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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한글 놔두고 왜 이상한 외국말 많나요" - 조선일보

도깨비-1 2009. 10. 9. 14:03


"훌륭한 한글 놔두고 왜 이상한 외국말 많나요"

오늘 한글날… 서울에 온 외국인 한국어 교육자 19명

    전현석 기자/ 2009. 10. 09  / 조선일보

 

  8일 오후 터키·루마니아·불가리아·체코·중국·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10여명이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한글 지식을 뽐냈다. 한글 공간전'에 전시된 조선시대 편지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가운데 찍힌 점이 '아래아' 표시네요. 실제 편지에서 본 건 처음이에요. 흘려 쓴 한글도 너무 아름다워요."
   "옛날 한글이 더 기하학적인 것 같아요. 삼각형(ㅿ·반치음) 같은 글자도 있어요."
   이들은 각국 대학과 문화원,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와 강사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글 창제 563돌을 기념해 올해 최초로 개최한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에 초청받아 서울에 왔다.
  
   한국기업 진출·한류 타고
   터키·체코·인도·몽골 등
   한국어 수강생 부쩍 늘어
   직접 교재 만들어 강의도
   
   문화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1만여명이다. 이 중 외국인들은 300명 안팎이다. 이번에 서울에 온 외국인 교수와 강사 19명은 대부분 자기 나라에서 현지인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1세대 선생님'들이다.
   터키 앙카라대 한국어문학과 에르탄 괴크멘(41) 교수는 "내는 경상도 사나이입니더"라고 했다. 그는 1988년에 생긴 앙카라대 한국어과 1회 졸업생이다. 1990년 경북 영주 출신의 한국외국어대 학생이 교환학생으로 터키에 왔을 때 서로 터키어와 한국어 회화를 가르쳐준 까닭에, 자연스레 경상도 사투리로 한국말을 배운 것이다.
   "1994년에 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신이 한국 가면 여기서 한국어 가르칠 사람이 없다' 캐서 한국 유학도 몬 가고, 모교에서 석·박사 하면서 학생들 가르쳤어요. 학부·대학원 합쳐서 일주일에 32시간 강의를 한 적도 있는데, 뭐 괘안습니더."
   디아나 육셀(34)씨는 2005년에 생긴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대 한국어과(부전공)의 '강사 1호'다. 2000년 부쿠레슈티대에서 한국어 강사를 기르기 위해 육셀씨 등 2명을 연세대에 유학 보냈다. 같이 온 친구는 한국어가 어렵다며 일본으로 떠나고, 육셀씨 혼자 남아 4년간 연세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를 땄다. 루마니아에 돌아간 육셀씨는 부쿠레슈티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중국과 한국의 유교'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땄다. 작년에는 초급한국어 교본도 냈다.
   외국인 교수와 강사들은 "한국 드라마·영화·가요 등이 전파되고, 한국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중국 칭다오에 있는 중국해양대 한국어과 이해영(34) 교수는 중국해양대뿐 아니라 한국어 보급기관 '세종학당'에서도 강의한다. 2007년 12월 세종학당이 첫 수강생을 받을 때,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정원 250명에 19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학당측이 경비업체를 동원해 줄을 세웠다. 그는 "칭다오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방송된 지 1~2시간 만에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배우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인이 많다"고 했다.
   인도 네루대 한국어과 라비케쉬 미스라(33) 교수는 "내가 배울 때만 해도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20여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10여명으로 늘었다"며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한국기업이 활발하게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데다, 한국과 인도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계속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체코 찰스대의 한국어 강사 토마쉬 호락(36)씨는 "지난달부터 체코 국영TV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매주 1편씩 방영하고 있다"며 "체코에 현대차와 두산중공업 공장이 들어와서 앞으로 한국어 수강생이 더 늘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한류와 한국 기업 진출이 꼭 좋지만은 않다"며 "남모를 애로사항도 있다"고 했다. 중국해양대 이해영 교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온 학생들이 '한국에는 왜 저렇게 불륜이 많으냐'고 물을 때는 당황스럽다"며 "한국사를 공부하려고 사극을 보는 학생들에게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를 올바른 한국어로 담은 드라마·영화·가요가 많이 나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네루대의 미스라 교수는 "한국어를 잘하는 인도 학생을 교수로 키우려고 하면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서 모두 끌어간다"며 "교수 재목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막말과 준말이 많은 '인터넷 한국어'도 이들에겐 걱정거리다. 중국 톈진외국어대 마슈시앙(36) 교수는 "인터넷 채팅으로 한국 친구를 사귄 학생들이 '샘, 안녕하삼(선생님, 안녕하세요)?'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어가 널리 전파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쏟아졌다. 몽골국립대 한국학과 성비락(38) 교수는 2006년 춘향전을 몽골어로 번역하고, 작년에는 훈민정음을 번역했다. 그는 "현재 몽골에서 팔리는 한국 서적은 모두 러시아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몽골어로 번역한 것"이라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을 어떻게 전파할지 한국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불가리아 소피아대학의 미러슬라바 차부르토바(35) 교수는 흥례문 앞에 전시된 옛 편지를 꼼꼼히 보며 말했다.
   "서울에 오니 한국 사람들이 일상 대화에서 외래어를 쓸데없이 너무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전시된 작품을 보고 '뷰티풀 하다'는 한국사람도 있어요. '아름답다'는 말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