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상주이야기

존애원

도깨비-1 2008. 7. 3. 17:32

 

 

 

 

 

종 목

 

존애원(存愛院)

 

 

 

 

시도기념물 
제89호 (상주시)

명 칭 존애원(存愛院)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근대교육문화/ 의료시설
수량/면적 714㎡
지 정 일 1993.02.25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청리면 율리 353
시 대
소 유 자 손상호
관 리 자 상산김씨일묵재공파문중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상주시 문화공보담당관실 054-530-6063


임진왜란 뒤에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고자 선조 35년(1602)에 김각(金覺), 성람(成濫), 이준(李埈)이 설립한 사설의료기관이다. 존애원이란 이름은 중국 송나라 학자 정자(程子)의 ‘존심애물’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존애원은 의료시설이 아주 적었던 당시 많은 약재와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함으로써, 다른 지방에까지 큰 자랑거리였다. 특히 의료활동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화합를 위한 각종 행사도 치렀는데, 1607년부터 1894년까지 백수회(白首會)라는 경로잔치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율리(栗里)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얕은 언덕기슭에 자리잡은 존애원은 청죽(廳竹) 성람(成覽), 우복(愚伏) 정(鄭) 경세(經世), 창석(蒼石) 이준(李埈) 등이 인조 원년(元年)에 건립(建立)한 사설의료기관(私設醫療機關)으로서 1826년(年)에 (순조(純祖) 26년(年)) 중수(重修)된 적이 있는 건물이다. 현재 존애원 주변에 담장이라든지 의료시설에 필요한 지원용도의 다른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존애원만 남아있다.

얕은 자연석기단 위에 전퇴간을 둔 중당협실형의 평면을 만들고 있다. 중앙이간 마루를 중심으로하여 좌우에 한간의 온돌방을 배치하고 있다. 좌우온돌방은 마루쪽으로 쌍여닫이 굽설띠설문을 달고 전면쪽으로는 하부에 마름을 둔 쌍여닫이띠살문을 달아 출입케 하였다. 그리고 온돌방 후편으로 2자정도폭의 수납공간인 벽장을 설치하고 있으며 마루 배면에 퇴를 내고 있다. 퇴간상부는 퇴량을 걸쳐 내전주 위에서 대량과 합보시키고 외전주와는 뺄목으로 보강시키고 있으며, 마루상부의 구조는 만곡도가 큰 자연곡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한쪽에는 동자주를 세울 필요가 없어 종량을 그대로 얹고 원형판대공을 세워 오량구법으로 상부가구를 결구시키고 있다.
 
 
 

존애원


경북 상주시 청리면 율리 353



존애원(存愛院)은 사설의국으로서 임진왜란 뒤의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을 같이 한 김각(金覺) 성람, 이전, 이준, 강응철, 김광두, 정경세 등의 상산 선비들이 존심애물(存心愛物)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뜻에서 1599년 (선조 32년)탄생하였다. 이 해는 상주에 두 계가 있었던 것을 기해낙사계로 합사(合社)한 해로 13개 문중의 계원은 24명이었는데 합계한 자리는 존애당(存愛堂)이었다.


이로써 보면 존애원 창설은 1599년이요 건물완성은 1602년이라 보아야 한다 존애원은 미증유의 전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의료국(私設醫療局)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존애원은 의료활동만 한 의국이 아니라 낙사계의 회합 자리가 되어 각종의 행사도 치렀는데 특히 1607년 이후부터 갑오경장(1894년)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였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607년의 존애원백수회(存愛院白首會)때는 송량, 김각, 정이홍, 윤전 등의 어른을 정경세, 이준, 김지복, 김지덕 등의 자질이 모시었다. 낙사계는 1797년(정조 21년)왕으로부터 대계란 칭송을 받고 1906년 한광(韓匡)이 아들의 관례(冠禮)할 때 존애원에서<대계백수회>를 가진 바도 있다 한마다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었음과 동시에 향토 사랑을 실천한 낙사계원들의 모임터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