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말과 글’모호…한글날 경축사도 엉터리

도깨비-1 2009. 4. 5. 22:46

한글학회 리의도 교수의 탄식

“한글은 언어아닌 문자”… 오류 투성이

잘못된 내용 검증못한‘집단무식함’도

“한심스럽기도 하고, 통탄스럽기도 하고…. 행사장에 앉아 있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한글학회가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의 축사에 대한 소회를 10일 헤럴드경제에 밝혀왔다. 헤럴드경제가 보도한 3부요인의 기념사 분석(9일자 1.7면)의 후속작이다.

한글학회는 이번 한글날 경축사의 경우 다행히(?) 3부요인의 기념사와 달리 표기법이나 문법적인 오류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법만 맞았지, 내용은 순 엉터리에 가까웠다는 평이다.

한글학회 리의도(춘천교대 국어국문과 교수) 이사는 “(한승수 총리가 대독한) 축사 중간의 “한글주간이 선포되었다”라는 수동형 표현은 “선포하였다”라는 능동형으로 고치는 게 옳다. 곳곳에 수동형 문장이 있었는데 수동형 문장은 영어가 들어오면서 생긴 ‘영어식 표현’이다. 이런 영어식 표현이 축사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 언어생활 전반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오류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용. 한글에 대한 기본적 개념상의 오류가 문제였다. 리 교수는 “한마디로 축사는 말과 글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를 구별해야 하는데도 축사는 이를 혼동하거나 혼란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지금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6000여개의 언어 가운데 만든 사람과 만든 날짜 그리고 만든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진 유일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기 때문이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축사에서 강조했다. 그러나 리 교수는 “6000여개의 ‘언어’와 대응하는 것으로 ‘한글’을 들고 있는데, 이는 비교 대상끼리의 차원이 다른 것을 같이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문자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만든 사람과 날짜, 이유가 분명히 밝혀졌다는 이유만으로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 인류의 위대한 발명, 세계적 지적 성취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한글이 유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국제 공개어로 지정되었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학자는 한글을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라는 축사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을 했다.

리 교수는 특히 축사의 ‘내용’이야말로 문제투성이라고 혹평했다. 한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리 교수는 “축사는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 공로자에게 준다는 세종대왕상을 예로 들며 한글의 우수성을 얘기했다’고 했지만 이는 한글이 우수해서 준 상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문맹 퇴치에 노력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것도 엄밀히 따져 ‘책’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이 그 대상이 아니었다”며 경축사에 드러난 ‘무지’를 따졌다.

리 교수는, 한 총리가 한글이 무려 1만2000여개의 소릿값을 표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1만1172개의 소릿값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는 ‘최소한’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실상 조합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며 축사의 표현이 이런 가능성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무총리 한 사람이 축사를 썼다면 그 한 사람의 무식으로 치면 될 일이지만, 이것은 정부 차원에서 수차례 검증을 거친 것 아니냐. 이런 점들을 걸러내지 못한 것은 집단적 무식으로밖에 볼 수 없으며, 국가적 위신의 문제”라며 분석을 마쳤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