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 집을 제 손으로 짓는다? 도시인에게 이것은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제 입에 들어갈 농사는 제가 ‘짓고’, 제 식구 입을 옷은 제가 감을 짜서 직접 ‘짓고’, 제 살 집 또한 제가 ‘짓는’ 게 일반인의 삶의 방식이었다. 요컨대 짓는 일이 익숙했고 짓는 게 곧 사는 것이었다. 이젠 무언가를 짓는 일은 전문 직업인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우린 제 손으론 아무것도 짓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란 희한해서 돈이 암만 많아도, 직위가 암만 높아도 뱃속 깊은 성취감을 얻기는 어렵도록 디자인돼 있는 모양이다. 그 성취감이란 안락이나 풍요나 명예가 아니라 직접 무언가 만족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 냈을 때, 제 손으로 남을 기쁘게 만들 때나 찾아드는 성정 까다로운 놈이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천주교 안동교구의 정호경 신부, 그는 일찍부터 제 살 집을 손수 짓고 싶어 했다. 강론하고 기도하면서 ‘입품’만 팔다 갈 삶이 두려웠다.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즐겁게 땀 흘려 농사짓고 집짓고 살 수 있는 삶을 그리워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1993년 경북 봉화군 청량산 근처, 낙동강 상류 비나리 마을에 논밭 2000평을 평당 4500원씩 900만 원에 사들였다. 그 땅에 흙과 나무로 벽을 쌓고 창과 문틀을 ‘깊이 생각해서’ 짜 넣고 갈대와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고 원두막과 울타리를 짓고 세간 또한 쓰다 남은 나무토막으로 ‘쓸모에 따라, 영감에 따라’ 직접 만들었다. 그러면서 전 과정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기록해 나갔다. 따라서 책의 부제는 ‘어느 중늙은이 신부의 집짓기’다.
정 신부는 이 책을 불특정 독자를 위한 교양서적이 아니라 ‘손수 자신의 집다운 집’을 지으려는 이들에게 부교재이자 친구로 쓰이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단순한 흙집은 습기에 약하니 푸석돌 섞인 진흙과 모래와 생석회를 1 : 1: 1로 쓰는 ‘삼화토’를 연구해 보라”느니 “수맥을 막기 위해서는 구리보다 거울을 바닥에 까는 게 좋다”느니, 더 나아가 기둥과 대들보와 인방과 슬레이트의 두께와 가격까지 안내해 주는, 친절하기 짝이 없는 실용서라기보다 본질적으론 삶의 의미와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 철학서라고 생각한다.
돈 걱정이나 하면서 짓는 집엔 집안에 돈독이 퍼질 수밖에 없다. 숨통을 막는 집에 사는 사람은 숨통이 막힐 수밖에 없다. 생명의 징표는 돌고 도는 순환이지만 죽음의 징표는 숨통을 막는 차단이다. 그러니 돈 들이지 않는 작고 단순한 집을, 제 손으로 직접, 숨쉴 수 있는 재료인 흙과 나무와 닥종이로 짓는 일은 곧 생명을 향한 길이라는 도저한 생각이 페이지마다 넘쳐 난다.
그림과 사진까지 곁들여 구제적인 정보들을 늘어놨지만 내용 안에 시종 구수하고 웃음 터지는 이야기가 흐른다. 절대 지루하지 않다. 절로 밑줄을 좍좍 긋게 된다. 내 손으로 내 집을 짓는 날이 올까? ‘짓는 법’을 잊어버려 표정 없이 밋밋해진 손을 들여다본다. 정(情)과 정성(精誠)이면 가능하고 말고! 그게 정 신부의 답이다.
김서령 칼럼니스트 [2007.06.0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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