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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나이토 교수의 훈장

도깨비-1 2012. 8. 30. 15:41


[동서남북] 나이토 교수의 훈장


 선우 정 / 사회부 차장 조선일보 2012. 08. 30.

 

   노(老)학자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교수는 일본 중서부 시마네(島根)현과 인연이 깊다. 독도를 부속 섬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케시마의 날'을 만든 곳이다. 유명 사학자였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태어났고, 나이토 교수 역시 이 지역 경제사 연구에 뛰어들어 국립 시마네대 교수로 현역을 마쳤다. 대학은 업적을 인정해 명예교수로 그를 대우했다. 그런 그가 고향에 등을 돌리는 것은 인간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독도 연구를 시작한 이래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만난 그는 "독도 관련 사료를 연구하면서 '이건(일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란 생각을 확고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문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유혹이 늘 따라다닌다. 관학(官學) 전통이 강한 일본이야말로 학문이 권력의 죄악을 앞장서 미화한 전력을 갖고 있다. 같은 사료를 연구하고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결론 내린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의 연구는 그런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토 교수는 교토(京都)대에서 경제사를 전공했다. 그는 "교토대 출신이라 순순히 정부를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토대는 명문 국립대이지만, 순응적 엘리트를 양성하는 도쿄대와 달리 시류(時流)와 대립하는 학풍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비판적 인문학이 강하고, 순수과학에서 도쿄대보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를 만난 2008년, 나이토 교수는 '중수장(中綬章)'이란 훈장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는 "문부과학성 관료가 (내가 무슨 주장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선정한 것 같다"며 "훈장을 주는 덴노(천황)는 독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당시 그의 웃음을 '일본은 국왕에서 관료까지 독도를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도쿄 특파원으로 있을 때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금 집권당에서 중심 세력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독도는 역사 문제'라는 이야기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고노 담화'가 어떤 고뇌와 성찰에서 나온 유산인지도 고민하지 않는 듯했다. 역사에 대한 질문도 귀찮아했다. 지적(知的) 깊이가 없으면 행동이 경박해진다. 그러니 선배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쓰레기처럼 내다버리는 것이다.
   일본이 역사에 진지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한국은 군사적 결속을 포함해 더 많은 것을 일본에 선물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 일본의 젊은 집권자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라"고 외국인이 말하는 것도 주제넘고 지루한 일이다. 사실 지난 100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이 긍정적으로 협력하면서 동반 발전한 것은 최근 몇 십 년이 전부다. 긴 역사에서 보면 지금 한일 관계는 '특별한 시대'에서 '일반적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을 뿐이다.
   나이토 교수는 "바다(동해)가 조용할수록, 독도의 가치를 부각시키지 않을수록 전략적으로 한국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것도 동해가 전쟁터로 변하면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가 부각된 것이 직접 원인이었다. 한일 관계가 아무리 변해도 이런 전략은 유효하다. 목숨을 바치기 이전에 지혜로 독도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요즘 역대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독도를 방문한 대통령보다 더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