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한테 약속 받았다고 간주했던 대부분의 기대들은 무너졌다.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강자가 아닌 약자들의 편을 들고, 약자가 받는 차별을 없애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지금 남은 건 철저한 배신감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졸자여서 본인 자신이 학력차별의 피해자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고졸이 무얼 알겠냐며 대졸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고, 권양숙 여사도 주류집단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세간에 퍼져있다.
그런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학력학벌 차별이 없는 세상만큼은 만들겠노라고 공언했었다. 학력학벌차별금지는 참여정부의 국정지표였고 적어도 그 진정성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경제부문에서 중상층들만 더 살기 좋아지고 일반 서민의 박탈감은 날로 커져만 갔듯이, 학력학벌 차별의 학벌사회도 점점 더 심화되기만 했다.
최근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차별 조항이 삭제됐다고 한다. 5년 전에 약속해서 5년 내내 당연히 포함될 거라고 했었는데 정작 법안제출 시기에 이르러 갑자기 빠져버렸다. 5년간의 암묵적인 약속은 봄볕 아래 쌓인 눈처럼 사라져버렸다.
차별금지법에 학력차별, 성적지향, 가족형태 등 총 7개 조항이 삭제된 것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 모습ⓒ오마이뉴스 이민정
사실 차별금지법에 학력차별 조항이 들어간다 해도 이 나라에 만연한 차별이 정말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선언조차도 못하겠다니,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5년 임기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5년 만에 ‘죄송합니다’하고 끝낼 정권이었나? 국민은 또 속은 것인가?
학력차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지난 여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학력위조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 학력차별을 우리 사회가 반드시 씻어내야 할 구태로 지목했었다.
그에 대해 정부는 검증시스템을 강화하겠다며 동문서답을 하더니 이번엔 결국 학력차별 제외로 거짓말 사회를 방치한 것이다. 학력사회를 부르는 학벌을 당장 없애고, 학벌을 생산하는 대학서열체제를 당장 혁파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학력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을 법적으로 보증해달라는 것뿐이다.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는가?
기업들이 학력차별금지를 반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학력차별을 계속 하겠다는 말인가?
한국의 기업들은 그동안 무임승차해왔다. 자원을 투입해 스스로 인재를 판별할 능력을 기르지 않고 학교간판만을 기준으로 편하게 사람을 구분해왔다. 이런 식의 안일함으론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다.
학교 간판을 포함하는 학력정보는 그 사람의 입시성적과 사교육비, 부모의 재산 정도를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기업에서 필요한 전문적 능력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젠 진짜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별해야 한다. 기업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학력차별금지를 앞장 서서 시행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속고, 속고, 또 속은 배신감 정권‘으로만 기억될 셈인가? 이대로라면 부자들에겐 한미FTA 등 생각지도 않은 선물꾸러미를 한 아름 밀어주고, 서민들에겐 배신감만을 안겨줬다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피할 길이 없다. 학력차별 문제만이라도 5년 전의 초심을 지켜야 한다. 얼마나 더 오명을 남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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