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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날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한옥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당과 골목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걱서걱한 소리와 그림자를 드리운 볕과 반들반들한 촉감이다. 만드는 것은 물건인데 사용하는 것은 빈 공간인 점은, 집과 그릇이 매한가지이다. 그릇이 내용물을 담듯이 집은 생활을 담고 기억을 저장한다. 대청 가득 돗자리를 깔고 벌이는 화채 파티도 좋지만, 장독대 구석에 웅크리고 바라보는 별빛은 또 어떤가. 속상한 아이는 아파트의 어느 방에서 눈물을 훔쳐야 하나. 문화재청이 기획해 출간한 ‘한옥에 살어리랏다’는 ‘전통한옥을 오늘날의 삶에 맞게 리노베이션하여 여느 양옥보다 멋스럽고 유용하게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27채를 골라 건축전문가들의 해설과 함께’ 엮은 책이다. 말하자면 현대 한옥의 작품집이다. 한옥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정갈한 구성이 독자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건축가 황두진은 “한옥이 돌아왔다”고 하였다. 한옥이 어디 간 일이 없으니 사람이 돌아온 것이겠지만, 최근의 한옥 붐은 심상치 않다. 한옥의 붐이 본격화된 것은 한류의 성공에 힘입어 문화부가 추진한 한브랜드화 사업에 한복, 한식 등과 함께 한옥이 들어가면서부터이다. 그러나 한옥의 붐이 사업으로 현실화된 것은 산업화에 소외된 지방정부가 장소형, 체험형 관광의 주요 방편으로 한옥에 주목하고 난 뒤의 일이다. 한옥은 설계와 시공의 전 과정이 여전히 현장 중심적이라 토착 산업의 진흥에도 도움이 되고,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문화적 품위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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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한식이 그렇듯이 한옥 역시 양옥에 대한 상대어로서 만들어진 근대어이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이 겨우 1975년의 일이니 죽어서 이름을 남긴 경우가 바로 한옥인 것이다. 지금의 사십대는 한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한다. 한옥의 재생을 꿈꾼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2007.06.22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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