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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서병훈]그래, 계급장 떼고 실컷 싸워 봐라

도깨비-1 2007. 2. 1. 21:56

[동아광장/서병훈]그래, 계급장 떼고 실컷 싸워 봐라



중국 상하이(上海)에 가면 숨이 턱 막힌다. 초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두려움이 들 정도이다. 북한 김정일이 와서 보고 얼마나 놀랐으면 천지개벽이라는 말까지 썼을까.

이중(李中) 선생은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에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인간적인 풍모를 자세하게 추적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살아 있을 때 자기 고향집을 못 가꾸게 했다. 아버지 묘도 방치하다시피 했다. 그는 1989년 ‘우리 같은 늙은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젊은이들이 할 일이 없다’면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정견(政見)이 다르다고 학문마저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에 장제스(蔣介石)가 버젓이 올라가 있다. 그의 동상도 곳곳에 건재하다.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잊을 수는 없지만, 그 지도자들이 보여 준 인간적인 체취에 대한 평가까지 인색할 필요는 없다. 세상 어디를 가나 큰 인간, 된 인간을 재는 척도는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존경받으면 한국에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겐 관대, 남에겐 엄격?

인간은 어차피 유한한 존재이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때가 되면 속절없이 떠나야 한다. 이런 실존적 상황 때문에 남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그래서 큰 사람일수록 가능하면 남을 포용하고 이해하려 한다. 그 대신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물론 큰 인간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더욱 겸손해야 한다. 정치인이 특히 그렇다.

‘노무현 사람’들은 정반대다. 남의 잘못이나 약점에 대해 얼마나 무섭게 대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에 대해서는 턱없이 관대하다.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돼 의원선서를 하는 자리에 흰색 면바지 평복 차림으로 나와 세상을 향해 이죽거리는 것도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앞선 역사를 거침없이 부정했고 기성세대를 사정없이 매도했다. 그 덕분에 온 국민이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마오쩌둥은 ‘남에게 말을 친절하게 할 것’을 홍군(紅軍)의 제1규율로 삼았다. 이 정권 사람들은 험악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자랑스레 했다. 그러니 민심을 잃고, 되는 일도 없는 것이다.

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시절에는 다들 기고만장하는 법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실존적 한계를 깨닫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면서 다들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사람’들이 아직껏 자신들의 팍팍한 언동에 대해 반성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 심성이 더 강퍅해지고 있다. 끝내는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다. 형세가 불리하다고 대낮에 제1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까지 ‘매수’하려 든다. 그들이 그토록 욕해마지 않던 구시대 정치인들도 이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급기야는 자기들끼리 탈당파니 사수파니 하며 무섭게 싸우고 있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침몰하는 배에서는 뛰어내리는 것이 상책이란다. 글쎄, 국민의 상식으로는 그저 난파선에서는 쥐새끼가 제일 먼저 뛰어내린다는 것 정도일 뿐, 그 깊은 내력을 어찌 알겠는가. 이 대목에서 ‘솔직히 욕심이 난다고 할 것이지, 꼭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것이 소인배 소행’이라는 공자 말씀이 왜 기억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어제의 동지들을 향해 극렬한 비방을 늘어놓는 와중에 ‘인간의 도리’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먼저 인간이 돼야 정치도 잘한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로도 결코 작지 않다. 인간이 먼저 돼야 정치도 잘할 수 있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필경 우스운 꼴을 당하고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생하게 재확인해 준 것만으로도 그들의 역사적 소임은 충분히 다한 셈이다. 그러니 국민 걱정 하지 말고, 어디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계급장 떼고 원 없이 싸워 봐라. 단, 신당 창당 같은 일시적 분칠을 통해 또다시 국민을 현혹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은 아예 접어 두기 바란다. 우리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동아일보 2007.02.01 02:59 입력)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