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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김대중 자서전'과 언론사 세무조사

도깨비-1 2010. 8. 9. 14:33


[김대중 칼럼] '김대중 자서전'과 언론사 세무조사

     조선·동아 세무조사로 권·언 유착 정리?
     조선·동아가 DJ와 유착 거부해 조사당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 김대중 고문/ 조선일보/ 2010. 08. 09

 

   우리나라에서 자서전(自敍傳)은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대체로 자서전이란 것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잘된 것'만 주로 쓰고 '잘못된 것'은 그냥 덮어버리는 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시대적 객관적 의식보다는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상황에 머무는 것인 만큼 그렇고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루소의 '참회록'처럼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토로나 성찰로 이뤄진 것이라면 몰라도 자서전은 말 그대로 '자기 이야기'일 뿐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고인 '김대중 자서전'이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인가는 책을 읽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그분이 세상을 어떻게 봤고 동시대의 정치인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오로지 그의 안목과 덕목과 인간성 그리고 가치관의 소산일 뿐이다. 다만 자서전 내용에 어떤 견해차를 넘어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음에도 그것이 그의 작고로 인해 그냥 덮인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중의 하나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두 신문 종사자가 최대의 피해자로 남은 김대중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2001년)에 관한 부분이다. 김대중 자서전은 2권 432쪽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언론사의 광범위한 탈세 관행과 언론사 사주(社主)의 불법·편법을 동원한 치부행위가 드러났다. (중략) 언론사 세무조사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략) 세무조사 결과는 그동안 언론이 권력과 야합했음의 증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동아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세무조사는 두 신문이 DJ 권력과 야합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가해진 '보복'이었다는 것이 세상의 일반적 인식이다. 우리가 그의 대북정책에 협조적이었다면 세무조사 같은 것은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98년 대통령이 된 후 여러 차례 조선일보 경영진과 나를 포함한 필진 등을 접촉하면서 그의 햇볕정책에 동조할 것을 종용했었다. 그가 평양을 방문해 6·15 합의를 이끌어낸 이후 그의 관심사는 온통 '김정일의 답방'에 쏠려 있었다. DJ는 외교적 관례를 깨고 본인이 직접 나서 김정일 답방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5~6회에 걸쳐 거듭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사설과 기고문 등을 통해 김정일의 서울 답방 조건으로 6·25 전쟁, KAL기 폭파, 아웅산 사건 등에 대한 사과를 주장하자 그는 강경으로 돌아섰다.
   세무조사 결과 검찰에 고발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첫 공판에서 법정진술을 통해 "국세청 세무조사 이전부터 대북문제를 포함해 비판적인 조선일보의 사설, 기명 칼럼에 대한 (DJ의) 불만들이 여러 경로로 나에게 전달됐다. 세무조사 이후에는 그런 사설과 칼럼을 쓴 분들에 대한 부당한 요구도 있었으나 거부했다. (나는) 그때 이미 감옥 갈 것을 각오했다"고 말하고 '정치권력의 비겁하고 교활한 보복'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DJ 정권은 탈세조사를 명분으로 조선일보를 이 잡듯이 뒤졌다. 국세청은 조선일보 관련 인사 256명의 계좌를 뒤졌고 현금과 수표 유·출입을 추적한 계좌만 3067개에 달했다. 조사받은 거래 건수는 1만9811건이었다. 당시 DJ 정부의 한 소식통은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면 조선일보가 손을 들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굽히지 않자 DJ도 어쩔 수 없이 사주 구속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조선일보가 필진 3명만 잘랐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대중 자서전은 단지 '잘한 것', '긍정적인 것'을 기록하고 '불편했던 것'은 외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을 왜곡하는 데까지 갔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DJ 정권의 주요인사, 당시 청와대 측근을 막론하고 조선·동아에 대한 세무조사가 DJ대북정책을 둘러싼 견해차이와 비판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정치권·금융권에 있는 사람치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당시 국세청장까지 괴로운 나머지 DJ의 요구 들어주면 끝날 일이라면서 조선일보의 항복을 종용했었다. 결국 DJ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언론과 권력의 유착관계'로 몰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격이다.
   만일에 김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대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소명의식을 강조하고 이를 따라주지 않은 일부 언론에 대해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고백했더라면 우리는 비록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그 동기만은 이해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퇴임해서도, 퇴임 1주년을 회고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또 그 이후 개별적인 통로를 통해서도 세무조사와 구속에 대해 단 한마디의 '미안함'도 비친 적이 없다. 미안해하기는커녕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