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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화문 말고 흥례문을 보라

도깨비-1 2009. 8. 21. 23:40
뉴스: 광화문 말고 흥례문을 보라
출처: 한겨레21 2009.08.21 11:40
출처 :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한겨레21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21] [시험에 안 나오는 문화] 복원된 지 10여 년밖에 안 되는 '넘버 2' 궁궐문, 광화문 복원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복궁의 얼굴로
사람들은 2등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궁궐문들도 마찬가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궁궐은 문이 여러 개다. 그러나 스타는 늘 정문뿐. 두 번째 문은 궁궐 안으로 들어가면서 스치듯 지나쳐버린다.

조선 법궁 경복궁의 문도 마찬가지다. 경복궁 안에 수많은 문이 있지만, 누구나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문은 정문이자 남문인 광화문뿐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어야 동문인 건춘문, 서문 영추문, 북문 숙정문 정도의 이름을 기억해준다. 하지만 경복궁에는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 수 못잖게 많은 문들이 있다. 이 크고 작은 문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문이 있다면 단연 흥례문이다.

흥례문은 광화문 다음으로, 아니 광화문 못잖게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문이다. 건춘문·영추문·숙정문도 그 아름다움과 규모 면에서 흥례문에는 감히 비길 바가 못 된다. 광화문 바로 다음 나오는 문이자 본격적으로 궁궐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문이니 당연히 멋지게 꾸며 지었다. 건춘문이나 영추문은 오히려 사람들이 드나들 일이 드물지만, 흥례문은 경복궁에 가면 누구나 반드시 거치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관심 밖이고 그저 '경복궁에 들어갈 때 입장권 받는 사람들이 있는 문' 정도로만 여긴다. '넘버 2 궁궐문'의 비애이자 숙명이다.

흥례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두 번째 문의 숙명 탓도 있지만 또 다른 특별한 사연 때문이기도 하다. 흥례문은 지금의 30대 이상들에겐 더욱 낯설고 생소한 문이다. 그들이 어린 시절 경복궁에 갔을 때에는 이 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흥례문은 만든 지 10여 년밖에 안 된 새 문이다. 문에도 팔자와 운명이 있다면 흥례문처럼 팔자가 슬프고 기구한 문도 없다.

그러면 흥례문은 왜 없어졌던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가 경복궁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난을 당했던 문이 바로 흥례문이다. 일제는 1914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연다며 흥례문을 헐어 없애버렸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광화문은 정문이다 보니 옆으로 옮겨버리긴 했어도 놔뒀지만, '넘버 2' 흥례문은 가차 없이 경복궁에서 도려내버린 것이다.

사라진 흥례문이 경복궁에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거의 1세기가 걸렸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을 헐어버리면서 흥례문은 복원됐다.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총독부 건물을 파괴하는 것은 비문화적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어찌됐든 흥례문을 파괴하고 들어선 조선총독부 건물이 다시 파괴된 덕분에 흥례문은 되살아나게 됐다.

그리고 이 문이 복원되면서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에는 넓은 광장 같은 공간이 생겼다. 두 문의 사이는 생각보다 멀어 거의 100m나 된다. 족히 7천 명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국가적·상징적 공간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도 이곳에서 열렸던 것이다. 이 너른 공간의 주인이 바로 흥례문이다.

요즘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경복궁은 잠시 정문이 사라진 상태다. 덕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동안 흥례문이 경복궁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이 잠시 보이지 않는 것을 아쉬워 말고 대신 그동안 눈길을 덜 줬던 이 문을 잠깐이라도 주목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이 건물이 되돌아온 슬픈 사연을 종종 잊는다. 그리고 이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쉽게 지나치곤 한다. 흥례문은 새 건물이어서 건물에 밴 세월의 무게는 덜해도, 그 아름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봐도 멋있지만 옆에서 보면 더욱 매력적인 건물이다. 거대한 2층 기와지붕이 날렵하고 경쾌해 보이는 그 비례에 절로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 멋진 문이 사라졌던 과거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구본준 한겨레 기획취재팀장 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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