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들이 맛을 알아’? 맛을 둘러싼 오해 8가지
http://media.daum.net/v/20120720100822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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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사회일반
글쓴이 : 시사INLive 원글보기
메모 : 요리사의 첫 번째 자격은 독설인가 했다. 케이블TV 올리브 채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 마스터 셰프 코리아 > 의 심사위원 강레오는 도전자가 애써 만든 음식을 도저히 삼킬 수 없다며 뱉는다. 7성급 레스토랑 주방장이라는 에드워드 권 역시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당신은 자격이 없다"라며 소리 지른다. 평가 기준은 요리의 맛.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전문가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심사위원이라면 어떨까. 그가 진작부터 생각해둔 미션은 '좋은 재료 고르기'이다. 맛을 결정하는 건 원재료. 재료 고르는 안목이 요리사의 가장 기본적 자질이라는 생각이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 어떤 배추가 좋은지 고르는 데서 요리는 시작된다. 서양 요리라 하더라도 결국 근간은 우리의 제철 농산물이라는 얘기.
7월4일 저녁. 서울 홍대 앞 린나이빌딩에 50여 명이 모였다. 황교익씨가 강조하는 재료, 그 맛의 비밀을 듣기 위해서다. 개인당 접시 1개와 컵 3개를 받았다. 가래떡과 조청, 올리고당을 한데 올렸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조청과 올리고당 중 어떤 게 좋은 맛을 내는지, 50명이 각각 직접 맛을 봤다. 청매실·황매실청 시음도 했다. 마포 민중의집과 푸드포체인지가 주관한 < 맛 콘서트 > 현장이었다.
7월4일을 시작으로 11월 말까지 진행되는 < 맛 콘서트 > 는 세 가지 시즌으로 나뉘어 총 12번 열린다. 대안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생산부터 유통, 가공에 이르기까지 자본에 예속된 음식과 맛의 비밀을 파헤치는 자리다. 첫 번째 주자가 황교익씨. 주제는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다. 넉넉한 미소 너머 연이은 독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요리사 못지않았다. 비빔밥, 매실청, 천일염, 두유, 유기농 제품 등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대체로 몸에 좋은 먹을거리로 알려졌던 것들이다. 그가 제안하는 '맛에 속지 않는 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자본의 음식' 등장하다
황씨는 음식 관련 글을 20년 가까이 쓰면서 '내 미각이 바른 미각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미각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건가. 요즘 좀 흐릿하게 그게 보인다고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먹는 게 엄마 젖이다. 비릿하고 이상한 맛이다. 근데 그 젖을 떼려고 하면 '소태를 발라도' 안 떨어진다. 맛있어서 그럴까? 아이가 자라면 이유식을 시작하지만 자기 의지대로 먹는 건 7세부터다. 그 전까지 인간은 어머니에 의해 먹는 기호가 결정된다.
그는 한 외식업체 잡지에 실린 미원 광고를 보여줬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무는 사진 위로 '미원이 안전하지 않다면 모유도 안전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자연의 음식을 공장의 음식으로 바꾸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게 화학조미료이기 때문이다. "일제가 1920년에 개발해 지금까지 한국인 대부분이 먹고 있는 조미료다. 그게 안전하다는 걸 표현해내는 광고로 젖 먹는 아기를 넣은 셈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 '농부의 자식들'이 '노동자의 자식'이 되었다. 도시 노동자에게는 음식을 최적의 상태로 유통하면서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뭔가 변형을 가한다. 그래서 나온 게 음식이 아니라 '음식 비슷한 거'다. '자본의 음식' 등장이다.
음식 비슷한 것-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
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 고추장이 아니라 고추장 맛 소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이름이 정정되어야 한다고 황씨는 말한다. 음식 비슷한 걸로 된장이 대표적이다. 식품공전(식품 일반에 대한 공통기준을 서술한 기록)을 보면 콩, 대두박, 밀 등을 염기해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조방식'을 된장이라고 적어놓았다. 우리가 보통 아는 메주 띄워 만든 된장은 '한식 된장'이라고 되어 있다. 제품을 살 때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식품공전 자체가 공장을 기준에 두고 있는 셈이다. 공장 된장은 콩 말고 대두박을 쓴다. 콩기름 짜고 난 나머지 껍질이다. 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가 맞는 표현이다.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것이 고추장이고 비슷한 맛이 나는 건 고추장 맛 소스라고 해야 정확하다.
조청도 있다.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고전적인 게 조청이다. 곡물을 가루내어 엿을 섞어 가마솥에 끓인다. 약간 식혀서 다시 끓이는데, 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엿질금(엿기름)이 곡물의 전분을 강화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통 엿으로 파는 것 중에 이 방법으로 하지 않는 데가 있다. 밥을 찧어서 엿질금을 넣고 삭힌 뒤 엿물을 넣어 곤다. 그걸 전통 엿이라고 해서 판다. 1980년대 들어온 개량된 방법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전통 방법을 약간 수정해 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보급한 것. 그렇게 만들면 편하지만 맛은 많이 다르다고 황씨는 말한다. 조청은 곡물 향이 강하다.
입맛의 왜곡-두유
몇 년간 콩, 두부, 두유에 대해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는 황씨는 한 두유제조업체 연구원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두유는 원래 우유 못 마시는 아이를 위해 의사가 고안해낸 것이다. 옛날에는 달지 않았다. 모유의 당도가 11브릭스다. 그에 맞춰 11브릭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분유업체가 두유를 만들면서 당도를 13브릭스로 올렸다. 아기가 13브릭스짜리를 입에 넣고 나면 11브릭스는 밀어낸다. 한번 단맛을 들이면 원래 그렇다. 못 빠져나온다. 당 경쟁이 붙어 원래 잘 만들던 곳도 당도를 높였다.
황씨는 흑설탕이든 백설탕이든 단것을 좀 줄이라고 당부했다. 단맛은 맛 중 워낙 강렬해 달기만 하면 다 맛있다. 떡볶이도 매운맛이 있지만 단맛이 가장 강하다. 짬뽕도 마찬가지. 양조간장 뒷면에 보면 스테비올배당체가 대부분으로, 굉장히 달다고 한다. 그가 집에서 실험한 결과 양조간장은 간장과 당이 1:1 비율이라고. 그런데 모두 잘 모른다. 그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은 패스트푸드
황씨에 따르면 음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한식 세계화다.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라고 하니 비판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먹을거리에 대한 조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한식 세계화를 지목한 것. 한국 음식이 슬로푸드라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한국 음식이기만 하면 슬로푸드라고 말한다. 한정식, 떡볶이, 비빔밥, 죽도 슬로푸드란다. 그런데 비빔밥 등은 패스트푸드라는 게 황씨의 생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음식이 패스트푸드다. 완조리든 반조리든 손님이 왔을 때 모양만 잡아 상에 내는 게 적지 않다. "한정식 34가지 음식도 앉자마자 깔린다. 맥도날드보다 빠르다. 그걸 슬로푸드라 말한다. 미리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가 내는 것일 뿐이다. 떡볶이도 학교 주변 200m 그린푸드 존에서는 못 판다. 영양 밸런스가 맞지 않고 전분이 많아서다. 한국인이 먹는 음식 중 질이 떨어지는 게 많은데 거기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더욱이 이를 정치권력이 주도한다. 한민족의 애국심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대기업이 비빔밥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를 열었다. 국가가 한식 세계화를 광고하고 기업이 숟가락을 얹는 모양새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아쉬워했다.
천일염의 신화
이날 황씨는 염화마그네슘을 가지고 왔다. 천일염의 미네랄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네랄에 든 염화마그네슘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맛 중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 미네랄에는 마그네슘, 칼륨 등이 들었다. 그중 마그네슘은 쓴맛을 낸다. 우리나라 천일염에는 1%가량 들어 있다. 게랑드(프랑스 산지의 소금으로 최고급으로 알려져 있다)보다 3배 많다. 한국 음식이 화학조미료에서 못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천일염에 있다. 이 쓴맛을 커버하는 게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 화학조미료를 넣은 것이다. 멸치젓 등도 화학조미료를 넣어 만든다. 그런데 하루 평균 몸에 필요한 염화마그네슘 양은 소금 7티스푼 정도를 먹으면 된다. 고등어의 4분의 1, 다시마 두 쪽으로 자연물에서 흡수할 수 있다. 소금물에서 먹을 건 아니라는 거다.
맛을 버려야 돈이 된다-안 익은 과일
모든 과일은 익어야 향이 난다. 덜 익은 상태에서는 향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청매실이 좋다고 해서 청매실만 먹는다. 실제 맛있는 건 청매실이 아니라 황매실이라고 황씨는 지적한다. 청매의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실주가 있다. 주류회사에서 나온 매실주 안에 매실을 넣었는데 청매만 사용했다. 안에 넣어 유통해야 하니까 안 물러야 했다.
자연에서 나오는 농산물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맛을 버린다. 그중 하나가 토마토다. 따온 토마토는 대형 선별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친다. 세척 후 바람으로 물기를 날리고 크기별로 떨어뜨려 포장한다. 이 과정에서 과일이 툭툭 부딪치게 된다. 익은 과일은 견딜 수가 없다. 안 익고 탱탱한 파란색이어야 살아남는다. 완숙 토마토로 파는 것도 30~40% 익었을 때 딴다. 그러나 토마토는 70~80% 익었을 때에만 향이 있다. 참외도 예전보다 딱딱하다. 보관과 유통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명절 선물로 황씨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배다. 덩치는 큰데 아무 맛이 없다. 배는 원래 추석에서 한 달 정도 지나야 익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목에 맞추기 위해 꽃필 때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뿌린다는 것. 성장촉진제를 쓰면 세포가 뻥튀기하듯 배가 단시간에 몇 배로 커진다. 이것을 쓰면 포도도 위에서 아래까지 크기가 똑같다. 이것을 안 뿌리면 균일하지 않다. 모양을 좋게 만들기 위해 맛을 버리는 거다.
배추는 겨울 작물
배추는 겨울 작물이다. 9월 중순에 모종해 11월 중순부터 수확한다. 초겨울이 수확 시기다. 요즘은 여름에도 배추김치 먹겠다고 고랭지에 배추를 심는다. 고랭지 비탈의 기온은 20℃ 정도. 비가 오면 토양이 다 쓸려나가 바닥에는 돌멩이뿐이다. 화학비료에 의해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재배하기 쉽도록 CR계 품종으로 많이 개량했다고 한다. 황씨에 따르면 "마분지 씹는 느낌으로 아무 맛이 없다". 그러니 여름에는 배추 먹을 일이 아니다. 무를 먹어야지.
배추김치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연예인도 김치장사를 한다. 고랭지 배추가 최상의 배추인 것처럼 선전한다. 배추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영하의 기온에서 3일간 버텼을 때다. 영하로 떨어지면 배추가 스스로 살려고 수분을 증발시킨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불순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당이다. 단맛을 올리고 수분을 밖으로 내보는 원리다. 반 가르면 물이 아니라 비쩍 마른 것처럼 보인다. 그게 맛있는 배추다. 자연을 알게 되면 맛이 보인다.
유기농은 다 좋은가?
이 부분은 황씨도 말하기 조심스러워했다. 유기농이 한국의 자연조건에서 부적합한 측면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마라는 걸림돌이 있다. 병충해를 이길 수가 없다. 유기농 매장 가면 배즙, 사과즙이 흔하다. 모양이 안 좋다 보니. 저농약 정도가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3년 동안 농약 없이 버텨야 유기농 인증을 받는다. 인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한번 받으면 호박, 가지, 상추를 계속해서 심는다. 땅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거름으로 버티는데 축분을 과하게 줘서 질산 과다가 적지 않다. 질산 과다는 헤모글로빈과 산소의 결합을 막아 건강에 좋지 않다. 유기농 제품 중 유독 녹색이 강하면 질산 과다다. 또 한 가지. 유기농도 옛날 생협 방식의 건전한 사회적 기업의 소통이 아니라 대기업 손에 들어갔다는 게 황씨의 관전평이다. 대형 유통점에도 유기농 제품이 깔려 있다. 유기농이 한국의 진짜 자연스러운 미각을 충족시키는 건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맛 콘서트 > 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숨이 절로 났다. '그럼 대체 뭘 먹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날 황씨는 '내 입맛이 왜곡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자기만의 먹을거리 기준이 시작된다고 조언했다. 맛있는 집을 찾아 취재하고 전국을 다닌 지 20년, 단지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바른 정치, 바른 자본주의야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해야 하나?" 황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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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심사위원이라면 어떨까. 그가 진작부터 생각해둔 미션은 '좋은 재료 고르기'이다. 맛을 결정하는 건 원재료. 재료 고르는 안목이 요리사의 가장 기본적 자질이라는 생각이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 어떤 배추가 좋은지 고르는 데서 요리는 시작된다. 서양 요리라 하더라도 결국 근간은 우리의 제철 농산물이라는 얘기.
7월4일 저녁. 서울 홍대 앞 린나이빌딩에 50여 명이 모였다. 황교익씨가 강조하는 재료, 그 맛의 비밀을 듣기 위해서다. 개인당 접시 1개와 컵 3개를 받았다. 가래떡과 조청, 올리고당을 한데 올렸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조청과 올리고당 중 어떤 게 좋은 맛을 내는지, 50명이 각각 직접 맛을 봤다. 청매실·황매실청 시음도 했다. 마포 민중의집과 푸드포체인지가 주관한 < 맛 콘서트 > 현장이었다.
ⓒ시사IN 윤무영 < 맛 콘서트 > 첫 번째 강연자 황교익씨. |
'자본의 음식' 등장하다
황씨는 음식 관련 글을 20년 가까이 쓰면서 '내 미각이 바른 미각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미각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건가. 요즘 좀 흐릿하게 그게 보인다고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먹는 게 엄마 젖이다. 비릿하고 이상한 맛이다. 근데 그 젖을 떼려고 하면 '소태를 발라도' 안 떨어진다. 맛있어서 그럴까? 아이가 자라면 이유식을 시작하지만 자기 의지대로 먹는 건 7세부터다. 그 전까지 인간은 어머니에 의해 먹는 기호가 결정된다.
그는 한 외식업체 잡지에 실린 미원 광고를 보여줬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무는 사진 위로 '미원이 안전하지 않다면 모유도 안전하지 않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자연의 음식을 공장의 음식으로 바꾸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게 화학조미료이기 때문이다. "일제가 1920년에 개발해 지금까지 한국인 대부분이 먹고 있는 조미료다. 그게 안전하다는 걸 표현해내는 광고로 젖 먹는 아기를 넣은 셈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 '농부의 자식들'이 '노동자의 자식'이 되었다. 도시 노동자에게는 음식을 최적의 상태로 유통하면서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뭔가 변형을 가한다. 그래서 나온 게 음식이 아니라 '음식 비슷한 거'다. '자본의 음식' 등장이다.
음식 비슷한 것-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
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 고추장이 아니라 고추장 맛 소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이름이 정정되어야 한다고 황씨는 말한다. 음식 비슷한 걸로 된장이 대표적이다. 식품공전(식품 일반에 대한 공통기준을 서술한 기록)을 보면 콩, 대두박, 밀 등을 염기해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조방식'을 된장이라고 적어놓았다. 우리가 보통 아는 메주 띄워 만든 된장은 '한식 된장'이라고 되어 있다. 제품을 살 때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식품공전 자체가 공장을 기준에 두고 있는 셈이다. 공장 된장은 콩 말고 대두박을 쓴다. 콩기름 짜고 난 나머지 껍질이다. 된장이 아니라 된장 맛 소스가 맞는 표현이다.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것이 고추장이고 비슷한 맛이 나는 건 고추장 맛 소스라고 해야 정확하다.
입맛의 왜곡-두유
몇 년간 콩, 두부, 두유에 대해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는 황씨는 한 두유제조업체 연구원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두유는 원래 우유 못 마시는 아이를 위해 의사가 고안해낸 것이다. 옛날에는 달지 않았다. 모유의 당도가 11브릭스다. 그에 맞춰 11브릭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분유업체가 두유를 만들면서 당도를 13브릭스로 올렸다. 아기가 13브릭스짜리를 입에 넣고 나면 11브릭스는 밀어낸다. 한번 단맛을 들이면 원래 그렇다. 못 빠져나온다. 당 경쟁이 붙어 원래 잘 만들던 곳도 당도를 높였다.
황씨는 흑설탕이든 백설탕이든 단것을 좀 줄이라고 당부했다. 단맛은 맛 중 워낙 강렬해 달기만 하면 다 맛있다. 떡볶이도 매운맛이 있지만 단맛이 가장 강하다. 짬뽕도 마찬가지. 양조간장 뒷면에 보면 스테비올배당체가 대부분으로, 굉장히 달다고 한다. 그가 집에서 실험한 결과 양조간장은 간장과 당이 1:1 비율이라고. 그런데 모두 잘 모른다. 그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은 패스트푸드
황씨에 따르면 음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한식 세계화다.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라고 하니 비판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먹을거리에 대한 조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한식 세계화를 지목한 것. 한국 음식이 슬로푸드라는 착각이 대표적이다. 한국 음식이기만 하면 슬로푸드라고 말한다. 한정식, 떡볶이, 비빔밥, 죽도 슬로푸드란다. 그런데 비빔밥 등은 패스트푸드라는 게 황씨의 생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음식이 패스트푸드다. 완조리든 반조리든 손님이 왔을 때 모양만 잡아 상에 내는 게 적지 않다. "한정식 34가지 음식도 앉자마자 깔린다. 맥도날드보다 빠르다. 그걸 슬로푸드라 말한다. 미리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가 내는 것일 뿐이다. 떡볶이도 학교 주변 200m 그린푸드 존에서는 못 판다. 영양 밸런스가 맞지 않고 전분이 많아서다. 한국인이 먹는 음식 중 질이 떨어지는 게 많은데 거기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더욱이 이를 정치권력이 주도한다. 한민족의 애국심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대기업이 비빔밥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를 열었다. 국가가 한식 세계화를 광고하고 기업이 숟가락을 얹는 모양새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아쉬워했다.
천일염의 신화
이날 황씨는 염화마그네슘을 가지고 왔다. 천일염의 미네랄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네랄에 든 염화마그네슘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맛 중 하나'라고 그는 말한다. 미네랄에는 마그네슘, 칼륨 등이 들었다. 그중 마그네슘은 쓴맛을 낸다. 우리나라 천일염에는 1%가량 들어 있다. 게랑드(프랑스 산지의 소금으로 최고급으로 알려져 있다)보다 3배 많다. 한국 음식이 화학조미료에서 못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천일염에 있다. 이 쓴맛을 커버하는 게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 화학조미료를 넣은 것이다. 멸치젓 등도 화학조미료를 넣어 만든다. 그런데 하루 평균 몸에 필요한 염화마그네슘 양은 소금 7티스푼 정도를 먹으면 된다. 고등어의 4분의 1, 다시마 두 쪽으로 자연물에서 흡수할 수 있다. 소금물에서 먹을 건 아니라는 거다.
모든 과일은 익어야 향이 난다. 덜 익은 상태에서는 향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청매실이 좋다고 해서 청매실만 먹는다. 실제 맛있는 건 청매실이 아니라 황매실이라고 황씨는 지적한다. 청매의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실주가 있다. 주류회사에서 나온 매실주 안에 매실을 넣었는데 청매만 사용했다. 안에 넣어 유통해야 하니까 안 물러야 했다.
자연에서 나오는 농산물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맛을 버린다. 그중 하나가 토마토다. 따온 토마토는 대형 선별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친다. 세척 후 바람으로 물기를 날리고 크기별로 떨어뜨려 포장한다. 이 과정에서 과일이 툭툭 부딪치게 된다. 익은 과일은 견딜 수가 없다. 안 익고 탱탱한 파란색이어야 살아남는다. 완숙 토마토로 파는 것도 30~40% 익었을 때 딴다. 그러나 토마토는 70~80% 익었을 때에만 향이 있다. 참외도 예전보다 딱딱하다. 보관과 유통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명절 선물로 황씨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배다. 덩치는 큰데 아무 맛이 없다. 배는 원래 추석에서 한 달 정도 지나야 익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목에 맞추기 위해 꽃필 때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뿌린다는 것. 성장촉진제를 쓰면 세포가 뻥튀기하듯 배가 단시간에 몇 배로 커진다. 이것을 쓰면 포도도 위에서 아래까지 크기가 똑같다. 이것을 안 뿌리면 균일하지 않다. 모양을 좋게 만들기 위해 맛을 버리는 거다.
배추는 겨울 작물
배추는 겨울 작물이다. 9월 중순에 모종해 11월 중순부터 수확한다. 초겨울이 수확 시기다. 요즘은 여름에도 배추김치 먹겠다고 고랭지에 배추를 심는다. 고랭지 비탈의 기온은 20℃ 정도. 비가 오면 토양이 다 쓸려나가 바닥에는 돌멩이뿐이다. 화학비료에 의해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재배하기 쉽도록 CR계 품종으로 많이 개량했다고 한다. 황씨에 따르면 "마분지 씹는 느낌으로 아무 맛이 없다". 그러니 여름에는 배추 먹을 일이 아니다. 무를 먹어야지.
유기농은 다 좋은가?
이 부분은 황씨도 말하기 조심스러워했다. 유기농이 한국의 자연조건에서 부적합한 측면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마라는 걸림돌이 있다. 병충해를 이길 수가 없다. 유기농 매장 가면 배즙, 사과즙이 흔하다. 모양이 안 좋다 보니. 저농약 정도가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3년 동안 농약 없이 버텨야 유기농 인증을 받는다. 인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한번 받으면 호박, 가지, 상추를 계속해서 심는다. 땅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거름으로 버티는데 축분을 과하게 줘서 질산 과다가 적지 않다. 질산 과다는 헤모글로빈과 산소의 결합을 막아 건강에 좋지 않다. 유기농 제품 중 유독 녹색이 강하면 질산 과다다. 또 한 가지. 유기농도 옛날 생협 방식의 건전한 사회적 기업의 소통이 아니라 대기업 손에 들어갔다는 게 황씨의 관전평이다. 대형 유통점에도 유기농 제품이 깔려 있다. 유기농이 한국의 진짜 자연스러운 미각을 충족시키는 건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맛 콘서트 > 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숨이 절로 났다. '그럼 대체 뭘 먹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날 황씨는 '내 입맛이 왜곡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자기만의 먹을거리 기준이 시작된다고 조언했다. 맛있는 집을 찾아 취재하고 전국을 다닌 지 20년, 단지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바른 정치, 바른 자본주의야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해야 하나?" 황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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