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사랑의 詩]이성복/‘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너의 움직임을. 너의 소리를. 마음이 움직였으므로, 마음이 우우우 바람의 소리를 내었으므로 나는 그 시절 사랑에 취해 있었구나. 내 마음과 내가 가장 가까웠던 시절이었구나. 오른뺨과 왼뺨처럼, 오른손과 왼손처럼, 내 마음과 내가 그대로 짝꿍이 되어 붉어지고 손짓하고 그리워하고 서러워하였던 시절, 나는 술을 빌려 취한 게 아니라 마음을 따라다니느라 한껏 취기가 올랐구나.
그래서 나는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의 꼴을 하고 있었구나. 내 마음이 그랬구나. 나는 내 마음을 따라 부풀어 올랐구나. ‘인플레’처럼. ‘민들레 꽃씨’처럼. ‘웃음소리’처럼.
이성복 시인이 30여 년 전, 그러니까 1977년의 등단작 ‘정든 유곽에서’로 보여줬던 늪처럼 무거운 발걸음 또한 ‘개를 끌고 玉山에’ 가는 지난한 사랑의 길이었을 터. 그의 시는 아름다움을 위해서라 한대도 끝까지 이 세상의 개들을 버리지 않는다. 개를 끌고 가는 것, 그것이 이성복 시의 사랑의 힘일 것이다. 신비롭지 않은가. 그것이 민들레 꽃씨처럼 한 시절 이렇게 환하고 가벼울 수 있었다니.
김행숙 시인·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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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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