은 존재한다. 그것도 하루의 빈틈도 주지 않고 늘 같은 시간, 그 자리에 존재한다. 아이가 잠든 시각, 밤 10시 15분. 윗집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아니 분주하다. 의자가 저항하며 질질 끌려가는 소리, 쿵 하고 예기치 않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우당탕탕 거실에서 안방으로 전력 질주하는 발걸음 소리까지.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처럼, 밤과 함께 위층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문명의 씨앗이 싹 트는 듯하다.

위층에 새로운 세대가 이사를 온 후 3주가 조금 지났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윗집에 누가 이사 오는지에 대해서 나 역시 큰 관심은 없었다. 이사왔다고 떡이라도 돌리면 또 모를까. 처음 며칠간은 짐정리 때문에 시끄러우려니 했다. '낮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못하고, 오밤중이 되어서야 짐 정리를 하는구나, 참 피곤하겠구나'라는 측은한 마음이 살짝 든 것도 사실이다.

2주가 넘어가면서 이해심의 반경은 더욱 넓어진다. 짐이 꽤 많은가 보구나. 뛰어다니는 발자국의 데시벨이 다른 걸로 봐서 아이들이 셋 이상이겠구나, 그러면 뭐 짐이 많을 수도 있지. 가구배치가 맘에 안들어서 다시 하나보다,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 뭐 이정도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3주가 넘어서자 나의 청각 신경은 소머즈의 그것만큼 진화되었고, 자려고 눈을 감으면 윗집의 누군가가 귀 파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이사 간 지 8개월 만에 짐 싼 웃지 못할 사연



▲ 식당 한편의 놀이방층간 소음때문에 키즈파크와 놀이방이 딸린 식당을 전전하던 옛추억이 떠오른다

ⓒ 이정혁

악몽의 부활인가? 문득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떠오르자 몸서리가 쳐진다. 작년 이른 봄이었던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피 말리는 반 년을 보내다가 이사 오던 날, 조국 광복의 기쁨에 버금가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이사 간지 8개월만에 짐을 싸게 된 웃지 못할 기억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굳이 들춰내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처음 두어달 간은 잠잠했다. 이사 간 새집에 우리 아이들의 몸이 덜 풀려서인지, 아니면 아래층에서 유예기간을 주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탈하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는 반신반인의 도시에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번진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사고현장에서 불과 4킬로미터 떨어진 곳. 당연히 근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히게 되었고, 당연지사 텅 빈 놀이터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에서 택배 찾아가라는 뜻이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침묵이 잠시 흐른 후) 잠 좀 잡시다."

50대 후반은 됨직한 중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진격하듯 넘어온다.

"네?"

"아래 층인데 잠 좀 자자고!"

백주 대낮에 스피커 폰을 통해 울려 퍼진 분노 섞인 중저음은 삼국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야간 근무로 낮에 자야만 하는 아래층 아저씨와, 뒷꿈치를 들고 걸어야만 하는 슬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다섯 살 네 살 우리집 아이들과, 그 둘 사이에서 고함과 호통으로 동시대응 해야하는 나, 이렇게 삼자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평일은 그나마 괜찮았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시간이 보통 오후 7시쯤이니까, 씻기고 먹여서 바로 재우면 큰 소리 날일은 별로 없다. 문제는 주말, 꼼짝없이 한바탕 해야만 했다. 스피커폰에다 대고 목에 핏대 세워가며, 육두문자 섞어서 고함치는 경험은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평소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던 성격의 내가 상상을 초월하는 폭언을 하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른 나의 슬픈 발견이었다.

그렇게 4개월 여를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다가 이듬해 설이 되었다. 그런데 설 연휴 첫날(2013년 2월 9일),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문제로 인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설 연휴를 맞아 부모님 집을 찾은 두 형제를 아래층의 40대 남성이 흉기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마치 내일인 양 등골이 오싹했다. 출퇴근길에 늘 복도를 살피는 일이 습관화 되었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 뒤에 누군가가 도끼를 들고 서 있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다행히도 온갖 협박과 폭언만 난무했을뿐, 끝끝내 그 아저씨와 마주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래층 아저씨나 나나 얼굴 맞대고 멱살잡이 할 정도의 배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보다. 살인 사건의 여파가 서로를 경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층간소음 살인 사건은 안 그래도 소심한 나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집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사 가기로 한 것이다.

집을 새로 계약하고 이사하기까지 두 달간,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면 집시처럼 떠돌아야 했다. 한주는 본가에, 또 한주는 처가에, 그러다 정 갈 곳이 없으면, 근처 호텔방이라도 잡아야 했다. 아이들 놀이방인 키즈파크라는 곳에서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난민의 설움은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더디기만 했던 시간이 흐르고 이사를 왔다.



▲ 1층이 없는 2층우리집 아래층은 자전거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1층같은 2층.

ⓒ 이정혁

1층 없는 2층이어서 줄넘기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새로운 보금자리는 천국, 그 자체였다. 뛰지 말라고 고함칠 일도 없고, 잘 맞지도 않는 실내화 신고 뒤뚱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일도 사라졌다.

이사 온 지 한달 뒤, 접한 뉴스에서 역시 층간소음으로 인한 방화 사건이 발생했고(2013년 5월, 인천 부평), 두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야 말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사 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행복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들이 온 것이다.

다시 시작된 층간소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며칠간 고민에 빠졌다. 층간소음은 솔로몬이 살아 돌아와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딱히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설픈 접근은 뇌관을 건드리는 꼴이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며칠에 걸친 고민 끝에, 소심하고 겁많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기본에 충실하자, 위층에 손 편지를 써서 감정에 호소해보기로 한 것이다. 새벽까지 써 내려간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 윗층에 쓴 편지층간소음 문제의 해결은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 이정혁

'뭐, 우리도 애들 키우는 집이고하니 낮 시간에 뛰는건 충분히 이해한다, 밤 10시전에는 천장이 무너져도 좋으니 마음껏 뛰어 놀게 해주고, 못질이나 가구 배치도 원 없이 하시라. 다만 밤 10시 이후에는 이웃에 대해 최대한 배려해 달라. 층간 소음때문에 이웃간에 얼굴 붉혀봐서 아는데, 그게 참 사람 할 짓이 아니더라...'.

최대한 감성적이고, 애절하게, 정중하고 이해심이 물씬 묻어나게 A4 한장을 빽빽하게 채운 편지를 다음날 아침, 위층 현관문에 붙여 두었다.



▲ 윗층에 쓴 편지-2아침 일찍 올라가서 현관문에 붙이고 내려오는데 한편으로 불안하고 한편으로 뿌듯했다

ⓒ 이정혁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애인에게 보내듯 씌인 손 편지의 결과는? 생각보다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편지를 보낸 날 저녁부터 소음이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밤 10시 이후로는 발자국 소리도 작아졌고, 잠을 못 이룰 정도의 큰 소음들은 사라졌다. 물론 10시 이전에는 여전히 포크레인과 굴착기 여러 대가 돌아다닌다. 윗집 아이들 중에는 단거리 육상 꿈나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뛰는 소리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공동주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머지않아 민족의 대명절인 설연휴가 시작된다. 설날을 맞이하여 2단계 작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과일 한상자 들고 찾아가 소음에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일명, '미안해 죽이기'작전. 일종의 햇볕정책인 셈이다. 경비실이나 인터폰을 매개로 한 의사전달은 아무리 정중하게 접근하더라도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한 안내문아파트 1층 현관에 붙어 있는 안내문. 이웃간의 이해와 배려를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 이정혁

더군다나 화장실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밤마다 헤비메탈을 틀어대는 복수극 따위로는 분쟁의 장기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서로의 감정만 자극해서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복수는 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우리집 위층 사람들 같지는 않을게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집에서 내맘대로 하는 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식의 막가파 가정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경우 어느 한집이 이삿짐을 꾸리기 전까지 스트레스와 분노로 얼룩진 소모전이 계속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타심을 지닌 고등동물 아니던가? 사람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한 번 믿어보자. 층간소음에 대한 문제를 이웃 간에 서로 인지하고, 적정선에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는거다.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설 명절에 층간소음으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하기를. 이 글이 나라님도 해결 못한다는 지상 최대의 과제인 층간소음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작은 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