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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제대국 허울 속 야만성 부끄럽습니다">

도깨비-1 2008. 3. 13. 16:35
뉴스: <"경제대국 허울 속 야만성 부끄럽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2008.03.13 11:54
출처 : 여성
글쓴이 : 연합뉴스 원글보기
메모 : 대전고법 베트남 신부 살해 40대에 중형 선고

"타국여성 물건 수입하듯 대하는 데서 비롯된 일"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은 베트남 신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법원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40대 남성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질책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최근 장모(47)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장씨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A(19)씨는 2006년 12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장씨를 만나 지난해 5월 16일부터 충남 천안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힘겨워하던 A씨는 결혼 한달만인 지난해 6월 26일 여권과 옷을 챙겨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려다 술에 취해 귀가한 장씨에게 마구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변을 당하기 전날 A씨는 베트남어로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장씨가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하기를 빌면서 자신은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A씨는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내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내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했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했다"고 적었다.

A씨는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할 사람이 당신 뿐이었는데...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 정말로 하느님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정말 더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느냐. 당신은 이 글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라며 글을 맺었다.

이 글에 대해 재판부는 "어린 나이에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애틋한 부부관계를 이루고 빨리 한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배려 부족, 어려운 경제형편,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과 관련, "장씨가 졸속으로 A씨를 만나게 된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오로지 결혼이라는 목표만 갖고 단 몇분만에 배우자감을 선택했으며 이 과정에서 누구인지, 누구 집 자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 이후 뒷감당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어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다"며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이 사건이 장씨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사람과 결혼해 이역만리 땅에 온 뒤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돼 짧은 인생을 마친 A씨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cob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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